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엘의 하나님(창 28:10-2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코로나 19 감염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아침에, 성탄의 인사도 나누지 못했고,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새해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오늘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해가 이미 많이 지나갔지만, 이제야,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2년 말과 2023년 새해 사이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하여, 한 해의 가장 바쁜 연말과 연초를 작은 공간 안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었기에, 답답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이든, 어떤 질병이든,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한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그리고, 한 해를 시작할 때에, 지나간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떠올리면서, 많은 계획들을 세우기도 합니다.
외출이 금지된 상태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리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다 해도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그래야,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시 37: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신다”(시 55:22)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진다”(잠 16:3)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모든 것이 다 막혀 있을지라도, 하늘을 향한 문은 항상 열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답답할 때, 먹먹할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홀가분해집니다. 미련하게 끌어안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닏.
그러므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연초가 되면, “올해는 한 번, 성경을 읽어볼까?”라는 생각으로, 멀리 했던 성경을 펴보게 됩니다. 그렇게 창세기를 읽다 보면, 그래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들이 등장해서,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에서와 야곱, 그리고,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애굽에 간 요셉이 결혼을 한 것 같은데, 그의 부인 이름이 뭔지는 아예 모른다고 하는 것도 알게 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이 뭔지, 요셉의 부인 이름이 뭔지,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 이름이 뭔지 솔직하게, 몰라도 됩니다. 모른다고 천국 못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갑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이름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됩니다. 이 네 사람을 깊이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처럼 살 수 있을까? 이삭처럼 살 수 있을까? 야곱처럼 살 수 있을까? 요셉처럼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았는데,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요셉처럼 살 수 없을지라도, 야곱처럼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는 이미 야곱처럼 아등바등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무 것도 모르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땅으로 떠날 수 있을까요?
지금이야, 어디를 간다고 하면, 설령 한 번도 안 가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인터넷상으로, 다 검색해 보면, 나오지 않습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볼 만한 장소는 무엇이고, 먹을 만한 맛집은 어디인지, 검색만 하면, 모든 것이 상세하게 제공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양보해서,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수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예를 들어 미안한 마음이지만,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서울로 올라가 청년 시절을 보내고, 목회 사역을 하면서, 동두천, 태백, 충주, 청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합니다.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 뭐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우리는 언제든지, 떠날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연예인들이, 제주도에 땅을 사고, 집 짓고 멋지게 사는 것을 보면, 나도, 제주도에 땅 사고, 집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캠핑카를 끌고, 멋진 해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을 보면, 나도, 캠핑카를 끌고, 그 해변에 가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면, 제주가 아닐지라도 땅을 사거나, 캠핑카를 사지 않더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만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전에, 아브라함이 열심히, 하나님을 잘 믿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기까지만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이라고 할지라도, 지금껏 살고 있던 정든 고향 땅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금껏 살던 곳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우리에게 나타나, 그 약속을 보장해 주신다면,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나의 자녀들의 삶늘 보장해 주시겠다는데,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고 맙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이런 황당한 말씀을 하십니까? 아마, 믿음도 버리고, 하나님 곁을 떠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삭을 바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처럼 살 수 있을까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것입니다.
뭔가 확실한 보장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누구든지 머뭇거리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삭처럼 살 수 있을까요?
이삭에 관한 말씀 중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다”(창 26:12-14)라는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백 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나도 이삭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백 백의 복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삭은 하나님으로부터 백 배의 복을 받고, 평안하게 살았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백 배의 복을 받았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이 판 우물들을 메꾸어 버렸습니다. 사막에서 우물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명줄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땅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당장 마실 물이 없다고 하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물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이삭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우물을 팠습니다. 물을 얻었습니다.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쫓아와, 그 우물을 메꾸어 버렸습니다. 이삭이 또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쫓아와, 우물을 메꾸어버립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이삭의 생명줄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삭과 그의 자녀들의 씨를 아예 말려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삭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여러분이 이삭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참았습니다. 인내했습니다.
당장 눈 앞에, 마실 물이 없어서, 그들의 생명이 위급했을지라도, 이삭은 묵묵히 참아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더 넓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더 크게 번성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내 우물을 뺏는다고 하면, 당장 싸워야지요. 어떻게 참고 삽니까?”
우리는 그러한 일을 당하면, 크게 분노하며, 앞뒤 따질 것도 없이,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삭이 앞뒤 따지지 않고, 그 우물을 메꾼 블레셋 사람들과 다투었다고 하면, 이기기보다는 분명하게 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생명마저도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우물이 있는 곳은 블레셋 땅이었고, 그 땅에는 이미 아비멜렉이라는 왕도 있었고, 그의 친구도 있었고, 그곳에는 군대 장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이삭에게는 부인 리브가와 어린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종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지만, 만약 이삭과 블레셋이 싸운다고 한다면, 그 종들이 누구 편을 들었겠습니까?
블레셋 땅에서 얻은 종들인데, 이삭과, 별 특별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는 탓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것저것 다 따져보아도, 이삭이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이삭처럼, 내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다투지 않고, 인내하며 살 수 있을까요? 아마도, 힘들 것입니다.
분노하기 쉬워도 인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삭처럼 산다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요셉처럼 살 수 있을까요?
팔려간 낯선 애굽 땅에서, 성실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억울하게 들어간 감옥 안에서, 원망과 불평없이, 충실하게 일할 수 있을까요?
훗날, 요셉은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이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셨습니까? 왜 나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았습니까?”
형제들을 만났을 때에도,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를 죽이려 하셨습니까? 왜 나를 파셨습니까?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아십니까?”
요셉은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였고, 그 형제들과 그의 자녀들을 힘써 돌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요셉처럼 살라고 하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을 다 알고 있기에,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훗날,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돈을 벌기 시작하여, 대재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요셉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당장 복수의 칼을 빼들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도 하는 것도, 복수하기 위한 것이고, 재벌이 되려고 하는 것도, 나를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나온 드라마를 보니, 초등학교 교사가 된 것도 학창시절 자기를 괴롭혔던 이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드라마에 열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처럼 살 수 있을까요? 야곱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지만, 야곱처럼은 살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야곱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는 것은 듣기 좋은 소리이고, 실상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통한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형 에서인 것처럼 아버지를 속여, 가로챘습니다.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을 속여, 그의 양들을 훔쳤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한 마디로, 속이거나, 속임을 당하는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 정직하게 일을 함으로,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보다는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만이 내 것이 많아진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내가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고,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만 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야곱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지고 싶었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도 받고 싶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의 딸 레아와 라헬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열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머리를 굴려, 장인의 양들을 훔쳤고, 지금껏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야반도주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여, 홀로 얍복 나루터에 남았을 때에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는 야곱을 보게 됩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야곱의 생각은 “복 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도 “잘 되고 싶다. 복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아갑니다.
잘 되기 위해서라면, 설령 그것이 나쁜 일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그 나쁜 일도 기껏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마음도 갖고 살아갑니다. “내 자녀가 잘 되는 일이라면, 내 손에 나쁜 피를 묻힐 수도 있다. 더러운 일을 내가 다 할테니, 너는 꽃길만 걸어가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야곱과 같은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우리는 야곱처럼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실상은 아브라함, 이삭, 요셉처럼 살지 못하고, 야곱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만, 이삭만, 요셉만 찾아와 주시고, 그들에게만 복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버러지 않는 야곱, 거짓말쟁이인 야곱, 사기꾼인 야곱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그토록 원했던 복을 주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새기면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인생도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돌보아주십니다.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입니다. 바로 이곳이 벧엘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교회에 있든, 코로나에 걸려 가정에 갇혀 있든, 직장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든, 병원 침대에 누워 있든, 그 어디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하여 주심을 믿을 때,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에서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항상 기억함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귀한 날들을 허락하여 주셨사오니, 그 모든 날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