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5. 11. 12. 수요일.
늦가을인데도 하늘에 햇볕이 가득하고, 밝고 환하며, 기온은 온화하다.
나는 요즘 무척이나 피곤하게 산다.
늙어서, 등허리뼈가 더욱 뻣뻣하게 굳어지며 굽혀지는 세월에 와 있기에 나는 걷는 것조차도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
밤에 잠자리에서 자려면 허리뼈가 아파서 고함을 내질러야 할 만큼 아프다.
반듯하게 눕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엎드리지 못해서 옆으로 누워서 새우잠을 자야 한다.
주먹 쥔 손을 등뒤로 돌려서 등허리뼈를 다독다독 두들겨서 허리뼈 통증을 서서히 완화시킨 뒤에서야 겨우 엎드리거나 누우려는 자세를 취한다. 한참이나 싱갱이를 한 뒤에서야 겨우 반듯하게 눕거나 엎드리는 동작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등허리뼈 아파서 힘들어 하는 내가 어제(11. 11.)도 바깥으로 나가 지하전철을 타고서 서울 시청역에서 내려서 숭례문(남대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요즘 내 아내가 내 곁에 붙어서 나를 이끈다. 정신력이 어리버리해서 기억이 잘 안 나고, 행동도 굼뜬 남편을 보호해 준다.
고교 친구 몇명과 함께 숭례문(남대문)에 오랜만에 들렀다.
오래 전(2008년 2월) 화재가 발생해서 숭례문 지붕 누각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채종기(경북 칠곡 출신)가 자기 토지에 대한 보상액이 적다며, 이에 항의하듯이 엉뚱하게 서울 숭례문(대한민국 국보제1호)에 휘발유 뿌려 불질러서 홀라당 불태워버렸다. 그는 징역 10년을 산 뒤에 출옥했다.
숭례문/남대문을 새로 건축했다.
나는 화재 이후에 남대문을 전혀 바라보지 못했다가 어제(2025. 11. 11.)에서야 처음으로 방문해서 숭례문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의장대의 행사가 있기에 잠깐 지켜보았다. 깃발을 높이 쳐들고, 북을 힘차게 두들기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행사였다. 아쉽게도 소수인원이다.
대전 고교친구들 일행을 만나서 남산 북편으로 올라섰다.
완만한 산책로에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도로변 가생이에 줄지어 섰고, 가볍게 등산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오랜만에 남산 북편을 올랐다. 남산공원, 백범광장, 안중근기념관, 와룡묘로 들어가는 입구를 바라보면서, 남산타워 정상이 아닌 장충동 방향으로 내려갔다.
꼬부랑거리고, 구불거리는 남산 북편 산책로를 따라서 걷고, 광장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산 영내 산책시간은 1시간 반쯤 걸렸다.
광장시장은 재래시장이다.
온통 먹을거리 가게들이 즐비하게 들어찼고, 점심때이라서 손님들이 무척이나 가득 찼다.
예약한 음식가게에 들어갔다. 비지떡과 막걸리 잔을 부딛치면서 간식했고, 칼국수와 떡만두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나는 막걸리는 조금만 홀짝했고, 떡만두 국을 배부르게 먹었다.
광장시장 인근에 있는 커피집에도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지 않았다가 내 아내한테서 커피 물을 조금을 나눠받아서 홀짝 맛을 보다가는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맛이 너무나 쓰다. 도저히 먹을 재간이 없어서 그냥 쏟아내 버려야 했다.
지하전철을 타고는 교대역에서 환승한 뒤에서 잠실새내역에서 하차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로 되돌아왔다.
아침 외출하기 전에 샤워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샤워를 가볍게 했다.
내 몸에 밴 땀냄새를 지워야 했기에.
* 숭례문 화재 :
2008년 2월 11일 새벽,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불로 무너졌다. 전날 오후 9시께 방화가 시작된 지 5시간만의 일이다
방화범은 채종기(당시 69세, 경북 칠곡 출신).
그는 2006년 4월에도 창경궁 문정전에 방화하여 4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채씨는 창경궁 방화는 누명을 쓴 것이라고 했고 이것이 억울해 숭례문을 불 질렀다고 했다. 그는 구속 기소되어
10월 9일 대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 와룡묘 :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 사묘·묘사(廟祠)
- 제갈공명는 중국 삼국지 촉나라의 재상이다(왕 유비, 장수인 관우와 장비, 모략가인 제갈공명)
2025. 11. 11. 출입구를 닫았기에 그냥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 광장시장 : 서울 종로구 종로 4~5가에 있는 재래시장
먹을거리 가게가 엄청나게 많다.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2.
어제(11. 11.) 저녁 7시 ~ 9시에 배달된다는 <한진택배> 기사의 문자 멧세지를 읽었다.
아내와 나는 내 핸드폰에 귀를 기우렸다. 물품이 도착했다는 안내문을 알리는 진동소리가 들릴까 싶어서.
알전, 내 고향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 농사 짓는 김씨가 햅쌀 20kg 10포를 택배 보냈다고 했기에 우리 내외는 배달차량을 기디렸다.
11월 11일 밤 8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기에 아내가 한진택배 기사와 통화를 해서 언제쯤 쌀이 배달되는지를 재확인했다.
우송물량이 많아서 11월 12일 새벽 3시에 배달된다고 한다.
새벽에 배달될 예정이라니... 운송배달 차량 기사는 밤잠도 안 자나? 하는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나는 11일 밤 10시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갔다.
12일 새벽 3시쯤에 일어나서 쌀 택배차량이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려고.
12일 새벽녘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여니 쌀이 도착했다는 안내문이 없다. 새벽 5시도 없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보니 아파트 출입구 앞에 쌀포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쌀이 배달되어, 아파트 엘리터에 실어서, 내가 사는 아파트 실내에 운반했다는 뜻.
내 아내가 뒤처리를 했을 터.
쌀 20kg 10포 무게는 200kg. 쌀 두 가마니 반이다(1가마니 80kg) .
물량이 무척 많다.
아내는 쌀을 큰아들네, 작은딸네한테 나눠주겠다고 한다.
나는 쌀을 차량으로 운송해서 소비자의 집에까지 배달하는 <한진택배 기사님>한테 고마워 한다.
먼 곳의 쌀 포대를 집하하고, 운송 지역별로 재분류하고, 최종 소비자한테 운송해 주는 분들(노동자, 근로자,직원 등)한테 고마워한다.
소비자인 내가 잠이 든 밤중에도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다.
3.
일전 내 아내는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에 사는 사촌동생(70살)에게 우편물을 발송했다.
점심 먹고는 서울 송파구 잠실5단지 안의 우체국에 들러서 우편물을 발송했다.
아마도 오후 3시를 넘은 시각이다.
다음날 아침 11시가 넘어선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내가 내 사촌동생과 통화를 한다.
우편물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순간 내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나. 하루가 아닌 20시간 정도 뒤에 우편물이 장거리에 있는 시골마을에 배달이 완료되었다고?!
우체국 직원들을 자지도 않고는 밤새토록 일을 하냐?
어떻게 하루가 안 된 그 짧은 시간에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까지 우편물이 배달되느냐 하는 의문이었다.
너무나도 빠른 운송에 그저 놀라워 한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고마워 한다.
특히나 힘드는 일을 하는 근로자, 노동자들한테 고개를 쑥여 '고맙습니다'를 거듭 반복하고 싶다.
사회의 밑바닥 저변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고개를 수그린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는 편안한 삶을 즐깁니다.'
나는 지금 일흔여덟살, 만76살. 직장에서 벗어난 지도 만17년이 더 지났다.
내가 직장생활할 때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했던가? 뒤돌아보면서 나는 고개를 내젓는다.
위 쌀 배달 운전기사, 우편물 배달 기사님처럼 일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냥 건성건성 일하는 체를 했을 뿐이다.
직장 벗어난 지도 만17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등허리뼈 아파서, 일하기는커녕 천천히 걷는 것조차도 힘들어 하는 세월에 와 있다.
남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연금생활자인 나는 편안하게 살면서 내 인생 후반기/만년을 즐긴다.
"고맙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에게 경롓!."
나중에 보탠다.
단숨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