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메디타치오’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
루터가 1539년 비텐베르크 판 독일어 전집 서문에서 묵상(meditatio)을 설명하는 문장은 길지 않지만 진중한 울림을 준다. 찾아 읽어보자.
“두 번째로, 당신은 묵상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만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입으로 읽고 또 읽고 부지런히 적으며 성령이 그 말씀으로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한두 번 읽거나 들은 것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그런 것은 때가 되지 않아 떨어지는 설익은 열매와 같습니다. 훌륭한 신학자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WA 50,659)
이 짧은 문장에는 묵상을 둘러싼 두 개의 오해가 한꺼번에 교정되어 있다. 한 가지 오해는 묵상이 ‘마음으로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루터는 “오직 마음으로만 아니라”라며 곧장 그 한계를 짚는다. 묵상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마음은 언제나 입과 귀와 손을 통해 함께 움직인다. 그때문에 입으로 읽지 않은 본문은 양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또 다른 오해는 묵상이 한두 번 읽고 끝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루터는 “때가 되지 않아 떨어지는 설익은 열매”라는 비유로 이 성급함을 꼬집는다. 묵상은 본문을 빨리 통과하는 일이 아니라 그 본문 안에 오래 머물러 사는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묵상’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원이다. 라틴어 ‘메디타치오’(meditatio)는 ‘중앙’을 뜻하는 ‘메디움’(medium)에서 왔다. 루터는 이 어원을 자신의 묵상 이해의 근거로 삼는다. 묵상하는 사람은 본문의 변두리를 빙빙 도는 사람이 아니라 본문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에 머물러 본문의 말씀이 자신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끝까지 견디는 일이 묵상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묵상이라는 말은 더 흥미롭다. 루터는 묵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הָגָה)가 본래 짐승이 풀을 ‘되새김질하는’ 행위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시편 1편의 “주야로 묵상한다”라는 구절에서 사용된 그 동사다. 라틴어로 번역하면 ‘루미나레’(ruminare). 소가 풀을 뜯어 첫 번째 위에 잠시 두었다가 다시 입으로 끌어올려 천천히 곱씹는 그 행위가 곧 묵상이라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비추고 씹는다(ruminare)는 걸 묵상이라고 이릅니다.”(LW 10,17)
풀을 한 번에 게걸스럽게 삼키는 짐승은 반드시 탈이 난다. 천천히 끌어올려 곱씹는 짐승만이 그 풀을 자기 몸으로 만든다. 우리의 묵상도 그렇다. 한 번에 삼킨 본문은 양심을 살찌우지 못한다.
글. 최주훈
#기도가_말씀을_만날_때 #샘솟는기쁨 #퇴고중
첫댓글 아멘아멘♡♡♡
샬롬 목사님 ^^
귀한 내용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