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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불신앙 7:1~7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명절에 올라가신 예수님 7:8~13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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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초막절이 다가오자 형제들이 예수님께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성전에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도 은밀히 올라가십니다. 명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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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불신앙 7:1~7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성장한 형제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길 좋아하는 자로 여길 뿐입니다. 초막절이 다가오자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로 올라가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때’(헬라어로 ‘카이로스’)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답하십니다(6, 8절). 여기서 ‘때’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유대에 올라갈 시간이 아직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일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로 올라가시라고 하자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셨나요?
내가 사람들의 충동에 휘둘리지 않고 때를 기다릴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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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올라가신 예수님 7:8~13
명절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신 예수님이 은밀히 유대로 올라가십니다(8, 10절).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자신의 때가 찬 것을 아신 것입니다.
둘째, ‘이 명절’(8절)이라는 표현에서 세상 ‘장막절’(초막절)과 예수님 자신인 ‘참된 장막’을 구분하신 것입니다. 곧 세상 장막절에는 참여하시지 않아도, 자신의 참된 장막에는 참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8절)로 나중에 올라갈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넷째, 자신을 드러내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예수님 방식대로 ‘은밀히’(10절)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행동에는 모순이 없으며, 그분의 계획대로 그분이 정하신 때에 행동하신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명절에 은밀히 올라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내 삶에서 사람들에게 알리기보다 조용히 진행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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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를 뛰어넘는 신앙
오늘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며 자기애에 몰입한 그리스도인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높이고 그분만 자랑하기보다는 ‘자기 성취’, ‘자기만족’, ‘자기 발전’ 같은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자기중심적 문화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자기 사랑의 정신은 교회 안에도 슬그머니 흘러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하기보다는 “하면 된다!”, “나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성령보다 앞서서 행합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최근 어느 분을 전도하다가 사람들의 신앙 인식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는 나를 위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 준다는 거요?”, “교회에 나가면 교회는 나를 위해 무엇을 제공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시대정신은 말세의 특징입니다. 말세에는 하나님을 제쳐 두고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사람으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복음의 주체는 내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교회에게 하고픈 말 / 류호준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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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사람들의 요구와 인정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에 맞추어 순종하신 주님을 본받길 원합니다. 조급함과 불안함을 버리고 하나님 뜻에 오롯이 집중하고 그 뜻을 따라 움직이게 하소서. 제 삶에 세우신 주님의 계획을 깨닫고 주님의 시간을 분별하게 하소서.
요한복음7:1-13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예수님의 형제들이 유대로 가서 예수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 계셨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갈릴리에 다니시고 유대에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참고로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2년차 후반 내지 3년차 초반이라 할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초막절이 가까웠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 하나입니다
초막절엔 모두 유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형제들은 3절에 예수님에게 갈릴리에 계시지만 마시고 당신이 행하는 일을
유대에 가서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4절에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유대에 갈것을 부추겼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의 이 말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형제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6절에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의 말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지시기 위해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하신 때를 기다리셨음을 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는 것은 조급하거나 서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만약 조급하시고 서두르셨다면 일을 그릇칠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해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적용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조급하거나 서둘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대신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실때 가야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룰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함을 경계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알고
늘 하나님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안에 거한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는것입니다
긴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의 동생들이 유대로 가시라고 재촉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직 믿지 않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 한다고 오해했고,
유대인들의 암살위험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유대로 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7:6~8)
주께서 가리키신 "내 때"는 유월절 어린양의 십자가 제사를 이루시는 고난의 때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영광의 때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항상 때를 아셨고 때를 따라 일하셨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때를 임의대로 정의하고, 자기 맘대로 행합니다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7:6) 그래서 때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청년 때에 퇴직하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지금은 선교할 때가 아니라 돈 벌 때라고 지금 돈을 벌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며 말렸습니다
돈 벌 때라고 인식하면 돈 벌게 되고, 선교할 때라고 인식하면 선교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때일까요? 지금은 악한 때이며,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마지막 때입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요일2:18)
그러나 또한,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자다가 깰 때입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13:11)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때임을 알고, 주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우리가 주의 도우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웃을 돕기 위해서 진리의 양식을 나누어 주기 원합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4~47)
요한복음 6장에서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무리가 믿지 않고 예수님을 떠났던 이유와 같습니다.
무리는 육의 양식을 원했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 줄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나 중심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큰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께 요구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성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제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확신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렇게 가난하게 살 수 있니? 네가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네 자녀가 성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상은 세상의 잣대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과 유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힘을 발휘해서 믿음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랑거리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8절에서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지금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기적을 베풀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를 유대의 왕으로 추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세상에서의 성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때는 다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때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라는 말씀의 증거가 44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가 없다는 표현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잡아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위해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되어 하늘의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는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야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랑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 속에 침투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세상은 지속해서 우리에게 우리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답은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밖에 없다”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길 소원합니다.
낮아짐의 능력이 드러남으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이 전달되길 소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갈릴리에서만 다니십니다.
초막절이 다가오자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로 가서 자신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형제들이 명절에 성전에 올라가고 난 뒤 은밀히 올라가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믿지 않는 형제들(7:1~5)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때는 공생애 사역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표적을 통해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거듭 증언하셨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공생애 이전에 함께한 시간을 비롯해 가족이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은 많았습니다. 그때 드러나지 않았던 면도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이 보여 주신
표적과 선포하신 말씀을 통해 충분히 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가족은 구세주인 그분께 입신양명하라는 어리석은 조언을 할 뿐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의 형제들은 어떤 태도로 예수님을 대했나요?
- 적용 질문: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출세하라거나 인간적인 조언을 한 적은 없나요?
아직 차지 않은 주님의 때(7:6~13)
예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세상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가족의 불신에 대해 응답하십니다.
믿음 없이 하는 말에 화내거나 섭섭해하지 않으시고, 다만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표적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 사역의 목표가 아님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자들이 제안하거나 세상이 요청하는 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아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때가 오면 온 세상이 그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가 이르도록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행하실 뿐입니다.
- 묵상 질문: 왜 예수님은 형제들의 말대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나요?
- 적용 질문: 주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며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오해를 받으면서도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닮기 원합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준과 원칙을 주님께 맞추고 인내하게 하소서.
담대히 본질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 어떠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 인간적인 안목으로 결정하지 않아야 합니다(1~5절).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유대에서 사역하기를 거부하시고,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1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졌을 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찾아와서 명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일 것인데, 그곳에서 표적을 행하여 많은 제자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따르도록 하라고 제안(3~4절)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5절)입니다.
형제들이 내놓은 제안은 그럴 듯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표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안목으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일을 계획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도록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의지하여 인간적인 안목으로 어떤 일이라도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 순종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세상적인 방식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6~9절).
예수님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제안에 대하여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는 ‘카이로스’ 즉, 미리 예정된 시간이나, 결정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메시아로 높임을 받는 때가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영광의 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 증언하시기에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다(7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시하시는 일만을 하시기에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으실 것을 선언(8절)하십니다.
세상의 그럴싸한 제안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세상적인 방법과 방식으로 제안하고 유혹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내 자신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여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형식적인 신앙으로 빠져들지 않아야 합니다(10~13절).
예수님은 형제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10절).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무리를 미혹하는 자(12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13절). 즉, 유대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여 공공연히 말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수군거리고만 있었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을 제안했던 형제들은 두려워하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음 좋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막상 세상 속에서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을 추구하게 됩니다. 진리의 편에 확고하게 서지 못하고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는 이중적인 신앙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비겁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당당하게 세상 속에 믿음의 정체성을 나타내 보이면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에서 나온 방식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했던 교만한 마음을 버릴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교묘하게 감추는 비겁한 신앙생활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요 7:1~13절)...
요한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장차 의인들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벌하실 심판주이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형제들의 요구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갈릴리에 머무시려고 하는데 예수님의 형제들은 초막절을 맞아 유다로 올라가기를 요구하고 있다.
예수님에게 묻혀서 일하지 말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공개적으로 보여주며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는 타당성 있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하는데 요한은 그것을 형제들의 불신앙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도 우리의 생각대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오히려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불신앙이 될 수 있다.
비밀히 임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갈릴리에 묻혀 계시는 이유는 아직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우실 나라는 사람들의 세력을 모아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우실 나라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를 기다리셨고 형제들을 보내신 후에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에 당신을 드러내지는 않으셨지만 하나님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을 찾는 자들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았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이란 대부분 예수님을 대적하는 대제사장이나 서기관, 바리새인들을 의미하는데 저들은 예수님이 명절을 기회로 예루살렘에서 세력 형성을 꾀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다.
육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쉽다. 삶을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수님을 저만치 밀어올린 후 경배만 한다.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승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일에 적극 동참하길 소망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8)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 3:2-~2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1-35)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이사야 12:2-3
연약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향하여 나아가, 만지시고,
어둠과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영혼들을 건지시고 구해내시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길 위에 겸손과 순종으로 따라가는 주님의 자녀 되게 소망합니다.
여전히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세상에 썩어질 것들로
덮어 버리려는 악의 세력들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하늘의 소망을 심령 가운데 채워 가는 복된 인생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방 곳곳마다 주님의 선하신 뜻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아버지의 선하신 손길과
도우시는 충만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통과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광선을 비춰 주시고,
치유와 온전한 구원을 얻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움과 분노, 다툼과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뜻을 더 깊이 알고 행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