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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6회 海山 김 만 연 드림
2010,1/13~1/19 뉴욕을 다녀온 여행일기
1월 13일 水 날씨 맑음. 안산과 서울 아침최저기온 영하15도
금년 들어 가장추운 날씨라고 방송을 한다. 1주간 모아둔 쓰레기를 06:00에 집하장에 갖다버렸다. 약간의 기침이 닷새정도 계속되고 완전하게 쾌유되지 않아 뉴욕 장거리 여행출발에 앞서 몹시 괴롭게 생각되었다.
內子가 정성들여 지어준 점심을 같이 먹고 함께 집을 나서 손자 손녀 돌봐주러 일원동으로 간다는 아내의 전송을 받고 집 앞에서 314번 버스로 안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인천공항직행버스로 바꾸어 타고 1시간 만에 3층 대한항공 국제선 탑승場에 도착하였다.
잠시 후 정릉에서 吳교수 내외도 도착하였다. 공항청사 안에서는 난방이 잘 되었기에 두껍게 입고 온 내의가 불편하여 노약자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엷은 것으로 갈아입었다.
짐을 탁송하는 등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할 때까지 공항전망대 Fresh Bar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주위의 젊은이들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작업도 하고 독서하는 이들도 있어 보기에 좋았다. 19:00에 탑승하여 19:30에 이륙하는 To JFK New York. K E 085 중간 부위 46J에 앉았다.
기장은 인사말에서 이륙 후 비행시간이 12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두 시간 정도 비행 후 기내식을 하게 되었는데 비빔밥을 선택하여 맛있게 잘 먹었다.
운동 삼아 기내 통로를 한 바퀴 돌며 탑승 객 들의 동정을 살펴봤다.
400명 정원에 한 자리도 빈곳 없이 滿 席이었으며 거의 모두가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좌석 앞에 마련된 컴퓨터 화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항공기뒷부분 화장실 앞에 서서 각자가 켜놓은 TV수상기를 바라보니 한국 미국 중국 등등 세계 각 나라 각양각색으로 이곳이 바로 지구촌 축소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착륙 두 시간 전 쯤 기내식으론 綠茶죽을 주문하여 많은 야채와 함께 별미로 잘 먹었다. 화장실을 이용 양치질하고 나와 창문 밖을 내다보니 착륙 20분 전 쯤의 뉴욕시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켜진 전등이 도시계획이 잘 되어 마치 줄을 치고 바둑판처럼 일직선으로 도열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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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한 분이 할머니와 함께 정담을 나누며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인사를 청하니 성남 성당에 나가신다고 하였으며 할머니를 자기 어머니라고 소개하며 76세 乙亥 生이라고 하였다. 나하고 갑장이네요. 하니 본당과 본명이 어떻게 되느냐고 하시기에 안산 대학洞성당 암브로시오. 라고 알려주었다. 400명 탑승객 중 그 할머니와 내가 최고령자인 것만 같았다. 현지시간 저녁 9시10분에 착륙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서 예약한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타니 10시10분이었다. 택시 안의 TV수상기에 “Thank you for riding with us. TAXI TV abc 7”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택시기사는 방글라데시에서 17년 전에 뉴욕에 이민 와서 5년前 아내와 사별하고 두 아들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중 둘째 아들은 미군에 입대 현재 이라크에 파병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10 Million 이상의 청년실업자 문제로 골치가 아픈데 의료보험제도 개혁에 부자들이 반대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말을 이어갔다. 어느덧 PM10:40 호텔에 도착하니 버지니아 친구 집에서 2주간 머물다 버스 편으로 뉴욕에 와서 Madison Square Garden Area 232 West 29th Street New York, NY 10001에 소재하는 Holiday Inn Express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자 世 元이를 만나 하도 반가워 얼싸 않았다. 201호엔 세원이 母子. 203호엔 오교수와 翁壻 間 룸메이트가 되어 뉴욕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되었다. 호텔방의 TV는 LG제품이었으며 강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이티를 돕기 위해 HELP for HAITI.를 abc방송국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아이티 돕자” 문자메시지 기부 ‘천만 달라’ 단일 모금 최고기록으로 적십자 “IT 위력 발휘 기부문화 변화”를 크게 방송하고 있었다. 클린턴 前대통령이 방송을 통해 “단돈 10달라만 기부하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기부를 독려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길이 332m 비행갑판의 폭 77m이며 전투기 등을 비행갑판으로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 4대를 갖추고 있는 항공모함 ‘칼 빈 슨號’ (승무원은 의료진을 포함해 3,200명)를 아이티에 급파해서 구조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미국은 거대한 나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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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기숙사에서 가져온 노트북으로 필자는 평생 쓰고 있는 일기를 뉴욕 호텔방에서도 기억을 더듬어 가며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1월 14일 木 뉴욕 날씨 쾌청. 아침 최저 기온 영하 3도 정도
어제 13일은 비행기에서 하룻밤 자고 잇따라 뉴욕 호텔에서 또 자고 하였기에 일찍 일어나 아침 7시에 호텔 안 식당에서 조찬을 하였다.
호텔 바깥을 잠시 거닐어보니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로 우리의 미국여행을 반겨주는 것만 같아 기분이 매우 상쾌하였다.
세원의 기숙사에 갖다 놓을 짐을 챙겨서 택시에 싣고 약 20분 걸려 맨해튼 중심가 Washington Square Park 바로 앞에 있는 뉴욕大 기숙사로 갔다.
NYC Taxi는 모두 노란색으로 운전기사 보호를 위해 운전석과 승객석이 철저하게 분리칸막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기숙사 세원의 방 836호실에 들어서 유심히 살펴보니 감개무량하였다.
Pennsylvania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미국인 Kevin Huber와 룸메이트인 2인1실의 채광이 잘 되는 방에 책상. 책꽂이. 침대. 수납장. 옷장. 화장실 등의 비품이 대단히 양호하였다. 필자가 대학재학시절 기숙했던 서울묵정동의 세계대학봉사회 4인1실 기숙사에 비하면 가히 특급 수준이었다. 기숙사를 나와 손자의 안내에 따라 1831년 제퍼슨 대통령 때 재무장관 이었던 Albert Gallatin이 설립한 180년 전통에 미국최대의 종합대학이며 최근 수년간 고교 수험생들이 뽑은 ‘대학 1위’인 ‘新아이비 리그-뉴욕대학교’라 소개되어 있었으며
맨해튼 남부 6개의 중요 캠퍼스를 중심으로 런던 파리 상해 마드리드 등 25개국 도시에 자체시설분교까지 갖추고 있다는 NYU 시설을 두루 살펴봤다.
‘세계의 중심지’인 뉴욕이 주는 문화 경제 정치 그리고 학문적인 기회와 다양성이 학생들의 호기심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자유로운 교풍이 특징이라고 하였으며 Greenwich Village의 중심에 있는 Washington Square가 바로 인접해 있어서 캠퍼스의 일부 같은 분위기였으며 14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학생수가 4만 명이 넘으나 교수 對 학생 비율은 1:11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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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大의 지리적특성과 큰 규모 이외에 교수진과 학문적으로도 큰 명성을 얻고 있다하였다. 수많은 교수들이 연구원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뉴욕大 출신의 노벨상, 퓰리처상, 미국과학자상 수상자들도 여럿 배출했었단다. 사랑하는 손자 세원이가 월스트리트와 교류하는 스턴경영대에서 Business and Political Economics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건물을 배경으로 해서 기념촬영도 했었다. 스턴경영대는 브로드웨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티시 예술대학과 함께 뉴욕大 단과대학으로선 세계최고라는 명성을 듣고 있는 대학이다.
도보로 시가지를 구경하다 Cannel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7번째 역인 42번가 역에 내렸다. 지하철 승차권은 2,25불로 원근에 관계없이 통용되었는데 한국에 비하면 비싼 편이고 경노우대 제도도 없었다.
100년 전에 건설된 지하철에 재투자도 빈약하여 우리나라의 지하철시설에 비하면 불결하기 그지없었다. 시가지를 두루 살펴보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타임스퀘어 앞 광고탑에 삼성 LG 현대 기아 등의 대형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국력을 읽는 것 같아 아주 흐뭇하였다.
이곳 광고탑에 걸린 광고판의 위치나 크기로 세계적인 기업의 순위를 알리는 것이라고 吳교수는 필자에게 소개해주었다.
차이나타운을 구경하고 코리아타운 입구로 들어서는데 맨해튼 32번가 3층에 ‘백 천 운명 철학 원’이란 한글 간판이 유난히 시야에 들어와 異域萬里 이곳 뉴욕에 와서도 한국 사람들의 미신에 의존하는 습성을 읽게 하였다.
코리아타운을 거닐어보고 ‘큰집’ 한식당에 들러 콩나물 북어탕을 시켜 오찬을 했다. 식대는 1인 8불에 10%의 부가세와 17%의 팁까지 보태 주어야하니 한국에 비하면 배나 비쌌다. 날씨가 너무나도 좋아 오후에도 미드타운을 거닐며 구경을 하다가 ‘Barns & Noble’ 서점에 들러 세원이가 읽을 책을 살펴보며 책방 코너 찻집에서 다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데 거기에서도 고객 거의 모두가 책을 읽으며 茶果를 들고 있었다. 서점을 나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쉬면서 저녁식사는 전화로 주문 호텔방에서 담소하며 조용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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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낮에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 세원에게 食滯를 일으켜 고생하는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다. 마음속으로 속히 쾌유되길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1월 15일 金 날씨: 약간의 구름.
아침에 일어나 호텔 바깥엘 나가보니 날씨는 매우 포근하여 이번 여행에 날씨 덕을 단단히 보는 것 같았다. 오늘은 Chicago Weiss Memorial Hospital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종손녀를 만나러 갈려 했는데 손녀 柱 延이가 마중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바쁘다는 연락이 와서 캔슬하고 7시경 호텔 식당에서 조찬을 하고 난후 9시반경 뉴저지에 살고 있는 반세기 전 대학재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후배 김 성 진 동문이 1963,2,17 필자의 결혼식 때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里 신부 집 마당에서의 혼례식장에 하객으로 참석 그 당시로선 처음 나온 컬러 사진기를 갖고 와서 결혼사진을 찍어주었든 그 친구가 來訪하여 나를 픽업해갔다.
그의 승용차로 맨해튼을 빠져나가 허드슨 강(Hudson River)을 건너는 ‘2층 교량인 G. Washington Bridge’(다리 통과료 8불)를 건너 95번 고속도로를 기분 좋게 달리며 관광 안내 역할을 해주는 그가 한 없이 고마웠다. 이대로 남쪽으로 30시간 정도 달려가면 Florida주가 나온다고 하였다.
어느 정도 달리다 되돌아와 NEW JERSEY에서 허드슨 강 건너 맨해튼을 바라보며 아름다운관광을 시켜주는데 40년 가까이 뉴욕에 산 김 동문은 나에게 신나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맨해튼은 동서로 약 4km. 남북으로 약 20km나 되는 큰 섬인데 지하가 암반으로 되어 있어 초고층건물이 즐비하다 하였으며 양쪽에는 허드슨 강과 이스트 강. 앞쪽에는 바다가 있어 육해공으로 요지중의 요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땅이라 하였다. 월가 지하10층까지 금덩이가 저장되어 있어 이것으로 세계경제를 Handling 하고 있다 하였다.
뉴저지 시가지엔 日製의 간판들과 日製 자동차가 눈에 많이 띄었으며 한국산 자동차는 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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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은 Japanese Restaurant에 들러 좋아하는 장국에 신선한 회 초밥을 맛있게 먹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난후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인근의 Super H(한 아름) Mart를 구경했다.
서울양재동의 ‘한 아름마트’만큼이나 대형이었으며 우리나라 각도의 농 특산품 코너도 있었다. 찬바람을 쐬면 기침이 나오기에 마트약방에서 중외제약의 ‘화 콜 골드’ 10캡슐을 7불 주고 구입해서 우선 두 알을 복용했다. 그러면서 형님! 기침감기 떨어지게 좋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하며 321 Commercial Avenue, Palisades Park, NJ 07650에 소재한 KING SPA SAUNA에 들어갔다.
방대한 규모의 시설과 쾌적한 환경 등 그 내용에 감탄을 하였다. 한약재를 넣은 약탕 등 갖가지 탕에서 반신욕을 즐기고 사우나를 한 뒤 소정의 유니폼을 입고 몇 개의 한증막을 이용해보며 휴식을 취했다. 쾌적하고 안락한 휴게실에는 장기바둑 컴퓨터 등 놀이기구도 두루 갖춰져 있었다. 한증막 휴게실은 남녀공용으로 많은 미국남녀고객들도 있었다. 김 성 진 동문과 생강차를 주문해서 따뜻한 황토방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수십 년 묵은 정담을 나누었었다. 부부가 3~40代라면 E-2비자로 아직도 기회의 나라 미국에 이민 와서 자식들 교육시키기 위해 도전해볼만한 곳이라 하였다. 단 부부가 영어에 능통하고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그 정도라면 한국에서도 잘 살 수 있는걸 하고 웃었다.
그는 1972년도에 부인이 간호사로 미국병원에 취직하여 아내의 희망에 따라 이민 와서 두 딸이 Staten Island에 있는 노-틀 담 하이스쿨을 나와 NYU 스턴경영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였으며 김 동문 두 내외는 3년 전에 이곳 뉴저지로 이사해 왔다고 하며 다음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SUNG JIN KIM. 188-A Commercial Ave Palisades Park.
NJ 07650 H-201-482-4124. C-201-669-2626
저녁식사는 무엇으로 할까요? 해서 김치와 두부 된장찌개면 최고지 하였더니 전화로 자기부인더러 그렇게 준비하도록 일러두고 한참 뒤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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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성진동문 합부인이 정성들여 끓여준 유자차와 옥수수茶를 마시며 환담하다가 또 정성껏 차려준 만찬을 셋이 함께 하였다.
싱겁게 담겨진 김치와 된장국이 내 입맛에 딱 맞아 맛있게 잘 먹었다.
김 성진 동문은 맨해튼 숙소까지 필자를 태워다 주는데 타임스퀘어는 夜景을 꼭 봐야한다며 그곳으로 가서 유료주차장에 파킹하고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야경을 구경하고 사진까지 찍어준 다음 친절하게 호텔로 태워다주고 뉴저지 자택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다정하고 고마운 친구였다.
1월 16일 土 날씨 맑음
오늘은 어제 세원의 엄마가 뉴욕 여행나라<718-359-3500>에 전화하여 예약해둔 맨해튼 시내관광에 나섰다. 세계최고 뉴욕최고라는 수식어가 이만큼 어울리는 도시가 없었다.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금융, 학술, 예술, 춤, 교육, 미술관, 박물관, 식당, 극장, 디자인, 외교에 이르는 세계의 首都임을 실감케 하였다.
또한 전 세계 대부분의 인종이 모여 사는 뉴욕의 복잡하고 다양하며 빽빽한 고층빌딩 사이의 하루관광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즐길만한 관광도시라고 생각되었다. 오전에 바다페리를 이용 TV나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서 관람하였다. 미국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는 Statue of Liberty. 왼손에는 독립선언서를 쥐고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듯이 횃불을 높이 들고 자유와 평화를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손자 세원이가 다니는 NYU의 校旗가 이 멋진 횃불이었다.
오전관광을 마치고 코리아타운 ‘충무로’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오찬을 했다. 오후엔 뉴욕 시내관광에서 즐길 수 있는 옵션으로
NY SKYRIDE를 즐겼다. 대형 스크린과 시뮬레이션 의자를 통해 마치 “BIG APPLE" 헬리콥터를 타고 맨해튼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는듯한 느낌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스카이라이드’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1실에서는 뉴욕의 명소 10여 군데를 샅샅이 소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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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실에서는 뉴욕의 역사를 영어를 잘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하니 장시간 기다려야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줄도 기다림 없이 86층 전망대까지 곧장 올라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전망대에서 사방으로 뉴욕 시내를 바라다보니 장관 또 장관 감탄이 쏟아져 나왔었다.
이곳에서 내려와 2층 관광버스로 워싱톤 광장, 소호, 차이나타운, 월스트리트, UN본부를 둘러보고 센트럴파크 부근에 파킹해두고 함께 승차했던 일행들이 브로드웨이뮤지컬을 관람하러간 사이 오교수와 나는 세계최대도시 한가운데 있어 바쁘고 소란스러운 맨해튼에서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341萬평방미터의 센트럴파크를 힘닿는데 까지 멋을 부려 서서히 거닐어봤다.
여러 개의 연못과 웅장한 바위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 울창한 나무들과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연못 스케이트장에는 많은 남녀들이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 Star Bucks Coffee를 한손에 들고 개와 산책하는 부인, 조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스러웠다.
공원 바깥 한길에서는 마차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저녁6시경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못 다한 야경 시내관광을 마치고 맨해튼 32번가 우리은행 앞에서 해산하였다.
밤에 호텔방에서 손자가 월스트리트저녈(WSJ) 신문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금융정책을 설명해주어 대견스러웠다.
2009년 한 해 동안 월가 주요은행과 증권사들이 보너스와 임금으로 지불한 돈이 1,455억4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18% 증가한 것이라 하였다. 이들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48,877달러로 2007년보다 2,500달러가 늘어났다고 하였다. 실업률이 10%에 달하고 미국경제가 여전히 곤경에 처해있어 월가의 임금은 무자비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어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 그들만의 대규모 보너스 잔치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며 이들 대형 금융기관에서 향후 10년간 ‘금융위기 책임비용’관련 세금 9,000억 달러를 거둬들일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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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日 날씨 오전 흐림, 오후 약간의 비
11시50분에 4박한 호텔을 Check out 하고 나와 짐을 택시에 싣고 세원의 기숙사에 잠시 맡겨두고 도보로 시내관광을 하며 코리아타운 ‘신라’ 식당으로 가서 ‘야채 죽’으로 오찬을 했다. 오후엔 유엔본부 가까이 315 EAST 47th ST. NEW YORK. N.Y 10017에 소재하는 뉴욕대교구 한인 천주교회 Church of the Holy Family 성당에서 한국인 장 코넬리우스(흔) 주임신부님이 집전하는 3시부터 4시 반까지의 미사에 참례하였다.
영성체 한 후 손자 세원 가브리엘이 건강한 몸으로 학업에 열중하여 글로벌리더로 키워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협의회에서 발행한 ‘한영 매일미사 책’으로 영어로 먼저 말 한 다음에 한국어로 미사를 집전하였었다.
미사가 끝나고 커피타임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와 서둘러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으로 걸어갔다.
미사가 끝나기 직전이었다.
후미에 있는 성모님 상 앞에 촛불을 켜고 봉헌하며 미사마무리 장면을 구경했다. 그리고 손자와 나란히 서서 1906년에 지어진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인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Cathedral of Saint Patrick GIFT SHOPS에 들러 평화방송소년소녀합창단인 손녀 星禧(엘리사벳)와 손자 昌燮(요한) 에게 줄 선물 한 점을 구입했었다. 성당 정문에서는 미사 집전하는 추기경님의 신변보호를 위해 순찰犬의 줄을 잡고 서 있는 수명의 경찰관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 복잡한 맨해튼 거리에서는 경찰관 구경을 할 수 없었음에도 교통소통이 잘 되고 질서가 있는 모습을 볼 때 이곳이 과연 선진 민주국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번가 쪽으로 난 3개의 청동 문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7,000개 이상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오르간이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등 맨해튼의 유명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도보로 카네기홀과 록펠러 센터도 둘러보았다. 록펠러센터는 ‘도시속의 도시’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다기능 복합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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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센터 19채의 고층빌딩에 근무하는 사람만 해도 65,000명. 방문자 수는 17만 명 이상이라 한다. Rockefeller Plaza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저녁 늦게 ‘북창동순두부집’으로 가서 손자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1주간의 뉴욕여행을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과정을 미국에서 언어소통에 불편함이 없이 교과를 잘 소화해 가며 외국인 친구들과 우애 있게 지내며 대학 생활하는 손자가 기특하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가니 많은 학생들이 3주간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내일 월요일부터 수강하기 위해 속속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세원의 방에 맡겨둔 짐을 찾아 손자 世 元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기숙사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JFK(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공항으로 나오는 40분 동안 택시 안에서 기사가 유머러스한 말로 우리를 계속 즐겁게 해주었다. 승차하자마자 일본인이냐고 물어 와서 한국인이라고 대답하고선 하차할 때 까지 대화가 계속 되었다.
미국에서 1년 이상 교환교수생활을 한 吳교수 내외는 다 알아들었으나 나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JFK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그간 대한항공 SKY PASS 마일리지 적립된 것으로 모닝캄 프리미엄 클럽 회원 대우를 받아 세 사람이 프레스티지 라운지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18 JAN 10. 00:30
K E 086 E 45K SEAT에 탑승 01:15에 이륙하였다.
1월 18일 月 낮 구경을 못한 날이다.
1월18일은 뉴욕 JFK공항에서 탑승으로부터 인천공항에 내리기까지 16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각자의 좌석에 설치된 컴퓨터로 드라마, 게임, 음악, 뉴스, 기내운동 등을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어 그렇게 지루한줄 몰랐다. 그러나 연로한 사람들에게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만 같았다. 400명 탑승객 중 필자와 같은 70代 중반을 넘어서는 연령층은 불과 수명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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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2시간 후와 착륙 2시간 전 쯤 두 차례의 기내식이 입맛에 맞아 잘 먹고 견딜 만 하였다.
70代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에도 大寒 무렵 엄동에 뉴욕엘 예정대로 1주간의 용무를 잘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음을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1월 19일 火 날씨 흐림 오후 약간의 비
05:30에 인천공항에 착륙하여 입국수속 후 잠시 공항대합실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06:20발 안산행 공항버스를 타고 귀가 하니 07:50이었다. 샤워하고 9시경 아내와 같이 조반을 먹고 장거리 여행으로 인한 피로를 마음껏 풀었다.
內子는 점심을 차려놓고 외손자 돌봐주러 정릉엘 갔다가 밤9시에 귀가했다. 컴퓨터 앞에 홀로앉아 1주간의 뉴욕 여행을 다음과 같이 결산해보며 크게 만족했다.
①미국전역에서 모여든 학생들과 133개의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재학 중이며 매년 2,500여과목이 개설되고 25개의 학위가 수여되는 뉴욕大. 부설 어학교인 American Language Institute에서는
수많은 ESL학생이 공부하고 있으며 한국학생들도 100여명에 이른다.
65%의 대학생들이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여전히 뉴욕시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스터이베산트고등학교,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 브룩클린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수가 전체고등학교 들 중 1,2,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 나라 학생들의 NYU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응시자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입학경쟁 또한 치열해졌다고 한다.
높은 GPA와SAT점수를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NYU에 입학해서 쾌활하게 학창생활을 하는 손자를 70代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에 16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대학기숙사를 방문 직접격려하고
손자가 재학하고 있는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을 직접 살펴본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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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짧은 1주간이었지만 세계의 首都 뉴욕을 두루 살펴보며 견문을 크게 넓힌 점이라 할 수 있다.
③그리고 건강관리만 잘 하면 아직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점이라고 할 가요.
그런데 귀국해서 크게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민족들은 아직도 많은 노력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되었다. 뉴욕에서의 일주간은 만나는 사람마다 밝은 얼굴에 다음의 말들로 친절하고 활달하고 질서를 지키고 예의가 발랐다.
<Hi, Kim. How are you? Good morning, Kim. How do you do, Mr. Kim? Nice to meet you. I'm sorry. Excuse me. Pardon me. 등등>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무뚝뚝하고 못 본체하고 몸을 스쳐도, 남의 앞을 예사로 끼어들고도, 양해를 구하는 말도 없이 발을 밟다 시피하고 지나가니 한 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지. 더구나 복잡한 보도나 지하철 환승 시의 기다릴 때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예사로 남의 앞에 끼어들고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좌측통행하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우측통행으로 표시해두어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다소 부족하더라도 문화적으로 예의바른 국민이 되었으면 그것이 행복한 나라가 아니겠느냐고 하신 백범 김 구 선생의 말씀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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