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삼각지대에서의 예언
2004년, 미국에서 9·11 테러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를 올렸을 때 일이다. 그날 함께 했던 60여 명의 후암 회원들에게 “우리 일행 중에 아직도 금연, 금주를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만약 성공하게 되시면 단체로 크루즈 여행을 한 번 갑시다.”라고 제안했었다.
다들 반신반의했다. 애연, 애주가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회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3년이 지난 2007년 6월 3일, 금연, 금주에 성공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46명이 카리브 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 날의 크루즈 여행은 나와 아내의 회갑 기념 여행이기도 하였다. 맨해튼 항구에서 출발한 크루즈는 길이가 약 300m, 12층 데크에 승객 2100명이 승선하는 8만 8천 톤 항공모함급 크기였다. 승선 수속을 밟기 위해 들어간 대합실에는 수천 명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후암 회원들은 화려한 크루즈의 장관에 놀랐다. 매일 파티가 열렸고, 배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품들은 최고급이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후암 회원들은 한두 명 씩 조용히 내게 와서 묻기 시작하였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은 전부 재벌 같은데요. 저희가 어떻게 이 배에 탈 수 있었을까요?”
나는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사실 내가 후암 회원 46명의 크루즈 여행 경비의 절반을 지불하였기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났던 후암 회원들은 여행 경비의 절반만 내고 최고급 크루즈에 탑승하는 큰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우리가 탑승한 크루즈가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날 때의 일이었다. 며칠 동안 크루즈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미디어 금식을 하는 바람에 영적으로 굉장히 맑은 상태로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게 되었다. 나는 촬영 도중 무심코 대한민국의 10년 후를 예언하였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쟁이 없으면 안 되는 나라이다. 국민들에게 국가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전쟁을 독려하는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미국은 전쟁이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65년 동안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기나긴 싸움을 해 왔다. 정치적으로는 큰 진통을 겪었지만 6.25와 같은 전쟁의 내홍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 2007년부터 우리나라에 큰 암운이 올 수도 있다. 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전쟁의 위협에 시달릴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놓은 덫에 북한이 걸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북한을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일 것이며, 북한은 여기에 발끈하여 으름장을 놓는 식이 될 것이다.
안으로는 절대 평등을 강조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빈부격차가 오히려 심해질 수 있다. 평등 속에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평등이 있음을 무시하고 무조건 똑같이 나누려고만 한다면 평등은 도리어 오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재벌이 각종 ‘갑질’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이유로 기업들을 과거 정리하듯이 한다면 대량 해고된 실업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된다는 내용과 함께 차마 밝힐 수 없는 심각한 예언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인터뷰였다.
촬영이 끝난 후에 더욱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우연히 인디언 후예의 영가가 빙의된 한 여인과 만나 염력으로 차원이 높은 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직후, 갑자기 68세의 최고령 후암 회원에게 미스터리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평소 무릎이 좋지 않아 30개도 못했던 무릎 굽혔다 펴기 동작을 무려 1080개나 거뜬히 해내고, 아무리 뛰어다녀도 지치질 않는다면서 자신의 몸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변화에 신기해하던 그는, 급기야 새벽시간 유람선 10층 갑판에서 운동을 하고 잠시 쉬던 중, 남녀 영가가 대화하는 목소리를 들었다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나타났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웃고 말았다. 그의 몸에 드라마틱한 청춘을 안겨준 범인은 바로 나였다. 내가 인디언 후예의 영가가 빙의된 여인과 염력으로 대화를 나눌 때, 그의 몸에 나의 염력의 일부가 들어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는 갑자기 20대 청춘처럼 체력이 좋아졌는데 문제는 귀신까지 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하필 그가 운동한 10층 갑판은 젊은 남녀 한 쌍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소였다.
8박 9일, 다사다난했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맨해튼 항구로 돌아오던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여행을 마무리 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 푸른 바다 위 크루즈 안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연주가 그리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