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7.
상트 5일째다.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
이 도시에 대한 평가는 "1990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로 요약된다.
운하가 많아 러시아의 베니스라 부른다.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서 상트(Санкт)는 saint. 페테르(Петер)는 Peter 러시아식으로는 표토르. 부르그(бург)는 도시.
그러니까 성인인 표토르 황제가 만든 계획 도시라는 뜻이다. 볼셰비키 혁명 때에 명칭이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잠깐. 요숙이 자다가
... 보소 모스크바하고 상트에서 레닌상 봤능교?
어~ 그라고 보이 그 많던 레닌상을 본 적이 없다.
조사를 해봤다.
혁명이후 레닌상이 전국에 수천개가 세워져 아직 대부분 남아 있지만, 수도권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동상은 소련붕괴와 함께 거의가 철거, 파괴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레닌도 개인숭배로 이어지는 동상 세우기를 처음에는 반대했단다.
그런데 당시 50%를 넘는 러시아의 문맹률을 고려해 공산주의 선전용으로 승인했다고 한다. 그게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으로까지 이어졌다. 공산주의 동상의 뿌리였다.
...
오늘의 첫 행선지,
피의 구원성당(Спас на Крови)으로 간다.
숙소에서 100m 앞이 성당이지만
어제 어마어마한 관광객을 본 요숙의 지도에 따라 오픈 30분 전에 줄을 섰다.
땡빛 아래 즐겁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미송.
속으로 생각한다.(이기 무신 짓이고)
이 성당은 테러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아들인 알렉산드르 3세가 테러가 일어난 장소에 아버지를 위해 지은 성당이다. 성당 내부 전체가 색타일을 하나씩 붙여 만든 모자이크 작품이다.
황제 한 사람을 위한 어마어마한 노력이 긴 세월 후에 인류의 문화 유산이 되어있다.
첫째 미션을 클리어하고 다음 코스로 간다.
한인마트 사장 추천지인 러시아 미술관이다. 성당에서 다시 100m 앞이다. 대단히 큰 규모의 건물임에도 역시 출입구를 찾기 힘들다.
이 건물의 출입구는?
여기 올시다.
아마 겨울의 강추위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입구는 작아도 외투를 받아 보관하는 cloak room은 끝이 안보일 정도로 넓다.
러시아 미술관이니만큼 러시아 회화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덤으로 요런 이쁜 고대 러시아의 아기 장난감도 있었다. 볏짚과 나무로 만들었는데 내 눈에는 예술품으로 보였다.
...
다시 이동.
어제가 푸시킨 생일이라 아직 생화로 된 꽃들이 푸시킨 동상 앞에 바쳐져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화한다니...
중세복장의 한 사내가 지나가는 팔을 붙잡고 사진을 찍으란다. 요런 베짱이들 어디든 있다.
필요 없다는데 막무가내다. 찍고 나니
"It's my job. Pay please" ... 요란다.
300루불 기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삭성당으로 가는 길.
운하에는 쉴새없이 배가 지나가고
거리에 초상화 그리던 아가씨가 수줍게 웃는다.
카잔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국제경제포럼이 열려서인지 도로마다 경찰이 쫘악 깔렸다. 외국인들의 관광명소인 넵스키 거리에 소매치기 걱정은 사라졌다.
쏴스티(Сцастье)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고 읽기 어렵습니다 쏴스티~ (행복)입니다.
marbeld beef가 보이길래 스테이크인가 보다 하고 시켰더니 만두가 나왔다. 기맥힌 사연이다. 만두면 만두지. 누가 만두 속을 그따구로 메뉴에 쓰노
귀한 한끼 베릿다.
그래도 맥주는 아이구 좋~다.
러시아 와서 나는 루스키(러시아 사람) 스타일로 머리를 깎았더니 억수로 편하다. 쫌더 젊어지면 스킨헤드로 전개해볼까 한다.
반가운 태극기가 보였다.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 묵나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롯데호텔이다.
요숙이 숙소를 정하는데 귀신이다.
묵고있던 호텔 연장이 안되어 다른 호텔로 예약을 했는데 멋지다.
도착해서 보니 녹음 속에 그림같다.
그런데 약간의 흠은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부터 39km 떨어져 있다.
도시 이름을 잘못 봤단다.
여기는 페테르고르프. 비슷하지예?
고속도로 달려왔심더. 내일 아침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39km 다시 가야 되예.
저녁에는 잠자러 39km 다시 와야 합니다.
에구 ~
2019.6.8.
요숙이 실수로 선정한 숙소가 여름궁전과 2.5km 거리이다. 상트까지의 왕복은 어쩔 수 없지만 약간은 실수가 묘수로 되었다.
여름궁전은 애칭이다. 페테르고프(Петергоф)가 지명이자 궁전 이름이다. 택시를 부르려고 summer palace 라고 하니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페테르고프(Петергоф) 입구 모습.
여름궁전은 여름이 짧은 상트의 왕족들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해서 지은 궁전이다. 20개의 궁전 140개의 분수. 7개의 정원으로 이루어진 러시아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라고 불린다. 여기 저기서 황금이 번쩍거린다.
1944년의 사진에는 전쟁으로 거의 골격만 남아 있다.
현재는 재건한 건축물이다.
사람이 얼메나 많은지. 요숙의 아줌마들 통신에 의하면 한국인 단체도 많이 왔단다.
사람들이 왜 분수 주위에 모여있는지 몰랐는데 11시가 되자 러시아 국가와 함께 분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관광 가이드들이 이동 차량 안에서 미리 이야기해 준 모양이다. 우리처럼 사전에 조사를 못한 사람들은 눈치라도 빨라야겠다.
금이 비싸나 미송이 비싸나
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왔다.
요숙의 묘수 덕분에 팔자에 없던 수중익선도 첨 타봤다. 재수좋다.
하도 피곤하여 겨울궁전 광장 벤치에서 20분 노숙했다. 꿀맛이었다.
한숨 자고 나니 다음미션이 떨어진다.
걸어서 1.5km 이삭성당이다.
이삭성당 건축에는 50만명이 동원되고 40년 걸려 완성되었다니 왕의 권력을 짐작할 수 있다.
레바강의 삼각주에 건설하기 위해 기초공사로 말뚝을 만삼천개 박고 지붕의 돔에는 100kg 이상의 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삭성당은 표토르황제의 생일이 이삭의 생일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중이 아닌 표토르 왕 1인을 위해 지어진 셈이다.
성당의 아름다움과 인위적인 위엄 속에는 당시 인부들의 피와 눈물이 들어있다. 그런데도 왕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당시 사회의 심리 속에는 정교분리가 덜 되어 있은듯한 러시아 문화의 단편을 보는 듯하다.
발레 공연 시간이 아직 일러 인근의 코리아 마켓으로 갔다.
간판도 크고 가판대까지 세워 놓은걸 보면 확실히 한국사람이다.
집에 돌아온 듯 편하게 두어시간 쉬었다. 동기 친구의 요청도 있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오늘도 밖에까지 따라나와 두 번이나 악수하였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는 법이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투어를 왔다면,
발레 관람은 필수아닌가. 며칠 전에 운좋게도 Swan Lake 교과서같은 발레 공연이 눈에 띄어 얼른 예매했었다.
마린스키(Мариинский)극장 신관으로 갔다. 구관은 극장 자체가 작품이라는데 발레공연을 찾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러시아 여행자 팁>
1. 티켓은 극장 홈페이지를 영어로 볼 수 있으니 극장별, 날짜별 프로그램을 보고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된다. 상트에는 극장 세개가 있다. 마린스키, 미하일롭스키, 알렉산드린스키.
2. stall이니, dress circle이니 알면 좋지만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그냥 가도 출입문에서 일일이 위치를 가리켜 주니 알 필요없다.
3.복장도 마찬가지다. 드레시~하면 좋으나 여행객이 그걸 우에 챙기겠노. 여기 러시아 사람 이야기에 의하면 원래는 정장인데 요즘은 관광객이 많아 반바지도 들어간단다.
마린스키 극장 계단을 오르는데 앞서가는 여성의 등에 옷이 엄따.
여기저기에는 드레시한 의상에 하이힐 금발의 여성들이 샴페인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멋있다. 영화다.(아래 사진은 아님)
우리의 요숙도 쉬폰 윈피스를 준비해 왔는데 그 놈의 신발주머니를 두고 오는 바람에(정기 독자는 사연을 알리라) 스타일 구겼다. 쉬폰 원피스에 한 달도 더 신은 겨울 가죽 부츠를 신으라고 할 수는 없잔아.
그래도 러시아 본토 라이브 발레 보는게 어데고. 촬영이 금지되어 사진이 없다... 우에 저래 새털 같노. 발레를 처음 보는 촌놈에게도 깊은 감탄은 일어났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지막 저녁. 이제 작별이다.
자~ 요숙씨 또 39km 가입시데이.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요숙의 한마디가 상트를 요약한다.
... 참 문화 도시네예.
...
내일이면 이제 딱 40일간의 러시아 일주를 마친다. 국경을 순조롭게 통과하면 저녁에는 핀란드 헬싱키에 당도한다.
처음에는 러시아를 유럽으로 가는 통로로만 여겼다. 하지만 날이 가고 조금씩 더 관찰하게 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이 우리와 너무도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오늘 오후에 우리말을 아는 러시아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여러가지 오랜 의문이 풀렸다.
이 분의 짧은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와같다.
"선거할 때 보면 상트나 모스크바가 아닌 시골에는 아직 빨간색. 그러니까 러시아에 아직 공산당이 있어요."
러시아가 예전의 통제된 공산국가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혹은 그 이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용어부터 어떻게 분별되어야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분의 삶에서 만큼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도 붕괴되었다.
광대한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싫든 좋든 인간의 사회구조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만큼 어떠한 사회의 구조도 완전할 수는 없다.
비록 우리의 고통이 사회적 구조 속에 있더라도 우리의 자유만큼은 내 생각 한 조각 속에 있음은 분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6/7 00:25)
러시아 말 작별은 오늘로 끝이로군요.
다 스비다냐...до свидания~~
(안녕히 계세요~~)
첫댓글 러시아가 이렇게 문화도시 인줄 몰랐네요
유럽보다 훨씬 정갈한 맛이 나는 문화인듯
암튼 이제는 눈치백단 여행자로 등극하셨네요.~~
들깨를 그냥 덮지않고 뿌려댔더니 온갖새들이 텃밭에 가득한 한가한 일욜~ 여행담을 읽으며 세상이 새삼 넓고도 좁은듯
우리삶은 앞으로 마구 달려가는데 어찌보면 어제와 뭣이 다른지? ㅎㅎㅎ 어색한 말들이네요
넘 행복해보여서 아주 마니 부럽습니다~
로시아의 영향을 받아 미음도 변한듯, 그래서 미송스키님이라고 불러도 될것 같네요. 하지만 말하는 뜻은 보니 아직 미송이구만요. "광대한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싫든 좋든 인간의 사회구조도 계속 변할 것이다." 완전은 없지만, 완전으로 추구하는 모양새는 늘 있다. 공산주의는 좀 극적으로 변모했다고 보여지지만, 자본주의는 덜 극적이기는 해도 그래도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된다.
처음 출발부터 참 재미있습니다.
상트 출장시 겉모습만 보았는데 문화로 채워주시네요
21회를 읽으면서 러시아에 문화에 대한 지난 날 가졌던 생각이 아주 많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미송씨, 고마버요. 화려하고 웅장한 러시아 건축물,... 그 곁에 서 있는 무척 세련된 요숙과 , 전공분야가 아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미송의 촌평. 핀란드로 이어지는 다름 여정이 나를 설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