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열다섯 번째
신과 인간
<에반 올마이티 Evan Almighty>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작비가 무려 1억 7,500만 달러나 들였는데 비싼 코미디이면서 재미는 없는 영화, 프리미어지 선정 21세기 최악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망했습니다. 그런 영화지만, 주인공 모건 프리먼을 좋아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에반은 ‘우연히 신의 능력과 책임을 부여받은 남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방주를 지으라는 신의 명령을 받아 방주를 짓는 이야기입니다. 이 별 볼 일 없는 영화에서 한 마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맡은 모건 프리먼이 그럽니다.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용기를 주실까?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인류 역사와 함께했으니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믿는 신은 ‘내 욕구를 해소해 줄 존재’로 믿습니다. 재물을 달라고 하면 재물을 주고 권력을 달라고 하면 권력을 주는 존재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신은 없습니다. 그런 신이 있다면 그런 신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런 신은 없기에 찾지 않습니다. 오직 진정으로 그 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좇는 사람에게는 그런 바람이 이루어질 기회를 줄 겁니다. 사랑이 가슴 뛰고 즐거운 일만 가져다주던가요? 사랑은 슬픔과 환희, 고통과 즐거움, 천국과 지옥을 함께 경험하게 합니다. 슬픔과 고통이 오더라도 그것이 신이 내게 어떤 기회를 주는 것인지 깨닫는다면 그 슬픔과 고통은 환희와 기쁨으로 변할 겁니다. 옛사람들은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라며 평정심을 잃지 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게 군자의 길을 걷던 신앙인으로 살면 기회가 주어진다는 가르침일 겁니다. 그게 진정한 기도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