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부족과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의 창시자의 아들인 샤를마뉴는 이 갈라져있던 유럽세계를 통일하고 프랑크왕국의 영토를 오늘날 서유럽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유럽전체로 확대시킨 것이죠.
이때 로마에서는 동로마의 황제와 서로마의 교황이 서로 힘을 맡대고 대치중이었는데 이때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교황을 도우면서 교황의 권위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이당시에는 북부이탈리아 주변의 이민족들이 공공연히 로마를 위협하고있엇는데. 이런 이민족들을 모두 정복하여 물리침으로써 기독교 세계를 지켜준것이죠.
로마는 이러한 샤를마뉴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서로마의 황제관을 그에게 하사하고 이로인해 당시 샤를마뉴가 지배하고있던 전 유럽에 기독교(가톨릭)가 전파되어 오늘날 유럽의 기독교가 확립되는 기초를 마련해준것입니다.
이후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은 3명의 아들에 인해 3개의 나라로 쪼개져
동프랑크는 오늘날의 프랑스로 발전
중프랑크는 이후 말그대로 유럽 중앙부를 지배하고있었지만 지속적인 권력약화로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영토로 축소되어 북부이탈리아 제후들로 나뉘어짐
서프랑크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와 독일영토로 이후 계속해서 샤를마뉴의 혈통이 내러오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혈통이 끊기게 되었는데. 이 황제자리를 메꾸기 위해 그 지방의 제후들이 선거를 치뤄서 그중 가장 힘이 막강했던 오토1세가 황제의 대관식에 오르게 됩니다.
이 오토1세는 샤를마뉴의 직계후손이 아니었기에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로마로가서 황제의 관을 하사받는 대관식을 치르게 되고 이후 서프랑크 일대의 오토1세가 다스리는 독일.오스트리아 지방을 로마제국의 후계자라는 이름을 기려
'신성 로마 제국'
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오토1세도 혈통이 끊기자 다시 지방 제후들의 선거로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로인해 황제의 권력보다는 지방제후들의 권력이 더 막강해져 사실상 이름만 황제가 자신의 영지 이외에는 권력을 행사할수 업는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되죠.
그러던것이 16세기 이후부터 당시 7제후중 가장 권한이 막강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세속제로 계속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고 당시 합스부르크가문이 지배했던 지역이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지역이였음으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을 '구제실' 이라는 이름으로 신성로마제국 정통의 적통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도 18세기 이후부터 북부독일의 프로이센공국이 왕국으로 승격되고 독립하고 근대화를 거치며 각각의 제후국이 개별국가로 분리됨으로 인해
사실상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토였던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이외에는 영토가 없어졌기 때문에 18세기 이후부터는 합스부르크가의 황제들은 신성로마제국이 아닌 오스트리아 황국으로 개명하여 불려지다가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혈통이 단절되어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는 공화국으로 다스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