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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6:60~66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6:67~71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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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은 말씀이 어려워 수군거리는 제자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 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많은 제자가 떠나가지만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열둘을 택하셨으나 그중 한 사람은 마귀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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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6:60~66
진정한 제자는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게 여깁니다(60절). 성령의 도움 없이 이성에만 의지해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알지 못합니다(63절).
둘째,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걸림돌로 여깁니다(61절).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비판을 가합니다.
셋째, 그들은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합니다(64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처음부터 아십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얕은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쉽게 떠납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은 어떤 특징을 보이나요?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내 안에 깨달음과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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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6:67~71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67절)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은 떠나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68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11:25)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입니다(63절).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믿고 알았다고 말합니다.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9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완료형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과거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믿어 왔으며, 그렇게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지적 인식 체계를 갖추어야 견고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너도 떠나려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까요?
한절묵상:요한복음 6장 67~68
참제자가 있고 가짜 제자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열두 제자'는 가짜 제자와 구분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으니 절대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제자들은 가짜 제자들처럼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떠납니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참제자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연약해서 넘어져도 주님 말씀을 붙들고 돌이켜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 참제자입니다. 말씀을 붙들면 결국 참제자가 됩니다.
자기 부인의 길은 우리 주 예수님이 겸손과 사랑으로 걸어가신 발자취를 온전히 따르는 것이다. -요한 타울러
오늘의 기도
주님,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제 기대와 만족을 앞세우다가 주님 말씀을 걸림으로 여기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영생의 말씀이신 주님을 신실하게 붙들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요한복음6:60-71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님 말씀,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말씀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무리들은 처음에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예수가 요셉의 아들인것을 아는데
하고 수군 거렸습니다
이번엔 예수님이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말씀에 수근 거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한번 당신의 권위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셨지만 다시 하늘에 올라가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62절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원과 신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믿을것을 말씀합니다
다시밀해 무리들은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요셉의 아들로만 보니 예수님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한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믿음의 출발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여기서 너희에게 이른 말은 '내 살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과 깊은 연합과 믿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예수님의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람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그 사람은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됩니다
그러나 무리들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2부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은 계속해서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12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냐고 했을때 시몬 베드로가 68-69절에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도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너희중 한사람은 마귀라 하시며 그 사람은 가룟유다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따랐지만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따랐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영생이 예수님께 있음을 알고 예수님과의 연합과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시며 그분과 연합하도록 돕는 삶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여러 제자들이 말씀이 너무 어렵다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못 알아듣는 사람들끼리, 믿음이 없는 사람들끼리 수군거리면 더 깊은 무지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무지하게 된 것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기 때문이고, 무지 가운데 수군거리며 비방하다가 사형판결에 넘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1:28~32)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더욱 영생의 역사, 곧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영생의 말씀과 영생의 나라를 전하면 은혜가 안 된다며 너무 어렵다며 수군거립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죽을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 나라에 대한 이야기와 다시 배고프더라도 다시 목마를지라도 당장에 먹고 마실 썩을 양식에 대한 이야기인데, 영생의 양식과 영생의 나라, 곧 영과 생명의 말씀만 전하니 실망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들을 마음과 들을 귀가 없었던 것이고, 아버지께서 오게 하신 자들이 아니었던 것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떠났고 어떤 사람은 배반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고 싶은 설교를 하지 않는다며 수군거리다가 배반하거나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6:67)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69)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과 세상 나라를 구할 것이 아니라, 오직 주와 동행하며, 영생의 말씀을 주와 더불어 먹기 원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20~2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을 보여줍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두 그룹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쫓는 자와 세상을 쫓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자들의 이유는 말씀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렵다는 생각이 걸림돌이 되어 결국은 예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늘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에 관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떡, 즉 영생의 떡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떡에 관심을 둡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그들은 평행선을 걸어갑니다. 결국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을 주시겠다는 것은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인데, 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을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심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아무리 열심히 전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심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의 떡은 값없이 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려고 했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중생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니고데모처럼 어머니의 태로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이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라만이 하늘의 이야기를, 영생에 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땅에서 태어난 자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태어난 자의 도움 없이는 하늘의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좋은 노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3:10-13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허락되었으니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을 사용하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십니다.
천국의 비밀은 오직 믿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비유를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는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을 살려야 그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제자들은 영생의 비밀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백이 나오길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생명의 떡을 먹는 자로서 기쁨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나의 열심으로, 이해 가능한 말로 알맹이 없는 열매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하게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을 믿고 바라보는 자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 제자다움이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60~63절).
생명의 떡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 이 가르침이 어려워 과연 누가 들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입니다(60절). 한마디로 말하면 그 황당한 주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군거리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61절) 물으십니다.
‘그것이 걸려 넘어지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임에도 오히려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불신의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십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말씀이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무익한 육의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3절).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일 수 없고, 그의 말씀은 결코 영생으로 인도하는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적인 눈이 감겨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말씀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떡과 인자의 살과 피에 대한 예수님의 이 말씀 즉, 십자가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활과 승천에 대한 말씀 또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말씀이든 내 자신에게 선포된 말씀을 믿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 죄사함의 은총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말씀의 진리를 배척하고 거부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말씀이 어렵다고 하면서 내 자신의 불순종을 합리화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참된 제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말씀을 영적으로 반응하여야 합니다(64~66절).
‘그러나’ 예수님은 충격적인 반전을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64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가 누구고,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제자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65절)하십니다. 이미 앞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37,44절)을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해서 다 믿는 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 중에는 아버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다는 것인데, 아마도 가룟 유다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 때부터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제자들은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제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육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사용하려다 보니 결국 생명의 떡이시며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을 영적으로 반응해야만 회개와 다시금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반대로 이러한 기회를 거부해 버린다면 설령 제자로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악한 세력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제자일 뿐, 실상은 육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회개합니다. 내 귀에 들려지고, 내 눈으로 읽혀진 말씀을 영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통해 참된 제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말씀을 전심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67~71절).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영생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서는 떠난 제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직접 택한 열두 제자들만큼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신앙고백으로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8~69절). 이와는 대조적으로 거짓 제자의 대표인 가룟 유다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힙니다(70~71절).
말씀에 대한 분명하고 확신이 있는 믿음이 있으면 언제나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 머물러 있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납니다. 예수님의 표적들을 직접 목도하였음에도 많은 거짓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에 대하여 불평하고, 걸림돌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팬으로만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답게 필드에서 예수님과 함께 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선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진정한 제자인지 겉으로만 제자인지가 확실히 구별 되어 질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구원을 얻는 나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고전 1:18)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고백을 드리며,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택하여 삶으로 실천하는 삶을 통해 참된 제자답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를 열어 받은 말씀이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무익한 육의 열매가 아닌 영생의 말씀을 선택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어 참된 제자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6:60~71절)...
예수님은 생명의 떡 설교를 통해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다.
말씀이 걸림이 되는 사람들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바리새인의 적대로 시작하여 무리의 수군거림으로,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의 수군거림과 변절로 확산되고 있다.
영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육신적 소망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걸림으로 남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귀로 들으면 걸림이 될 수 있는데 십자가 복음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고 은혜이다. 떠나는 사람들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제자들 중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심지어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예수님을 떠나는 것은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육신으로 따라다녔을 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분을 따라가려면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있는 영생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이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님은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신다.그 질문에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과 바리새인들, 가룟 유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알았지만 믿지는 않았다.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따르겠다는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세상의 흐름, 소위 대세를 따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따라 행동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끝까지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63~66절 수군거리는 제자들을 향해, 니고데모처럼, 영으로 거듭나지 않고 육(땅)에 속한 마음으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도, 생명에 참여할 수도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오게 하신 이들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제자인 듯 따라다니지만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부인하거나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이끌려 나온 것인지” 아니면 “내 주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온 것인지” 늘 살펴야 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전체 말씀을 듣고 믿음이 단단해진 제자들이 있는 반면, 예수님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제자들도 생겨났습니다. 둘 다 말씀에 동요되었으나 ‘예수님 밖으로’ 아니면 ‘예수님 안으로’ 자신들의 행보를 정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말씀을 따라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사람들은 쉽게 떠나갔습니다. 복음이 아니라면 돌아설 수 있지만, 복음 앞에서 돌아서는 것은 참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60~62절 알아듣기 힘든 말씀에 제자들도 수군거립니다. 그런데 말씀이 어려운 것이 이해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 말씀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고, 말씀과의 상관성을 찾지 못한 것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전하든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말씀은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말씀은 들려주는 대로 들어야 할 대상이지, 내 기대와 만족을 채우는 대상이 아닙니다.
66~71절 말씀이 생명인 줄 알면서도 ‘많이’ 떠나고 겨우 ‘열둘’만 남았습니다. 남은 자 중에는 배신할 자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 몰랐지만 그 말씀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 묵상이 우리를 살리기도 할 것입니다. 제자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그 말씀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기도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곳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님 곁에 머물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 6:9-12)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마 26:21-25)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 13: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5~16)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창세기 1:5
우리의 구원과 생명이 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말씀이 육신이 되고,
그 영이 양식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신 것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여호와의 영광 가운데 그 빛 가운데 거하기를 꺼려 했던 어둠의 시절을 지나,
이제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 말씀과 성령으로 부어지는 하늘의 양식을 더 간절히 사모하며,
변화를 받아 세상 가운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면서도, 주님을 닮아 거룩과 정결로
구별되기를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매일 닮아가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구석구석 주님의 선하고 놀라운 뜻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그 아름다운 발걸음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마음에 원하시는 것들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위에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여전히 전쟁과 핍박과 질병과 가난과 기근으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하시며 그 심령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는 인생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분쟁과 다툼, 미움과 분노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제사장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영원하신 생명의 빵 대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