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op diary14, 외국인근로자
일요일아침에 마음이 바빠보기는 최근 처음이다.
성남시청옆의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활동을 하는 교회에가서
외국인근로자들과 인사도하고 최근 근황도 담당선교사에게 들어
아이카 회원이 가서 자원봉사 하는일을 상의할 예정이다.
오래전 회원과 같이 가서 자원봉사를 하엿다.
외국인들과의 영어통화, 구인신청을 한 한인작업장에 전화하여 중매를 하는일,
이천의 현대전자 공장안에서 하청일을 하는 중소기업이 법상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이
가능한지의 확인과 취업을 희망하던 파키스탄인에게 설명을 하느라 여러차례 오래동안
추진하던일..
중국에 유학가서 공부를 마친후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하는 회원 한분이 잠시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싶은데 어떤방법이 잇겠느냐는 문자가 왔다.
강남에서 가까운 성남에서 중국어와 영어도 활용할수 잇으니 좋을듯하여 일단 답문을 보내니
동감이란다.
일요일이면 혜화동의 성당에 필리핀인들과 외국인 근로자 들이 많이 모인다.
성당에가서 같이 미사 를 보고싶은 생각을 전에부터 했다.
종교는 하나를 선택해야지 이것저것 왓다갓다 하는것은 신에대한 불경이 아닐까 두려운생각도 들었다.
고교시절 성당에서 학생회장을 햇으니 카톨릭은 사실 첫 종교엿지..
군시절 무슨일로 재판에 회부된 어머니의 상대방측에 본당수녀님들이 평소아는분인지 나와계신것에
옳고그름을 떠나서 웬일인지 충격을 감출수없엇다. 그길로 카톨릭과는 멀어지고 불교신자엿던 어머니의 강권으로 지방의 사찰을 여행할때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다.
영취산 통도사의 경봉 이라는 대스님도 그때 뵈엇지.
매년 초파일 조계종 본사에서 마야부인 을 뽑아 카퍼레이드를 벌이는데 모친은 그 영광을 안아
여의도에서 조계사 까지 카퍼레이드를 하였엇지.
당시로는.. 물론 이제는 이해가 된다. 설령 살인범일지라도 수녀님들은 외레 더 나오실수 잇는것이겟지..
미국이민시절엔 교회를 다니게 됫다.
미국이란 사회자체가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듯이 모든것이 기독교중심인듯했다. 이민자의 낯설음과 외로움 생활의 안내등 모든것은 목사님과 선교사들 교회의 교우들이 이끌어주어 자연스레
모든생활과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처와 딸이 도착하던날 집으로 담요를 갖다주던 교우들과
일요예배가 끝나면 한국에서 일식집종업원이엇다며 목사님께서 직접 사시미칼로 교우들이 잡아온 생선을 회를떠서 다같이 먹던추억..
교회를 가야하나 성당을 가야하나?
중앙아시아의 각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할때 사원에서 결혼식과 예배보는 광경들을 많이 보았다. 무수한 이슬람들이 다같이 하루에 다섯번 메카를 향해 엎드렷다 일어섯다 하면 경건히 절하던 모습..
우즈벡의 카작의 키르키즈스탄의 오지의 순박한 무슬림들..
몽골의 사원에서 불공을 드리며 한편으로 샤머니즘의 무당에게 약과 생활의 조언을 듣는 몽골인들..
NGO는 정치와 무관해야 하며
NGO는 특정종교와도 무관해야하는..
NGO의 길에 따라 아이카의 방향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는곳이면 혜화동성당이나 성남 교회뿐 아니라
이태원 무슬림사원에도 언제 한번 가봐야겟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