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베스티즈
연느 남편감은 슈퍼신랑K 할줄 알았는데...
그래도... 인터뷰만으로도 느껴지는 원중씨의 강철멘탈덕분에 든든해요...
연아 꼭 행복하게 해주세여.. 흡..
연느를 보내는 우리의 심정.....(feat. 2NE1)
너 없이 I’M NOT HAPPY BUT I HOPE YOU’RE HAPPY
멀리서 난 널 지켜볼게
너 없이 I’M NOT HAPPY BUT I HOPE YOU’RE HAPPY
모든 기억들은 뒤로한 채
....
[용감한 멘토들] #4. 안양 한라 김원중 선수
이름: 김원중(1984.
12. 18.)
신체: 180cm / 80kg
출신: 경희중 - 경복고 - 고려대
포지현: 포워드
주요경력: 06.
12. 안양 한라 입단
08 ~ 09 시즌 아시아리그
우승
09 ~ 10 시즌 아시아리그 우승
11 아스타니 -
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동메달
12 세계선수권 디비전1 B그룹 우승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과 월드컵 유치를 성공하며 국제 스포츠 대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동계올림픽 개최에 성공한 우리나라는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약세인
아이스하키, 스키점프, 크로스컨트리 등의 종목을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폴란드 크리니차 즈드루이에서 열린 2012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2부 리그) B그룹 5차전에서 폴란드에
3-2의 역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랭킹을 끌어 올릴 교두보를 마련했다. 또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군 문제를 해결할 상무
창단이 이루어지며 올림픽 개최 전까지 선수들이 더욱 열심히 운동할 수 있는 발판이 확보되었다.
그 중심에 '용감한 멘토들' 4번째
주인공 김원중(안양 한라, FW)이 있었다. 아이스하키라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다가올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오늘도 굵은 땀방울로 차가운 빙판을 녹이고 있는 그를 만나보겠다.
만능스포츠맨
김원중
어릴 때 축구, 농구, 수영, 달리기 등 모든 운동을 잘했다는 김원중 멘토는 뭐에 끌린 듯 아이스하키를
만나게 된다.
언제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 초등학교 때 운동을 워낙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됐는데, 아이스하키부가 있더라고요. 다른 종목과는 뭔가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 하고
싶어졌습니다.
부모님 반응은?
- 당시 제 체격이 큰 편이 아니어서 몸싸움이 많은 아이스하키를 한다는
말에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습니다. 포기하고 중학교를 진학하려는데 경희중에 축구부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축구부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그럴 거면 아이스하키를 해봐라.'라고 하셔서 본격적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얼음판으로 나오게 되었죠.
일반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늦게 시작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경복고를 졸업하여
고려대에 진학할 때까지 그는 정말 미친 것처럼 아이스하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 정기전이 대학생활의 전부였던 것 같아요. 너무 억울한 것은 4년 내내 한 번도 못 이겼어요.
당시 애들하고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긴 하죠.
대학생활의 아쉬움은 그것뿐인가요?
- 아뇨, 일반학생들하고
MT도 가고 싶었고 수업도 많이 듣고 싶었는데, 당시 체육특기자의 학습권 자체가 무의미했던 때라 많이 못 즐겼죠. 대학생활이라는 걸. 지금도
정기전 못 이긴 것도 아쉽지만
그보다 더 대학생으로서 생활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4학년에 입은 어깨부상, 그리고
좌절
4학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 한라와 하이원
두 팀뿐이었습니다. 그 중 한라에 꼭 오고 싶었죠. 애석하게도 드래프트를 앞두고 한라와 연습경기에서 어깨부상을 입어 가을 전지훈련에서도 운동을
못했어요. 이대로 선수 생활이 끝나는 거 아닌가 했습니다.
부상으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심정은?
-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이라도 괜찮으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겠는데, 몸싸움이 격한 아이스하키 종목 특성상
어깨에 부상을 입으면
움직일 수가 없죠. 그러나 다행히 드래프트에서 낮은 순위지만, 안양 한라가 저를 지명해주어 프로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인생에 기회가 찾아온 것인가? 안양 한라에서 김원중을 가장 마지막으로 지명하면서
김원중은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의 어깨 부상은 프로 첫해부터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슴에 품은 사표, 오지 않는 기회 포기하고
싶었다.
첫 프로생활 시작은 어땠나요?
- 어깨부상으로 경기도
못 뛰고 계속 벤치에만 있으니 정말 자존심도 상하고 의욕도 안 생기고 힘들었습니다.
그만둘 생각까지
했겠군요?
- 사표도 냈었습니다. 양승준 단장님께서 '지금 너무 성급하다. 조금만 기다려보고 노력해보자'며 회유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 포기하지 않고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걸 찾았고, 그걸 강점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플레이도 자신감이 생기고 '다시
예전처럼 아이스하키를 즐겁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 자신감이 바로 경기에
나타났나요?
- 첫해엔 외국인 감독님이 계셔서 그럭저럭 경기 뛸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년차에 지금의 심의식 감독님께서 오시곤
기회를 안 주셨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학연 따지십니까?'라는 말까지 입에 오를 정도로 오해하며 속병을 앓았습니다. (심의식 감독은 연세대
출신)
그러나 경기에 투입되지 못한 이유를 본인 스스로의 실력 부족으로 인정하며
더욱 묵묵히 운동에 집중한 김원중
멘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그의 아이스하키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게 된다.
무슨
경기였죠?
- 중국 팀과의 경기였습니다. 중국이 팀이 약체긴 했지만 골키퍼가 NHL 출신이라서 골 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플레이를 선보였죠?
- 2년차 시즌이 시작되고선 경기에 못 뛰다가 드디어 제가 들어가게 되었죠.
그리고 정말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멋지게 골을 넣었습니다. 아마 그 경기를 감독님께서 인상 깊게 보신 것 같아요. 그 뒤로 차근차근
팀에서 필요한 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 인터뷰를 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가 속한 안양
한라는 한국 팀 최초로 당당히 일본 팀들을 제치고, 2년 연속 아시아리그 정상에 오르며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놨다. 이제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김원중 멘토는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멘토로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 저는
남들보다 늦게 아이스하키에 입문했습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실력이 부족해서 경기에 못 뛰기도 하고, 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이 저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면 꼭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말고, 네가 가진 능력 중에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꼭 하나라도 있다. 공격이든 수비든 스피드든 그것을 찾아내서 어필해라.'라고 말해줍니다. 심적으로 힘든 것도 분명히 알겠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플레이를 망치는 것이 더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잘 파악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을 특화시켜 정말 열정적으로 몰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많은 학생선수들이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며 불만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불만만 갖고 가만히 있으면 그저 그런 선수로 잊혀질 것이다. 용감한 멘토들 4번째 주인공 김원중 선수의 조언처럼 지금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강점을 찾아 더 큰 꿈을 꾸는 학생선수들이 용기를 갖길 기대해본다.
글 / 김창용 (대학스포츠 블로그 대학생
기자단 /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
사진 / 김윤찬 (대학스포츠 블로그 대학생 기자단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
서류합격입니다. 면접준비해주시고요 장기자랑 준비해오세요.
연느 부탁합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