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제가 주안에, 주께서 제 안에..
인간은 마치 어미의 손을 놓고
길가의 꽃에 취해 갈 곳을 잊은 듯한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리하여, 울며불며 어미를 찾나이다.
인생길을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묵상>
디나의 사건에 대해 친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하몰과 세겜, 그 종족을 멸한다.
또한 여러 아들들이 노략하여 재물과 부녀자, 아이들을 취한다.
야곱은 이에 가나안, 브리스 족속에 의한 보복을 두려워 한다.
아들들은 자신들의 복수행위가 합당하다는 주장을 야곱에게 굽히지 않는다.
야곱과 아들들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두려움과 타당성에 연연하며
원인과 합리성을 각각 주장한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서 제단 쌓을 것을 말씀하신다.
야곱은 곧바로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가족과 사람들에게 이방 신상(귀 장식품의 우상 새겨진 것까지도)을 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조치를 취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안이한 삶의 형태을 추스리도록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사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 오기도 했다. 야곱은 이 사실을 언젠가는 알았을 것이고 라헬을 사랑했으니 묵인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야곱은 '환난 날에 응답하시며 가는 길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벧엘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명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임을 상기시키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과 함께 '땅과 자손'에 대한 축복을 재확인 해 주신다.
또한 야곱은 돌기둥을 세워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어 처음 벧엘에서 하였던 예배를 갖는다.
이것은 과거의 신앙 모습을 되찾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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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형 에서에게 쫓겨 라반의 집으로 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다시 아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인도하시면 세운 돌 기둥이 하나님의 집이요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했던 곳까지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겜에서의 안주는 디나사건, 그 형제들의 복수, 야곱의 두려움 등 환란을 낳고 그것은 다시 벧엘로 올라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가 가지고 있던 재물, 아내와 자식들, 종들, 그리고 안정된 땅은 결코 평안의 원천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우상들을 상수리 나무 밑에 묻어 버린 것으로 보아 그간 그들의 자세는 결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게한다.
벧엘, 결국 벧엘로 가는 것만이 진정한 행로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행동양식인 것이다.
우상이 될만한 것을 다 버리고 마음을 정결케 함으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하여 여전히 당신의 섭리와 작정을 이루어 나가신다.
벧엘에 도착한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상기시키시고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인생은 참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잊는다.
가깝게는 성경 말씀을 잊고, 멀게는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잘 잊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일이 비일지재하다.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 쌓을 것'을 깨닫게 하시기 않았다면 야곱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과 어떠했는지 기억한다. 이는 환란의 결과이다.
야곱은 이 때에 하나님께서 언질하신 것을 기회로 하여 마음을 새롭게하고 벧엘로 향했던 것이다.
'환란 -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매개물이다.
야곱의 여정속에서 다시 벧엘로 돌아온 것이 실로 약 30년만의 일이다.
장자 명분을 속여 받음으로 시작된 나그네의 삶속에서
벧엘에서의 시작이 벧엘로 다시 돌아 온다.
환란은 하나님을 만나러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의 환란은 세겜에서 안주한 것에 대한 심판이며 이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계기가 된다.
나의 지난 30년.
청년의 시절에서 이제 중년의 초행길 사이를 되돌아 보건데
한 뼘 길이(시편39:5)요 베틀의 북(욥7:6)같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놓치고 제 멋대로 살았던 시간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환란과 징계,
그리고 목마른 사슴이 되어 갈증을 채우려는 시도들.
결국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
십자가에서 죽음, 장사됨 - 하나님의 용서하심이요 함께 하시는 벧엘의 축복이니,
이는 주와 같이 살아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리라.
하나님의 인도로 다시 벧엘에 이르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소서.
<마침기도>
주님,
세겜이 아니라 벧엘로..
그러나, 세겜에 익숙한 이 육신은 벧엘로 가기를 싫어 하나이다.
세겜은 나의 길이며, 벧엘은 하나님의 길일진데...
오늘도,
주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장사지냄과 부활과 현현을 묵상하며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나이다.
주님,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한 뼘 길이(시편39:5)요 베틀의 북(욥7:6)같은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놓치고 제 멋대로 살았던 시간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환란과 징계, 그리고 목마른 사슴이 되어 갈증을 채우려는 시도들.
결국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이는 저의 동일한 고백입니다. 50이 넘어서...
저 또한 이제는 십자가에서 죽음과 장사됨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벧엘의 축복이니,
날마다 이같이 살아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전도사님,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함께 하여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