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 345
Na taṃ dalhaṃ bandhanamāhu dhīrā 나 땅 달항 반다나마후 디라
yadāyasaṃ dārujapabbajañca 야다야상 다루자빱바잔짜
sārattarattā maṇikuṇḍalesu 사랏따랏따 마니꾼달레수
puttesu dāresu ca yā apekkhā. 뿥떼수 다레수 짜 야 아뻭카.
지혜로운 사람은 말한다.
나무와 쇠사슬의 얽매임은
차라리 강한 것이 아니라고
재산과 아내와 자녀, 그리고
보석과 패물들의 얽매임이 훨씬 더 강하기에.
Wise people do not call that a strong fetter which is made of iron, wood, or hemp; far stronger is
the care for precious stones and rings, for sons and a wife.
24 - 346
Etaṃ dalhaṃ bandhanamāhu dhīrā 에땅 달항 반다나마후 디라
ohārinaṃ sithilaṃ duppamuñcaṃ 오하리낭 시틸랑 둡바문짱
etampi chetvāna paribbajanti 에땀삐 체뜨와나 빠립바잔띠
anapekkhino kāmasukhaṃ pahāya 아나뻭키노 까마수캉 빠하야.
그 얽매임이야말로
진정 강한 거라고 현자는 말하나니
이것이 사람을 낮은 세계로 끌어당기는 것
이것은 실로 놓아 버리기 어려운 것
그러므로 현자는 쾌락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쾌락을 구하지 않는다.
That fetter wise people call strong which drags down, yields, but is difficult to undo; after having
cut this at last, people leave the world, free from cares, and leaving desires and pleasures behind.
<commentary>
Kāmasukhaṃ: The pleasures of the senses. 감각적 쾌락
At the outset the Buddha cautioned his disciples to avoid the two extremes. His actual words were:
There are two extremes (antā) which should not be resorted to by a recluse (pabbajitena).
Special emphasis was laid on the two terms anta which means end or extreme and pabbajita
which means one who has renounced the world.
초기에 붓다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극단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붓다가 직접하신 말씀은 이렇다: 수행자가 의지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끝, 극단을 의미하는 말과 세속적인 삶을 포기한 수행자라는 말을 특히 강조하셨다.
One extreme, in the Buddha’s own words, was the constant attachment to sensual pleasures
(Kāmasukhalikānuyoga). The Buddha described this extreme as base, vulgar, worldly, ignoble,
and profitless.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에 따르면 한쪽의 극단은 감각적 즐거움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것이다. 붓다는 이것을 열등하고 천박하며
속되고 비속하고 이익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This should not be misunderstood to mean that the Buddha expects all His followers to give up
material pleasures and retire to a forest without enjoying this life.
The Buddha was not so narrow-minded.
이 말을 붓다가 모든 제자들에게 물질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숲에 머물러 삶을 향유하지 말라고 했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붓다는 그렇게 속좁은 사람이 아니다.
Whatever the deluded sensualist may feel about it, to the dispassionate thinker the enjoyment of
sensual pleasure is distinctly short-lived, never completely satisfying, and results in unpleasant
reactions. Speaking of worldly happiness, the Buddha says that the acquisition of wealth and the
enjoyment of possessions are the source of pleasure for a layman. An understanding recluse
would not however seek delight in the pursuit of these fleeting pleasures.
어리석은 감각주의자가 어떻게 느끼든 간에 이성적이고 현명한 사람에게 감각적 쾌락은 정말 덧없는 일이고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하며 결국 괴로울 뿐이다. 재산을 얻고 소유물을 향유하는 세속적 행복이 범부가 가지는 즐거움의 근원이라고 붓다는 말했다. 하지만 사려깊은 수행자는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To the surprise of the average man he might shun them. What constitutes pleasure to the former is
a source of alarm to the latter to whom renunciation alone is pleasure. (Treasury of Truth 1046)
의외로 보통 사람들도 감각적 쾌락을 피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범부에게 쾌락인 것이 벗어나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수행자에게는 두려움의 근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