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내가 만나기 위해서는 / 이수종
오늘 행적을 말할 필요가 있네
목동역에서 빠져 나와 두 계단씩 오르며 운동이라 여기고 힘을 썼네
환승할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식빵을 사고
종업원과 농담하는 사이 버스가 나를 태우고 갔네
퇴근으로 거리는 꼬여도 엇갈리는 법은 없네
신호등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모르겠네 ...
벚꽃 아무리 많이 날려도 부딪혀 다치는 일 없다고
꽃처럼 가벼울 수는 없는 것이네
천신만고로 집 앞 까지 왔네
마지막 남은 신호등의 허락을 기다리며 섰네
한 무더기의 사람들 어디서 떠밀려 왔는지
막 포구에 닿은 귀국선처럼 반기며
오늘도 살아 돌아온 병사같이 안도하네
아파트 모퉁이를 끼고 도는데 비둘기가 뒤뚱거리며 내게 왔네
식빵 냄새가 주책을 부렸을 것이네만
나와 비둘기의 만남은 이 곳에서 정해진 것이었네
비둘기에게 간절한 것을 주고나니 내 배가 다 부르네
내가 오늘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뛴 것도
빵집 종업원이 농담을 순하게 받아준 것도
거기다 하늘까지 도와 눈을 내리지 않은 것도
할머니에게 길 안내하느라 몇 분 지체한 것도
그리고 그 밖의 것도 나는 모르는 일
이 모두가 합세하여 상황을 늦추고 당기며
우리를 거들어 주지 않았다면
나와 비둘기의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네
조우라는 단어의 경박함을 경고 해주는 사건이었네
천재일우는 없네
미리서는 모르는 것일 뿐
[출처] 이수종 시인 27|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