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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과 정수 제 43차 정기 답사(안) -1/21(토) (두루미와 함께 하는 철새 탐조,안보관광)
(철원의 재두루미 )
1. 답사일시 : 2006년 1월 21일 (토) 압구정역 7시 출발 2. 출발장소: 압구정역 (7시)/의정부 경기도청 2청사 (7시 40분) 3. 여행장소:
삼부연폭포-직탕폭포-승일교- 고석정-탐조여행(토교저수지,아이스크림고지,
월정리역)-노동당사-도피안사 4. 여행일정
1. 답사인원 버스:44명 / 개별차량 11명 (총 55명) ...아이는 7세 이상만 참가 가능 (버스 신청자가 많을 경우 차 한 대를 더 늘리는 것을 고려하겠음)
2. 회 비 가.버스: 회원성인 38,000원/초중고생 35,000원/ 비회원 40,000원. (전세버스비, 사전답사비, 입장료, 탐조버스 차량, 여행자보험, 식대, 주류, 음료, 간식, 퀴즈 상품 포함) 나. 개별차량: 26,000원/ 비회원 28,000원 (탐조버스비 포함)
3. 입금은행 :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4. 답사 신청방법 가. 아래의 답사신청양식에 의해 '43차 철원탐조여행'게시판에 신청한다. (답사신청만 하고 입금하지 않는 분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닉네임/이름/e-메일주소/ 성별/주민등록번호(멜요망)/주소/연락처(핸드폰)/ 출발지(예 서울 OR 광주)/버스/자가차량/차량제공여부/답사에 임하는 글/답사 참여했었던 장소 (예 영월답사) - 실명과 주민번호를 게시판에 올리지 말고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행자보험 가입 위해 반드시 필요) - 1명당 2명까지 신청할 수 있습니다. 3명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다양한 모놀가족들의 참석을 위해)- 한
번이라도 답사
참가하신 분은 신청양식을 생략해도 좋습니다. 대신 꼭 참가했던 답사지를 말씀 주세요.
인원이 많다보니 찾기가 무척 힘드네요. 다. 우선 '43차
철원탐조여행' 게시판에
먼저 답사 신청을 하시고 신청자 중에서 입금자 순서에 따라 선착순 마감합니다. 제발 답사 신청 전에 먼저 입금 하지 마십시요. 라. 입금은 신청자 이름으로 해야합니다. 입금자가 상이할 경우 반드시 글을 남겨 주셔야 합니다. 계좌번호 잘 확인해 주세요. 신한은행 (366-02-366884) 이종원 마. 입금
후 답사신청게시판에
"입금완료"라는 머리말을 표시하여 게시판에 올려야 합니다. 개별차량은 8시
30분까지 38휴게소 주차장에 집결해주세요.
약도 추후 공지 바. 답사 신청일은 1월 9일 (월)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10시 이전에는 글쓰기 권한을 드리지
않습니다.(모놀답사가 하도 빨리 마감이 되어 메일로 항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똑같은 기회를 골고루 드리고자 이같은 방식을 취했으니
양해바랍니다. ) 사. 회원과 비회원의 차등을 두었습니다. 저렴하게 가실려면 회원에 가입하십시요. 8. 환불 1월 14일
까지 취소자: 전액 환불 -취소벌금은 퀴즈
선물대금으로 사용하거나, 기타 행사비용으로 충당합니다.
9. 이번 답사여행의 특징 -두루미는 전세계 2,000마리밖에 없는데 그 중 580 마리가 겨울에 철원을 찾아옵니다. 고귀한 학의 자태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랍니다. 또한 독수리가 죽은 소를 뜯어 먹는 장면도 목격할 겁니다. -철새(독수리, 두루미, 기러기)탐조와 안보관광 그리고 문화유산 답사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코스랍니다. 삼부연폭포, 직탕폭포등 2개의 빙벽을 만납니다. -탐조여행은 민통선 안쪽이기 때문에 개별차량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개별차량으로 오시는 분들은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게 될 겁니다. -안보관광지(노동당사,철의삼각전망대, 월정리역, 아이스크림고지)를 둘러봅니다. -철원은 굉장히 추운 곳이지요. 옷을 두둑히 입고 오십시요.
알찬 답사 준비하겠습니다. 모놀대장 이종원 (016-219-6001)
(미리보는 여행사진)
두루미의 우아한 삶 늘씬한 다리를 뽐내며 논바닥을 하늘하늘 거닐고 있는 두루미(학)의 자태를 보라. 인간이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고귀함이 풍겨 나온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나은 점도 많다. 부부 중 하나가 죽게 되면 절대로 짝을 바꾸지 않고 평생을 홀로 살아간다 학은 보통 자식을 두마리만 가지는데 절대 혼자다니는 일이 없고 늘 부부가 양 옆에서 호위한다. 2마리인 경우는 신혼부부이고, 4마리는 행복한 가족이고, 3마리는 수 천km를 날아오다가 힘에 겨워 바다로 빠졌던 것이다. 간혹 5마리를 볼 수 있는데 부모를 잃어 버린 아이를 옆집 두루미아줌마가 입양한 경우다.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두루미를 가장 소중한 새로 여겼다. 두루미의 수명이 보통 80년이라고 하니 부모에게는 장수를, 부부에게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관직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는 청렴함을 보여주어 이불이나 관복에 학을 그려 넣었다. 두루미는 청정하고 서식환경이 좋은 고장에만 나타난다. 50년 넘게 이어온 긴장때문에 인간이 접근하기 힘들고 900톤의 낙곡이 널려있어 철원평야는 100만마리의 새들이 찾아든다. 남과 북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새들은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전세계 두루미의 1/3이 철원으로 날아온다고 하니 원하든 원치 않든 분단이 주는 선물이다.
45인승 철새탐조버스 소형망원경과 스코프가 준비되어 있고 가이드가 탑승하여 철원과 안보전적지 그리고 새에 대한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 독수리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3m나 된다.) 토고저수지와 독수리 셔틀버스로 갈아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강원도 최대 인공저수지인 토교저수지다. 저수지 물을 퍼다가 냄비에 담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면 바로 매운탕이 된다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고 한다. 물론 통일되면 낚시꾼들이 가장 먼저 달려 가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독수리가 몰려드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둑방 위에는 독수리떼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하늘에는 척후병인 독수리가 비상하고 있다. 매는 산짐승을 잡아먹지만 독수리는 죽어 있는 동물만 잡아먹기 때문에 요즈음 독수리는 굶어 죽을 판이란다. 더구나 조류독감 때문에 농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가고, 환경단체에서 생닭을 논바닥에 뿌려 놓거나 젖소를 통채로 던져 준다고 한다. 작년에 뿌려 놓은 가축만 소 30마리, 돼지 100마리, 닭 5,000마리에 이른단다.
(사진: 젖소 한 마리가 놓여 있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스코프로 관찰하면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할 정도로 끔찍하다.) 주로 철원을 찾는 독수리들은 나이를 많이 먹었거나 힘없는 독수리가 찾는다고 한다. 시베리아를 시작으로 2,000 km나 날아 왔다고 한다.
철의삼각전망대 철의 삼각 전망대 전망대에 올라서면 드넓은 DMZ이 펼쳐진다. 망원경으로 보면 움직이는 북한군도 볼 수 있다. 워낙 조용하고 평온해서 이 곳이 수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격전지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나무로 뒤덮힌 궁예궁터를 아름아름 더듬어 보았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이 바로 저기다.
월정리역 '月井- 달의 우물'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이름만 가지고는 이 곳이 처절한 싸움터였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서 원산까지 가는 기차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월정리 역이었다는데 너무 오래 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50년 세월동안 월정리 역에서 서성거렸으면 이젠 기차가 출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당장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북쪽으로 달려 가고 싶었지만 폭격 맞은 기차는 앙상한 뼈대만 드러낼 뿐 묵묵부답이다.
직탕폭포 몇 년전 아내에게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자고 했더니 무척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막상 폭포를 보고 나서는 "이게 뭐야..너무 작잖아. "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긴 캐나다에서 직접 나이아가라폭포를 보았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직탕폭포가 훨씬 더 좋다. 왜냐하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주변 현무암 협곡이 폭포와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폭 80미터로 명색이 한국에서 가장 긴 폭포다. 비록 높이가 3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눈을 부라리고 보면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 덩어리가 곳곳에 박혀있어 철원땅의 지형에 관심을 갖게 한다. 한 때 화산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돌들이다. 몇 십년 전 지리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생각해 내느라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본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궁예는 구멍이 숭숭 구멍 뚫린 돌을 보고 "내 운명이 다했구나.." 라고 한탄했기에 강이름도 '한탄강'이 된 것이다.
도피안사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절집'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철원의 대평원 가운데 아트마한 야산에 솟아 있는데 그 안쪽에 도피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향도 천명을 거느리고 천하의 산수 좋은 곳을 찾던 중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 곳에 이르렀다고 하여 '도피안사'를 창건하였다.
사천왕문을 지나 기다란 계단을 오르면 현무암으로 만든 약수터가 나온다. 돌함이 멋드러져서 그런지 물맛 또한 좋다.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올라가면 550년 세월을 살았다는 느티나무가 기다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그 기나긴 세월동안 철원의 희노애락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절집 가운데는 보물 223호인 '도피안사 3층석탑' 자리잡고 있다. 연꽃의 대좌 위에 탑을 올라간 것이 매우 파격적이다. 앙련이 피어 있는 상층기단과 그 밑 괴임대 틈새에 금개구리가 살아 있다고 하여 방송에도 떠들썩 했던 곳이다. 금와보살은 부처님 예불시간에 한 시간이상 대적광전을 향해 부처님을 바라보다가 불탑으로 들어가셨다고 하며 사진까지 걸어 놓았다. 괴임대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다. "금와보살 발견시에는 절대로 떠들지 말고 개구리라는 말과 손가락질은 물론 사진촬영도 삼가해 주십시요."
'大寂光殿'이라고 쓰여진 하얀 현판이 철원평야의 학을 보는 듯 깔끔하다. '伽倻山人'이란 분이 쓰셨는데.....누군지 궁금증을 더해준다. 대적광전 안에는 철원의 자랑이자 국보 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 불상이 앉아 계신다. 팔등신의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육계는 거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초승달처럼 보이는 눈썹에, 지긋이 눈을 감고 있으며 입에서 풍겨나오는 잔잔한 미소가 법당 전체에 퍼진다. 양어깨를 감싼 법의는 부드럽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으며 손가락을 살포시 감싸안은 지권인이야말로 이 불상의 하일라이트다. 삶과 죽음, 해탈과 번뇌를 하나에서 찾으라는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큼직한 연꽃이 둘러쳐 있는 좌대도 볼 만 하다. 철불 뒷면에 1,500명이 뜻을 모아 불상을 새겼다는 명문이 새겨 있어 전남 장흥의 보림사 철불과 더불어 신라 하대 불교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보림사 철불이 육중한 남성미를 강조했다면 이 철불은 부드러운 여성미가 느껴진다.
노동당사 노동당사는 전쟁의 상흔보다도 서태지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으로 더욱 명성이 나 있다. 얼마전에는 열린음악회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이곳이 통일의 상징으로 보여졌다니 다행이다. 이 곳은 6.25전쟁 전까지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된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쌀 200가마와 수 많은 인력을 들여 건설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가장 세련되고 가장 웅장한 건물인 셈이다. 어쨌든 민간인이 이 곳에 끌려들어오면 심한 고문을 받아 죽거나 반 송장이 되어 나왔다고 한다.
철원제일 감리교터 겨울엔 주로 폐사지를 찾아 다니며 스산한 감동을 받는데.. 뼈대만 남은 교회터를 거닐어보니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과 50년전에 우리가 당한 상처다. 1937년 지어졌고 지하 1층 지상 3층의 멋드러진 건물이었다. 이 곳은 반공운동의 본거지였다가 3.8선이 그어지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학살을 당했던 곳이다. 6.25 때는 인민군 병동이 되었으며, 폭격으로 인해 박살나 버렸다. 당시 지하에서 양민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승일교 구철원 가는 길에 아치형의 승일교가 나온다. 예전엔 승일교를 통해 한탄강을 건넜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가슴을 졸였는데 지금은 육중한 '한탄대교'가 옆에 놓이면서 예전의 이야기는 추억 속에 묻혀졌다. 멋드러진 아치교는 그 역할을 아우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차량 통행을 막고 반 백년의 힘겨움을 털어내고 있다. 남과 북이 반 반씩 만들었음을 말해 주듯 양쪽 교각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통일다리야 말로 바로 승일교다. 이 다리 이름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해방 후 이곳이 북한 땅이었을 때 공사가 시작되어 휴전 후 남한사람들이 완성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고 김일성(金日成)과 이승만(李承晩)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承日橋)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승일교(勝日橋)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다리 건너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동판을 보면 한국전쟁에서 죽은 박승일(朴昇日)이라는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왔기에 승일교(昇日橋)라는 명명했다고 적혀 있다. 어떤 이름이든간에 시대의 아픔과 풍상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고석정 얼음트레킹
삼부연폭포 신철원에서 시골길로 꺾어지면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협곡이 이어진다.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서 그럴까. 협곡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20여m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3번에 걸쳐 꺽이면서 웅덩이를 만들어 냈기에 '삼부연(三釜淵)폭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멋진 폭포에 전설이 따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궁예가 철원에 왔을 때 이 곳에서 용이 승천하면서 바위가 가마모양으로 움푹 패여졌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하긴 패여진 바위가 마치 용의 비늘처럼 보여 일말의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기후제를 지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럼..답사 때 뵙겠습니다.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철새 탐조여행 다시 한번 가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