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캠프 1부.
서라벌,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곳.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평일을 끝을 알리는 즐거운 금요일. 보충수업을 마치고 중앙현관에 다들 모인다. 오늘은 환경부에서 가는 캠프가 있는 날이다. 원래 환경부는 아니지만, 최경주 선생님께서 같이 가도록 해주셨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고 모두 버스에 탄다. 저번처럼 김환대 선생님께서 동행하셨다. 간단한 인원점검을 마치고 서악리 고분군으로 향한다.
(버스로 향하는 중.)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서악리 고분군이다. 대릉원만큼은 아니지만, 대릉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며 아직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선도산 고분군까지 합하면 꽤 규모가 되는 고분군이다. 또한, 대릉원의 가장 주된 고분이 미추왕릉이라면 여기는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무열왕의 능이 있다. 김환대 선생님께서 먼저 귀부 앞에서 설명하셨다. 여기 태종무열왕릉은 또한 경주에서 흥덕왕릉과 더불어 주인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무덤 중 하나다. 신라시대 무덤 태반이 기록과 전해지는 말에 의한 것이라 확실한 것이 별로 없다. 심지어 완전히 다른 것인데 아직도 문화재등록은 이상하게 되어있는 것도 있다. (예: 신문왕릉) 그러나 태종무열왕릉은 무엇보다 앞에 귀부가 있어서 여기가 태종무열왕의 능임을 바르게 증명해준다. 지금은 비각에 안치되어 있지만, 선생님께서 가져온 흑백사진에는 벌판이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다. 우리는 설명을 듣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 서악리 고분군까지 돌아본다. 뒤의 능들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되는 분들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태종무열왕릉 귀부 앞에서.)
(오래전 귀부의 모습. 옆에 주춧돌이 있는 걸로 보아 그전에도 비각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태종무열왕릉 귀부. 귀부 중에서도 수작 중의 수작으로 꼽힌다.)
(태종무열왕릉 앞에서. - 김환대 선생님 사진제공.)
(뒤에 있는 서악리 고분군. 상당히 큰 능이 이어진다.)
다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경주 대표 성산, 남산이다. 삼불사 앞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작은 전각 안에 모셔진 세분의 부처님이 나타난다. 배리 삼존불로 연대 상 감실부처와 더불어 남산의 불상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드물게 삼국시대 불상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후기 신라시대)에 볼 수 있는 조형미와 균형은 없지만, 귀여운 인상은 엄숙한 석굴알 석불과는 다른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조각이 아직 서툴었을 수도 있지만, 막 불교가 수용되는 시점에서 친근하게 만들어 민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의도도 있지 않나 싶다. 원래는 서산리 마애불처럼 햇빛의 각도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고 했지만, 지금은 전각이 햇빛을 가려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나중에 손전등이라도 들고와서 확인해 봐야겠다.
(배리 삼존불 앞에서.)
(배리 삼존불. 맨 왼쪽에 있는 보살은 조각수법이 달라 나중에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다.)
배리 삼존불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으면 포석정이 나온다. 가는 길에 태진지라는 연못과 지마왕릉을 지나갔다. 지마왕릉은 평소에 아는 건데 태진지는 그냥 연못인지 아니면 전설이 있는 건지 나중에 다시 알아봐야겠다. 다들 더워서 그런지 많이 처진 분위기다. 몇몇은 중간에 딴 길로 새서 오기도 했다.
(포석정으로.)
(태진지. 중간에 나오는 의문의 연못이다.)
(포석정 가는 길.)
(지마왕릉.)
잠시 후 포석정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자 작은 솔숲 안에 구불구불하게 생긴 포석정이 보인다. 사실 생각보다 조금 작은 것 같다. 아버지께서도 경주에 오셔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포석정이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이라고 하셨다. 포석정은 경애왕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사실상 신라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기서 방탕하게 논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예로 여기 포석정은 유상곡수라는 술잔을 물 위에 띄워놓고 누군가 앞에 멈추면 그 사람이 술을 마시고 시를 짖는 놀이를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경애왕이 죽은 날은 음력 11월, 날씨로 보면 유상곡수를 하기엔 날씨가 너무 춥고 아마 물도 얼었을 것이다. 경애왕이 미치지 않는 한 빙판 위에 술잔을 지치며 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도 너무 오랫동안 정설로 굳어진 탓에 대부분 아직도 경애왕이 놀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어 답답하다. 확실한 설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을 책이나 교과서에서 원래 사실과 병행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포석정 앞에는 작은 우물이 있던데 무슨 용도일까? 술에 취한 후 정신이라도 차리라고 준비한 냉수일까 생각하며 잠시 쉬었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포석정 입구.)
(정면에서 본 포석정.)
(배수구 쪽에서 바라본 포석정. 사진에서는 꽤 크게 나온다.)
(포석정 앞 우물.)
(포석정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번에는 시내 쪽으로 이동한다. 먼저 간 곳은 기록상 가장 오래된 숲인 계림이다. 김알지 탄생설화로 유명한 계림은 언제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정말 좋은 곳이다. 역기서 선생님 설명을 좀 듣고 잠시 휴식을 한다. 계림 앞에는 저번에 찾았던 내물왕릉도 함께 보인다.
(계림에서.)
(내물왕릉.)
(평화로운 계림.)
계림을 지나서 첨성대로 향한다. 첨성대는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지 중 하나로 유명하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거진 다 아는 사실이다. 첨성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분황사 쪽으로 이동한다.
(첨성대 앞.)
(첨성대에서. - 김환대 선생님 사진제공.)
(첨성대.)
원래는 황룡사지도 같이 보려 했으나 날씨가 더운 관계로 분황사만 보고 가기로 한다. 향기로운 왕(황제)이라는 뜻을 가진 분황사는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탑인 모전석탑이 있는 절이다. 시간이 많아 자세히 보는데 저 멀리 조선총독부가 세운 비석이 보인다. 이런 게 남아 있을 줄 몰랐다. 해가 점점 지면서 분황사에 노을이 드리운다. 이제 일정을 마치고 식당으로 이동한다.
(분황사 입구.)
(분황사 모전석탑.)
(조선총독부가 세운 비석.)
(분황사에서.)
(분황사 석정.)
(황룡사지. 오른쪽 당간지주는 분황사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푼다. 보문에 있는 유스호스텔이었는데 방이 꽤 넓어서 들어가 자기는 편했다. 게다가 창문으로 보문 일대가 보여서 조망도 괜찮은 것 같았다.
(보문 야경.)
밤늦게까지 놀다가 잠이 든다. 내일은 불국사와 괘릉을 간다니 기대가 된다. 다만, 친구 상태가 영 좋지 못하여 살짝 걱정되기도 하다.
-여정- (2013. 7. 26. 金)
월성중학교→ 서악리 고분군(태종무열왕릉)→→ 삼불사 주차장→ 배리 삼존불→ 태진지→ 지마왕릉→ 포석정→→ 계림(내물왕릉)→ 첨성대→→ 분황사→→ 식당→→ 보문 숙소------→ (2부에 계속...)
(환경부 캠프 2부: http://cafe.daum.net/sanjoa035/4a0U/605)
새롭게 펼쳐라!
羅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