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북의 조선중앙텔레비전은 흥미로운 내용을 방송한다. 마치 남쪽 방송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신동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중에는 백두산 호랑이를 달필로 써내려가는 6살 서예신동, 국내외 각종 대회를 휩쓰는 10살 미술신동, 3살의 나이에 환상적인 발차기를 선보이는 태권도 신동 등 다종다양하다. 최근 북 인민들의 뜨거운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각 분야의 신동들을 한 데 모아봤다. |
지난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신의주본부유치원을 방문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두 명의 신동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명이 ‘서예신동’으로 유명한 구대홍 어린이였다. 대홍이는 국방위원장 앞에서 직접 ‘대원수님 고맙습니다’와 ‘백두산 호랑이’를 척척 써내려 갔다. 여섯 살짜리가 썼다고는 도저히 보기 힘든 필력이었다.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족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붓글을 아주 잘 쓰는구만요. 특히 백두산 호랑이의 ‘랑’자를 아주 잘 썼습니다. 대홍이의 '랑’자를 그대로 〈아리랑〉에 옮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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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유치원생으로 전국서예축전에 참여한 구대홍 어린이와 그가 쓴 '백두산 호랑이'. ⓒ통일신보 | 실제 서예신동은 이듬해인 2007년, 〈아리랑〉 공연의 대형간판 중 ‘랑’자를 직접 썼다. 이 일이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면서 대홍이는 그야말로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신문과 방송을 보는 북녘 사람 치고 꼬마 신동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린 아들, 딸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려는 부모들이 넘쳐났고 전국의 유치원들은 대홍이같은 ‘재간둥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적극 나섰다.
대홍이가 국방위원장 앞에서 붓글씨를 썼을 당시는 서예를 시작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전에는 악기를 다루었다. 그러나 대홍이는 악기를 배우는 중에도 무슨 글자든지 보는 족족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곤 했다.
이때 재능의 싹을 알아본 유치원 교양원이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타고난 관찰력과 침착함을 가진 대홍이의 실력은 부쩍 늘기 시작했다고. 현재 대홍이는 신의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서예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소묘대회서 중학생 모두 제치고 1등 차지한 승범이
최근 북에는 대홍이 못지 않게 유명한 미술신동도 있다. 올해 평양 부흥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리승범 학생이다. 승범이가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열렸던 ‘ㅌ·ㄷ’결성 80돌경축소묘대회 때였다. 당시 평양갈림길소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승범이는 앳된 모습으로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소학교부문 경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중학생들 속에 끼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대회준비위원회는 “원래 소학생인 리승범 학생은 참가자격이 없었지만 본인의 강렬한 제기가 있어 중학생부에 참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연소 참가자인 승범이는 나이 많은 중학생들을 모두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얼핏 보면 예상을 뒤집는 ‘이변’이지만 승범이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 미술천재의 재능은 탁아소 시절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당시부터 승범이에게는 연필과 종이가 ‘최고의 장난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승범이의 부모는 아들의 남다른 취미에 대해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만 여긴 것이다. 그러나 탁아소에서 재능이 발견되면서 6살의 나이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미술소조에 들어갔다.
승범이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붓을 쥐자마자 벌써 조선화의 고유한 몰골기법을 터득하고 뛰어난 붓 다루기와 섬세하고도 힘있는 묘사능력으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승범이는 평양미술축전 유치원부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각종 미술전람회와 축전, 경연을 휩쓸다시피 했다.
조선로동당창건 60돌경축 전국청소년미술전람회에서 특등, 텔레비죤소묘경연에서 1등, 조선소년단창립 60돌경축 전국소년과학환상작품 및 솜씨전람회에서 1등,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국제아동미술전람회에서 세 차례 입선, 인도 샨카르국제어린이경연에서 은메달, 아시아어린이그림축전에서 최고상과 금메달 등등….
1등을 차지한 승범이에 대해 ‘ㅌ·ㄷ’결성 80돌경축소묘대회 심사위원이 한 말은 승범이가 가진 강점과 앞으로의 진로를 말해주는 듯하다.
“정말 소묘적인 재능이 특이한 전도유망한 학생입니다. 립체적 묘사능력이 치밀하고 조형적 일반화 능력과 감정표현이 풍부한 욕심 가는 학생입니다.”
지난 2007년 11월 27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세 살짜리 태권도 신동을 소개해 큰 화제를 낳았다. 주인공은 평안남도 평성주일탁아소의 리정호 어린이. 정호는 집에 오면 여느 아이처럼 어머니에게 칭얼거리고 장난감에 정신을 팔다가도 TV에서 태권도 종목만 나오면 쪼르르 달려가 ‘열성 시청자’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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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소개돼 화제를 모랐던 '태권도 신동' 리정호. ⓒ통일신보 | 인민들의 사랑 한 몸에 받은 세 살짜리 ‘태권도 신동’
어머니 리명월 씨에 의하면 정호가 태권도에 호기심을 나타낸 것은 두 살 때부터라고. 당시 정호는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도 태권도 훈련을 하는 사람들만 보면 무작정 그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고 한다.
이런 재능을 발견한 전문가들은 정호에게 태권도 동작을 하나하나 가르쳤고 지난해 6월 평안남도의 유치원 종합공연 때 ‘탁아소생’으로는 유일하게 무대에 섰다. 당시 정호는 포동포동한 두 손으로 손칼내려치기와 발차기 등을 결합하면서 3개의 태권도 종목을 훌륭히 시연했다고 한다.
‘태권도 신동’ 정호는 시범을 보인 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닦지도 않고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앞으로 형님들과 태권도 경기를 해 꼭 1등을 하겠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고.
북에서 신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신동이다. 지난 2007년 7월 조선중앙텔레비전은 9살 난 피아노 신동을 연일 방영했다. 북에서도 한 개인의 소질을 TV에서 이처럼 거듭 소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 “새로 등장한 재간둥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 북의 각종 언론·출판사 기자들의 취재경쟁도 뜨거웠다고 한다. 도대체 그 피아노 신동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이길래?
북의 음악전문가들은 화제의 주인공인 박건의 학생(당시 김성주소학교 3학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피아노 연주가로서의 생리적 조건과 천성적인 음악적 기질을 타고난 음악천재임이 틀림없다.”
우선 충분한 음량과 독특한 음색, 넓은 음역을 짚을 수 있는 특이한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음악신경계통이 대단히 예민하고 천성적인 유연성으로 힘든 주법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것이다.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 교무부 림해용 학장은 “박건의 학생은 천성적인 감상적 느낌을 소유하고 있어 나이는 어리지만 아름다운 선율과 극적인 화성올림을 매우 감동적으로 대하며 그것을 생동한 울림으로 재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의는 악보를 기억하는 음악적 지능도 특수하게 높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피아노과 학생들이 7일걸려 암송하는 12페이지 정도의 대작도 12시간 동안에 암기하고 정확히 연주한다고. 북의 음악전문가들은 건의가 대학에서 일정한 수재교육을 받으면 앞으로 국내, 국제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일약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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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적인 음악적 기질을 타고난 음악천재 박건의 학생. ⓒ통일신보 | 9살 음악신동, 어른이 7일 걸리는 대작 12시간만에 암기
남이나 북이나 영재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남쪽에도 세계를 놀래킨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천재소년 송유근, 최근의 피겨요정 김연아까지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한 명의 천재가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믿는 남이나, 천재는 사회주의 교육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믿는 북이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한 명의 영재가 가까운 미래에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이다. 모차르트가 클래식 혁명을, 아인슈타인이 과학 혁명을, 빌 게이츠가 컴퓨터 혁명을 가져왔듯 천재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예감케 하는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북녘의 신동에게도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할지 모른다. 통일된 한반도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총명한 아이들일 테니 말이다.
남쪽에 소개된 신동들 |
서예 주준호, 미술 오은별, 음악신동 리진혁까지
대북지원단체 모음(구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는 ‘조국통일’이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필력이 예사롭지 않은 이 글씨의 주인공은 바로 만경대소년학생궁전의 서예천재 주준호(21)다. 현재 평양미술대학에 진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준호 학생은 4∼5년 전만 하더라도 만경대소년학생궁전 서예소조에 소속된 중학생이었다. 그가 남쪽에서 유명해진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궁전을 방문한 수많은 남쪽 인사들에게 즉석에서 붓글씨를 써 주었기 때문이다. 주준호 학생은 북에서 “우리 민족이 낳은 4대 명필가였던 김정희, 양봉래, 김생, 한석봉 같은 서예가들과 견줄 만한 필법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천재다. 북의 천재화가 오은별(28)도 남쪽에 잘 알려진 신동이었다. 1989년 월간 《말》에 처음 소개된 이후 1998년 광주비엔날레에 일부 작품이 소개됐다. 이후 2000년에는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만큼 남쪽에서도 그의 작품은 소장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4년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원생이 된 오 씨는 지금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남쪽에 소개된 신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렸던 평양학생소년예술단 공연에서 남쪽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리진혁(22)이다. 드럼, 꽹과리, 장고, 목금 등 다양한 종류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물론, 〈욕심이 하늘같대〉 〈다시 만납시다〉 등을 열창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 2005년 청년학생협력단의 일원으로 또다시 성숙한 기량을 선보인 리 씨는 금성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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