[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444)귀생(貴生)과 섭생(攝生)
관리자2023. 3.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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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이에 두드려 맞은 귀동이
노스님 따라 암자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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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칸 고래 대궐 같은 민 대감댁에 오늘도 황 의원이 집사의 뒤를 따라 벅찬 숨을 토하며 뒤뚱뒤뚱 들어가고 시동이 진료 가방을 들고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사랑방에 누워 있는 민 대감의 열두살 난 손자 민귀동의 가느다랗고 새하얀 팔뚝을 잡아 진맥을 하고는 “아직도 경기를 하고 있네요.” 황 의원도 한숨을 쉬고 민 대감도 방구들이 꺼져라 긴 한숨이다.
며칠 전 서당에 갔다 오던 민귀동이 저잣거리에서 엿판을 메고 엿장수를 하는 천덕이와 싸움이 붙어 코피가 터지고 흠씬 두드려 맞았는데 문제는 귀동이가 천덕이보다 두살 위라는 사실이다. 창피해서 서당에 못 가겠다며 사랑방에서 뒹굴뒹굴 꾀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똑똑 또르르 나무아미타불.”
민 대감이 문을 열고 “여봐라, 노스님을 모셔라” 하고 말했다. 노스님이 바랑 망태를 처마 밑에 두고 헛기침을 하며 들어오자 황 의원이 일어나서 나갔다. 노스님과 민 대감은 곡차 친구다.
“귀동이는 어이하여 서당을 빼먹고 사랑방에 이렇게 누워 있는고?”
귀동이가 이불을 덮어썼다. 민 대감이 한숨을 쉬고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이불 속의 귀동이 울기 시작했다.
“천덕꾸러기 천덕이는 어디 사는 뭘 하는 녀석이야?” 노스님이 묻자 “거지와 다름없어 다리 밑이 제집이지만 도련님과 싸우고 나서는 잠적을 했습니다요.” 민 대감댁 젊은 집사의 얘기다.
“귀동이는 따뜻한 집에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나이도 두살이나 더 먹었는데 추운 다리 밑에서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는 천덕이한테 두드려 맞다니… 쯧쯧.”
노스님이 혀를 찼다. “이리 나와 보시오.” 스님이 문을 열고 나가자 민 대감도 따라나섰다. 사랑방 앞의 대추나무 아래 모였다. “작년에 대추를 얼마나 땄소?” “가물면 물을 주고 사시사철 거름을 줬는데도 꺽다리처럼 키만 크고 대추는 석되도 못 땄지요. 거참 연유를 모르겠네.”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문 밖으로 나가 초가삼간 이웃집으로 갔다. 마당가에 자리 잡은 볼품없는 대추나무에 염소를 묶어두니 염소란 녀석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줄을 당기며 빙글빙글 돌아 대추나무가 시달려서 줄기가 배배 꼬였다.
“작년에 대추를 얼마나 땄소?” “가지가 찢어지게 달렸지요. 두말이나 땄어요.” 쩝쩝 입맛만 다시던 민 대감이 “무슨 거름을 했는가?” 묻자 소작농 임 서방이 “아무 거름도 않고 그저 염소만 매어 뒀지요.”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 대추나무가 천덕이여. 대감댁 대추나무는 귀동이고!”
민 대감댁 사랑방으로 돌아간 노스님이 “소나무도 자라는 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솔방울이 바글바글 맺히는 법입니다. 즉 자신이 시달려야 열매를 많이 맺는법. 인간도 다를 바가 없소이다. 고생을 해봐야 성취를 할 수 있어요.”
깊은 산속, 작은 암자에 삐쩍 마르고 키만 큰 열두살 사미승이 들어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궁이에 솔가지를 넣으니 연기가 역풍으로 떠밀려 사미승을 덮치자 콜록콜록 눈물 콧물을 쏟다가 부지깽이를 내동댕이치고 제 방으로 들어가 누웠지만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귀동아, 찬물 한그릇 떠오너라.”
귀동이는 암자에서 도망치려고 칠흑 같은 숲길을 내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개호지(살쾡이)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울부짖어 암자로 되돌아왔다.
죽비로 젊은 중에게 두드려 맞고 뒷산에 가서 소나무에 목을 매다가 노스님한테 들켜 광에 갇혀 쥐들과 사흘을 보냈다. 노스님의 암자에는 귀동이네 집 하인 수와 같은 7명의 중이 모두 귀동이를 부려먹었다.
그나마 편한 시간이 노스님 앞에 꿇어앉아 하루에 세식경씩 공부할 때다.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 귀동이 삼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서당 가는 길에 천덕이를 만났다. 그는 귀동이를 보자마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다. 열다섯살이 된 귀동이는 집안의 하인·하녀에게 훨씬 부드러워졌고 제 할 일도 손수 했다.
“귀생과 섭생, 자기 몸을 너무 귀하게 아끼면 일찍 망가지고 적당히 고생하는 게 강건하게 오래 사는 길이다.” 노자(老子)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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