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反美가요 확산의 선봉장
윤민석 씨가 만든 「fucking U.S.A」 한민전 게재
2004년 말 윤민석이라는 작곡가 겸 작사가는 「평양에 가보세요」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사는 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보세요.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있죠.… 사람의 정이 그리울 땐 평양에 가보세요.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그런 인정이 있죠』 등의 가사를 담은 노래였다.
윤씨는 「노래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곡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국보법에 대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守舊)매국노들과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의 저주와 전쟁숭배의 주문』이라고 비난하며 『희대의 악법(惡法)인 현행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윤민석 씨는 2004년 3, 4월 盧武鉉 대통령 탄핵반대집회에서 주제가 역할을 해온 노래 「너흰 아니야」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탄핵반대 집회에서 「너흰 아니야」 외에도 「헌법제1조」, 「격문1」, 「격문2」 등을 유행시켰고10), 2002년 여중생촛불시위 당시에는 「fucking U.S.A」, 「또라이 부시」, 「기특한 과자」, 「반미반전가」, 「반미출정가2002」, 「전쟁 한번 합시다」, 「주한미군에게 고함」, 「결전가」, 「범민련진군가」, 「날아라 한총련」 등 일련의 反美가요를 유행시켰다.
특히 윤씨가 만든 「fucking U.S.A」, 「또라이 부시」, 「기특한 과자」 등은 2004년 9월 국보법 위반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통일연대 민경우 씨를 통해 북한에 보내져 對南혁명기구인 한민전 473호의 자주민주통일의 광장란에 게재되기도 했다.
「fucking U.S.A」의 경우, 『야비한 나라, 더러운 나라, 분단의 원흉 fucking U.S.A. 우리가 식민지 나라의 노예인가. 이제는 외치리라 미국반대. 아직도 북한이 죽여야 할 적인가. 이제는 외치리라 양키 고 홈』 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범민련 진군가」의 경우, 『자랑찬 조국의 동포들이여 통일의 성전에 모두 나서자.…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 연방제의 기치 드높이… 동포들이여 반미의 성전에 모두 나서자.… 미국반대 없이는 통일도 없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반미반전가」의 경우, 『미제국주의의 미친 칼바람… 반미반전, 양키 고 홈』등의 가사를 담고 있다.
1992년 「金日成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만들어
윤민석 씨는 1992년 남한 조선로동당 사건 당시 金日成 찬양 노래 등을 만들어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네 차례에 걸쳐 구속된 바 있다.
1993년 3월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남한 조선로동당사건 수사백서」에 따르면 윤씨는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산하단체인 「애국동맹」에 가입,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金日成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과 북한 조선로동당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찬양하는 「한민전찬가」, 「한민전10대 강령」이라는 노래 등을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백서에는 윤씨 곡의 사용용도 등과 함께 자필악보가 수록돼 있다.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라는 곡은 『혁명의 길 개척하신 그때로부터 오늘의 우리나라 이르기까지 조국의 영광 위해 한생을 바쳐 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없습니다』라는 1절 가사와 『언제라도 이 역사와 함께 하시며 통일의 지상낙원 이루기까지 조국의 영광 위해 한생을 바쳐오신 수령님 그 은혜는 한 없습니다』라는 2절 가사를 담고 있다.
「金日成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라는 곡은 『조국의 하늘 그 위로 떠오는 붉은 태양은 온 세상 모든 어둠을 깨끗이 씻어주시네. 아 金日成 대원수 인류의 태양이시여 만년 대를 이어 이어 충성을 다하리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윤씨가 만든 이들 노래들은 각각 1991년 11월 金日成 생일축하(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1992년 4월 金日成의 대원수 직위 추대(金日成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로서 북한 재일(在日)공작거점을 통해 북한에 보고된 것으로 수사백서는 밝히고 있다.
『통일하려면 미국군대부터 몰아내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 이후 선정된 청소년권장도서들 중에는 백기완의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통일이야기」, 강만길의 「우리통일 어떻게 할까요?」, 이일하 외 「토
10 2005년 8·15 사건
『제국주의 우두머리 美帝 꺾은 나라가 동족일세(?)』
광복 60주년인 2005년 8월15일을 맞는 새벽, 서울 시내 한복판인 경희대 노천극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를 외치는 反美 운동권의 대규모 집회가 개최됐다.
통일연대, 민중연대, 민주노동당 주최로 열린 이날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에는 1만여 명(주최 측 추산 1만5000여 명)이 참석, 집회 내내 「주한미군 철수」의 구호를 외쳐댔다. 행사는 8월14일 오후 11시30분부터 이튿날 새벽 3시경까지 계속됐다.
대회 전에는 『그들은 우리 민족을 참혹히 학살했다』, 『천년이 가고 억년이 가도 잊을 수 없는 원수 美帝』,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美帝의 핵전쟁책동을 짓부수자』 등의 캡션이 새겨진 영상물이 상영됐다. 대회 중간중간에도 『이제 남은 것은 주한미군 철수뿐이다』 등의 멘트가 담긴 영상물이 삽입됐다.
노무현 정권이 入國시킨 反국가단체 「한통련」 관계자들은 무대에 올라 『외세를 물리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 연방제 통일을 이루자』고 외쳤고 청중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소위 문화공연의 내용도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하는 내용들이었다. 노래패 「하늘새」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합시다』, 『전세계 제국주의 우두머리 미국을 꺾은 나라가 동족일세. 우리 민족, 민족공조 제일일세』 등의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불렀다.
노동자 율동패는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金日成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등 金日成 찬양노래를 만든 바 있는 윤민석의 「fucking U`.S.A」에 맞춰 열광적(熱狂的) 反美댄스(?)를 췄다.
소위 어린이통일선봉대는 머리에 붉은색 꽃을 단 북한 여자어린이 분장을 한 채 북한노래를 불렀다.
민중연대 상임대표 정광훈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의 밝은 미래에 고춧가루를 뿌리려는 꼴통놈들, 우리 민족 자주와 통일에 사사건건 방해하고 전쟁준비에 혈안이 된 미국놈들을 다 때려잡아야 한다』며 『이제 9월에는 인천에서 맥아더동상을 끌어내리고, 11월에는 부산에 온다는 부시 놈 잡으러 모두 달려가자』고 선동했다.
통일연대 상임의장 한상렬은 『문익환 선생님, 金日成 선생님이 만나 처음 나눈 말이 분단 50년을 넘기지 말자는 것이었는데 이제 60년이 돼 버렸다』며 『분단의 원흉, 세계평화의 파괴자 美帝를 끌어내려 통일을 이뤄내자』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는 『주한미군 철수하고 조국을 통일하자』는 주한미군 철수가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이북은 민중의 자주를 지키는 나라로 우뚝 서(?)』
이튿날 오전 10시30분 대학로에서 열린 소위 「8·15 반전평화 자주통일 범국민대회」에도 같은 주장이 반복됐다. 역시 통일연대, 민중연대,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주한미군 몰아내고 조국통일 앞당기자』는 구호 아래 소위 「온갖 外勢귀신, 재벌귀신을 몰아내기 위한」 풍물패의 행사로 시작됐다.
「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은 『지금껏 이 땅의 주류는 친일매국노, 친미매국노였지만, 以北은 60년간 미국 전쟁책동 압살정책을 되받아쳐 굶어 죽으면서도 민중의 자주를 지키는 나라로 우뚝 섰고 남한의 노동자들은 경제를 이만큼 일궈 왔다』며 『민중이 주체가 돼 60년 분단을 우리 손으로 청산하자』고 말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이수호는 『분단 60년 양민학살과 권력찬탈, 민주주의 말살의 주범인 미국을 향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6·15 공동선언을 높이 들고 가야 한다』며 『전쟁과 예속과 범죄의 근원인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통일된 세상을 열어 나가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군주둔 60년인 9월8일을 맞아 미군이 첫발을 들여놓은 인천으로 총집결해 미군주둔 60년을 청산하기 위한 주한미군 철수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을 결의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6·25 사변, 金日成 책임 대신 미군이 「대량학살?」
2005년 8월14일부터 28일까지 국회 중앙광장에서는 광복 60년 기념전시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중앙일보 주관, 광복60주년기념사업회 주최)가 개최됐다. 그러나 이 행사는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회고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反美선동과 함께 산업화(産業化)를 주도한 역대 정권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했다.
本 전시는 8·15 광복부터 4·3 폭동, 6·25 사변, 4·19 의거, 10·27 유신, 광주사태, 6월항쟁, 6·15 남북정상회담을 사진과 대형캡션으로 다룬 사진전이었다.
6·25 사변(事變)과 관련, 金日成의 전쟁발발 책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형제의 손에 총을 쥐어준 자들이 뒤에 서서 죽음과 파괴의 잔치를 셈했다』며 미국이 6·25 전쟁으로 빚어진 피해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서술을 했다.
『폭탄이 우박으로 쏟아지던 그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사용한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이 쏟아져 내리던 그날. 4백만의 동포가 깡그리 생목숨을 내어주어야 했던 그날. 형제의 손에 총을 쥐어준 자들이 뒤에 서서 죽음과 파괴의 잔치를 셈하던 그날…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터진 폭탄의 양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쏟아 부은 폭탄의 양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인명피해와 함께 가정과 지역사회와 각종 사회조직도 파괴되었고 삼천리금수강산도 폐허로 변해 버렸다.… 최소한 100만 이상의 민간인들이 까닭도 영문도 모른 채 죄 없이 대량학살로 쓰러져가야 했다. 일찍이 없었던 이 참혹한 집단살인은 아직도 그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전시물 캡션 中에서)
6·25 전쟁 당시 제공권(制空權)은 미군에 의해 장악돼 있었기 때문에 공중 폭격은 미국에 의해서만 이뤄졌다. 따라서 6·25 전시물이 『400만의 동포가 깡그리 생목숨을 내줬다』거나 『100만 이상 민간인들이 죄 없이 쓰러져가야 했다』고 비난하는 「집단살인」, 「대량학살」은 미군의 공중 폭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金日成의 남침(南侵), 공산주의자들의 양민학살 등은 외면한 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이뤄진 미군의 교전행위를 「학살」과 「살인」으로 매도하는 식의 왜곡은 다른 전시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댓글 『사는 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보세요. .... 』 의 가사 처럼 정일이를 형이라는 놈은 북으로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