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방유취 권2】《십형삼료(十形三療)》 〈내상(內傷)으로 인한 병증〉 놀람이 잠복된 경우〔伏驚〕
놀람이 잠복된 경우〔伏驚〕
상거(上渠)에 점쟁이[卜家]일을 하는 28살의 남자가 있었다. 질병에 걸려 몸이 허약해지고 팔다리는 힘이 빠졌으며, 낯빛은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누런색[蒼黃]이었고, 왼쪽 옆구리 아래로 몸이 기울어지면서 상체와 하체가 각각 막대[臂] 같았다. 질병이 발작할 때마다 수시로 고통이 찾아왔으나, 음식 섭취는 줄어들지 않았고 대변도 보통 때와 같았는데, 소변만 약간 누런색이었다. 이런 상태로 2~3년이 흘렀다.
치료방법이 다한 여러 의인(醫人)들이 대인(戴人 장종정(張從正))에게 치료를 요청하였다. 대인이 자세히 살펴보니 질병이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과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에 겹친 것이었다. 대인(戴人)[張]은 “십간(十干) 중 갑(甲)이 오장육부(五臟六腑) 중 담(膽)이고 을(乙)이 간(肝)이므로 오행(五行) 중 청(靑)에 해당하며, 황(黃)에 해당하는 것은 비장(脾臟)[脾]이다. 지금 담의 맥박이 소맥(小脈)인 것은 놀랐기 때문이다. 놀라게 되면 담에 사기(邪氣)가 침투하므로, 뱃속에는 놀란 것으로 인한 점액[涎]과 녹색 물[綠水]이 차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환자가 “예전에 군대에 있으면서 화재를 겪었는데 이때부터 질병이 생겼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인이 밤에 주거환(舟車丸) 1백 50환(丸)과 준천산(濬川散) 4~5돈[錢]에 생강(生薑) 자체의 즙[自然汁]을 넣어서 복용시키니, 새벽에 정말로 녹색 물을 4~5번 설사하였다.
어떤 사람이 “생강을 많이 넣은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대인은 “오미(五味) 중 생강과 같은 매운맛[辛]이 오행(五行) 중 목(木)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설사한 후에 미통(微痛)이 느껴지자 다시 설사를 시켰는데, 이전의 약에 비해서는 1/3을 줄였다. 다시 녹색 물을 3~4번 설사하니, 고통이 그치고 식욕이 돌면서 힘은 오히려 더 생겼다.
대인이 점쟁이에게 “그대의 아내도 병들었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점쟁이는 “태의(太醫 대인으로 지칭되는 장종정)께서는 제 아내를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였다.
대인이 “그대가 이렇게 놀란 것이 몇 년이나 되었소?”라고 물었다. 점쟁이가 따져보더니 “화재를 만났을 때 저는 정확히 초당(草堂)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화재에 놀란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으나, 저는 꿈결에 놀란 탓에 말을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불길이 방문을 이미 막았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저를 불길 속에서 끌고 나오신 게 지금부터 5년 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대인[張]은 “그대의 담(膽)에는 놀란 화(火)의 기운이 잠복해 있는데, 이 갑(甲)인 목(木 담(膽)을 지칭)이 비장(脾臟)[脾土]을 올라탄 형국이오. 즉 소양(少陽)의 상화(相火)가 비장을 올라탔는데, 비장 속에는 열(熱)이 들어 있으므로 그동안 식사를 하면서 곡식을 소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런데 이 열(熱)이 곡식을 소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곡식의 정기(精氣)를 완전하게 흡수하지는 못했으므로, 그대는 반드시 자식이 없을 것이오. 대개 몸속의 경락(經絡)이 어그러지면 그 부인에게도 악영향을 끼치오. 그대의 아내는 반드시 손발이 뜨겁고, 팔다리는 힘이 없으며, 생리는 불규칙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점쟁이가 “제 아내가 사실 이렇게 된 것 역시 5년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다른 날 대인의 문인(門人)이 《내경(內經)》에서 읽은 ‘이기지 못한 것을 먼저 설사시키고, 이어서 이기는 것을 설사시킨다.’라는 표현을 근거로 점쟁이 치료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대인[張]에게 물었다.
대인[張]은 “만일 담(膽)에 해당하는 목(木)이 위(胃)에 해당하는 토(土)를 올라탔다면, 이것은 토(土)가 목(木)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기지 못한 기(氣)가 있을 때는 그 해결 방법을 그 자식에 해당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기토(己土)는 경금(庚金)을 자식으로 낳을 수 있는데, 경(庚)은 대장(大腸)에 해당하고 맛 가운데에서는 매운맛이 금(金)에 해당하므로 매운맛에 해당하는 생강(生薑)을 많이 넣어서 담(膽)에 해당하는 목(木)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우선 비장(脾臟)[脾]이 열리지 않으면 토(土)가 움직일 길이 없으므로, 결국 주거환(舟車丸)[周車丸]을 사용하여 막힌 길을 우선 뚫었으니 이것이 ‘이기지 못한 것을 먼저 설사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생강즙을 준천산(濬川散)과 섞어서 크게 설사시켰으니, 이것이 ‘이어서 이기는 것을 설사시킨다.’라는 것이다. 대저 양간(陽干)으로 양간을 이기고, 육부(六腑)로 육부를 이기고, 오장(五臟)으로 오장을 이긴다.”라고 대답하였다.
[주-B001] 권2 : 일본 궁내청 서릉부의 《의방유취(醫方類聚)》 원본을 살펴보면 《의방유취》 권2 본문의 첫면부터 몇 장이 없다. 본문 첫장의 판심(版心)에는 ‘유취(類聚) 이(二) 십(十)’라고 되어 있다. 《의방유취》 권2 10번째 장이라는 의미이므로, 《의방유취》 권2의 1~9장은 없는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유취(類聚) 이(二) 십(十)’에 장서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1~9장은 없었던 상태라고 판단된다.
[주-D001] 대인(戴人)[張] : ‘장(張)’은 장종정(張從正)을 가리킨다. 앞서 나왔듯이 장종정의 호(號)가 대인(戴人)인데, 여기에서는 성(姓)으로 장종정을 지칭하고 있다. 번역은 본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대인’으로 통일하였다.
[주-D002] 생강(生薑) 자체의 즙[自然汁] : 생강 내에 존재하는 즙을 추출하여 약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D003] 비토(脾土) : 오장(五臟)과 오행(五行)의 상관관계에서 비장(脾臟)은 토(土)에 해당하므로, 흔히 비장을 ‘비토(脾土)’라고 표현한다.
[주-D004] 이기지 …… 설사시킨다 : 본문에서는 《내경(內經)》을 전거로 들었으나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이 문장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문장과 관련하여 《보제방(普濟方)》(사고전서본) 권101, 제풍문(諸風門)에서는 “드디어 주거환(舟車丸)을 사용했으니, 우선 막힌 길을 뚫는 것으로 ‘이기지 못한 것을 먼저 설사시킨’ 것이다. 다시 생강즙을 탄 준천산(濬川散)으로 크게 설사시키니, ‘이어서 이기는 것을 설사시킨’ 것이다.[遂用舟車丸, 先通其閉塞之路, 是先瀉其所不勝. 後用薑汁調濬川散大小之, 次瀉其所勝也.]”라고 하였다.
[주-D005] 주(周) : 원문은 ‘주(周)’이지만 문맥상 ‘주(舟)’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6] 양간(陽干) : 십간(十干)에서 양(陽)에 해당하는 갑(甲)ㆍ병(丙)ㆍ무(戊)ㆍ경(庚)ㆍ임(壬)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