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인식론 (2)
1. 불교(佛敎) 인식론
불교는 종교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종교적 측면은 다시 소승교와 대승교로 나눌 수 있고, 철학적 측면은 실일체유부, 경량부, 중관학파, 유식학파의 4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줄여서 유부(有部)라고도 하며 소승교에 속한다. 초기불교의 성격이 강하다. 존재론에서는 이원론(물질과 정신), 인식론에서는 실재론을 주장한다. 그리고 인식되는 대상이 지각적 인식에 직접적으로 알려진다.
(2) 경량부(經量部) : 줄여서 경부(經部)라고도 하는데, 소승교에 속한다. 유부가 삼장 중 논(論)에 치중하는데 비해 경량부는 경(經)에 중심을 두고 있다. 존재론과 인식론은 기본적으로 유부와 같다. 다만 인식되는 대상이 지각적 인식에 간접적으로 알려진다.
(3) 중관학파(中觀學派) : 유와 무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中道)를 관(觀)해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파로서 대승교에 속한다. 연기(緣起)와 공성(空性)을 실재(實在)로 본다.
(4) 유식학파(唯識學派) : 존재론에서는 일원론이고 인식론에서는 관념론의 입장에 서 있다. 식(識)만이 실재(實在)하며, 인식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외경실재론(外境實在論)을 거부한다.
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 존재와 인식의 뿌리가 되는 근본식(根本識)이며, 종자를 저장하는 장식(藏識)이기도 하다.
7식인 말나식(末那識) : 항심사량(恒審思量)이라고 하는데, 항상 상세하게 나와 나의 것을 생각하고 헤아리는 무의식(無意識)이다.
6식인 의식(意識) : 의근(意根)에 의지하고, 일체의 대상을 연하여 일으키는 인식작용이다. 자상연(自相緣, 개별적 고유성질, 감각)과 공상연(共相緣, 보편적 찰나성질, 개념)에 모두 작용한다.
5식인 전5식(前五識) :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감각의식(感覺意識)이다.
⋇. 일부 학파(섭종론과 천태종)는 9식인 아마라식(阿摩羅識)을 근본식으로 보기도 한다. 이때 8식인 아뢰야식은 개체의 근본식이고, 9식인 아마라식은 우주의 근본식으로 아즉우주(我即宇宙)를 나타낸다.
2. 도가(道家) 인식론 : 현(玄)의 인식론
(1) 『도덕경』 2장
1) 원문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는 이미 자신들이 싫어하는 ‘추함’이 전제(前提)되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행위인 인위적인 선함을 선함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선함’에는 이미 자신들에게 좋지 못한 행위인 ‘악함’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게 서로 전제가 되어 있으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되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표와 소리는 서로 화합하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
2) 해설
현(玄)의 시각으로 보면 미와 추, 선과 악처럼 대립되는 것들(유무, 난이, 장단, 고저, 음성, 전후)은 서로 전제(前提)가 되어 있다. 전제는 ‘미리 제시되어 있다’는 말이다. 아름다움이 존재하거나 인식되기 위해서는 추함이 미리 제시되어 있어야 하며, 추함이 존재하거나 인식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이 미리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즉 미와 추처럼 대립되는 것들은 서로간에 미리 제시되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의 인식론’은 대립되는 것들까지 하나의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2) 『장자』 1장 소요유 1절
1) 원문
북극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하였다. 곤의 길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하는데, 붕의 등도 길이가 몇천 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이 떨치고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비로소 남극의 바다로 옮아가게 된다. 남극 바다란 바로 천지(天池)인 것이다.
제해(齊諧)라는 책은 괴상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제해의 기록에 “붕(鵬)이 남극 바다로 옮아 갈 적에는 물을 쳐서 3천 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가며, 육 개월을 날아가서야 쉬게 된다.”고 하였다.……
2) 해설
장자는 자신의 책 『장자』의 첫문장(1장 1절)에서 대립되는 것들을 하나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고 있다. 곤(鯤)이라는 물고기는 아주 작은 물고기이다. 그런데 장자는 이 물고기를 아주 큰 물고기로 변신시켰다. 더 나아가 곤이 변하여 큰 새(鵬)이 되어 북극바다에서 남극바다인 하늘의 못(天池)까지 날아간다고 말한다. 곤이라는 작은 물고기의 거듭된 변신은 대립되는 모든 사물이 결국 다르지 않다(玄同, 齊物)는 현의 인식론을 나타낸 것이다.
(3) 『장자』 2장 제물론 23절
1) 원문
“나와 당신이 논쟁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나는 당신을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당신은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요? 내가 당신을 이기고 당신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옳고 당신은 그른 것일까요? 그 어느 쪽은 옳고 그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요?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요? 나나 당신이나 모두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본시부터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까?
당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당신과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와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당신과 의견이 다르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와 당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당신과 의견이 같거늘 어찌 올바로 판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나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논리를 믿겠습니까?”
2) 해설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가리는 논쟁(論諍)이 어리석은 행위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논쟁에서 이기고 진 것이 올바르고 그른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논쟁을 한 사람이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제삼자에게 판단을 맡겨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의 인식론에 의하면 시비거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차시예고
13회(09.04.) 이태호 (철학박사/통청인문학아카데미 원장) 현의 가치론(1) 14회(09.11.) 이태호 (철학박사/통청인문학아카데미 원장) 현의 가치론(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