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관희의 '산문의 시' 이론 연구
봄을 찾아서
김형식
새벽 직업소개소 앞마당
모닥불이 겨울을 녹이고 있다
해는 중천으로 기어오르고
허기진 뱃속에는 라면이 끓고 있다
라면 하나에 사랑과
서러움이 끓는다
사업 실패로 거리를 떠도는 아비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라면을 끓이고 있다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
고등학생 막내딸
친구 집 식당 주방에서 식기를 닦고 있는 아내
밤을 지새워 우는 칼바람은
이 무능한 아비가 봄을 찾는 까닭이다
내일도 이 아비는
라면을 끓일 것이다
봄을 찾아서
『月刊文學」20023/2)
[작법공부 ]
2023년 1월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시인 수가 8천 4백 여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장르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필자처럼 수필분과 등 다른 분과에 등록되어 있으면서 시를 쓰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족히 1만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온 세상이 '시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고 아우성치고 있다.평생 문학을 읽어온 경험에 의하면 게재되는 시 작품들은 일단 '무슨 말인지' 문장의 뜻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이런 공상을 해본다. 만약에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근 1만 명의 시인들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서정시 쓰기를 그만두고 문학의 본질·본령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야기 시'를 써준다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난해 서정시'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텐데……
그래서「月刊文學』 신간호가 나올 때마다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찾아보는 데 좀처럼 '이야기 시'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작품이 게재된 2월호에도 48인의 시가 게재되었는데 그 중 김형식 시인의 이 작품 <봄을 찾아서> 1편을 찾아내게 되었다.
<산문의 시>는 '이야기 시' 이론 전문 연구서로 지면이 겨우 184쪽 밖에 안 된다. '이야기 시'가 아니면 게재할 자리도 없고, 게재할 이유도 없다. 필자는 영업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문학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다. 필자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 문학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며칠 전에 <황금연못>에 출연한 100세 노인이 될수록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건강비법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는데 필자는 몇 년째 단 한 사람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고 있는데도 재미있어 죽겠다. 어떻게 그런고 하니 필자는 이책, 저 책에서 찾아낸 '이야기 시작품들 속에서 각가지 인물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표되는 시는 전판 다 서정시라고 한다.
5천만 국민이 하나같이 시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고 하는 그 시들이 바로 서정시인 것이다. 나도 '시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고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래서 문학의 본질, 본령인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에서 '이야기 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이야기 시'가 아닌 글을 본지에 개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업 실패로 실직한 가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 무대(공간적 배경)를 직업소개소 앞마당으로 잡고 있다. 중심 이야기(사건)는 '뱃속에는 라면이 끓고 있다'는 것이다. 병석에 누워 계신 아버지, 고등학생 딸,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는 인물 배경이다. 허기진 뱃속에서 라면이 끓고 있는데, '내일도 이 아비는 라면을 끓일 것'이라고 한다. 라면을 끓이는 목적이 '봄을 찾아서'라고 한다. 봄을 찾기 위해서 뱃속에서 라면을 끓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야기 시'의 이야기는 다른 모든 서사문학의 이야기와 그 출처가 똑같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맞다. 그러나 그 모양과 성질은 전혀 다르다. '이야기 시'의 이야기는 '시로서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시를 발견하지 못하면 시가 될 수 없다. 또한 발견한 그 시를 시작품으로 형상화하지 않으면 시작품이 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법의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많은 경우 시작
품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아직 미숙한 단계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야기 시'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소설처럼 이런저런 이야기 조건들을 다 갖추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극히 단면적이고 순간적인 시적 사건(이야기)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다른 곳에서도 든 예인데 적당한 예인 것 같아 다시 반복하면 소설 서사는 게 전부를 그려내야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야기 시'는 게살만 쏘옥 빼먹으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바로 그 게살만 쏘옥 빼 먹는 작법으로 된' 이야기 시'라고 보았다.
이 작품이 소설이라면 새벽 직업소개소에 나온 배고픈 실직 가장의 이야기가 10쪽 이상 몇십 쪽까지도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작품은 8연 16행의 운문 문장 안에 실직 가장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 시'의 이야기는 서사시의 서사나 현대 소설의 서사가 아닌 것이다. 서사시의 서사는 역사 속의 영웅적 인물들의 장대한 이야기를 다루던 문학이고, 현대 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토지』같은 작품은 25권이나 되고, 조정래의 소설들은 10권 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문학의 '서사'라는 용어 개념이 서사시 시대에 하나의 장르 이름으로 굳어진 장대한 영웅들의 긴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현대 소설도 서사문학이라고 선뜻 말할 수 없는줄로 안다. 왜냐하면 현대 소설은 평범한 일상인의 이야기들이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야기 시'의 이야기는 서사시 시대의 이야기와 길이도, 내용도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현대 소설 이야기와 관계가 깊다는 편이 맞다. 단 그 길이와 이야기 성질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평범한 일상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게를 예로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소설은 게 전체를 그리는 문학이고, 시 이야기는 게살만 쏘옥 뽑아 먹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작품의 뱃속에는 라면이 끓고 있다'를 '이야기 시의 게살이라고 보았다.
문자적으로는 뱃속에서 라면을 끓일 수 없다. 어떻게 배속에 불을 피우고 냄비를 얹어서 라면을 끓인단 말인가? 이 문장은 시어다. 시어에 대한 시론의 설명은 그 첫 번째가 시어는 현실의 지시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뱃속에는 라면이 끓고 있다'라는 시어는 현실의 우리가 먹는 그 라면으로 읽으면 안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럼 무슨 뜻일까? 필자는 '꼬르륵 소리'로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새벽 직업소개소 앞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는 장면으로 되어 있으니 분명 아침밥도 못 먹은 실직 가장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아니겠는가.
라면은 단순히 배고픔만 상징하지 않는다. 라면이라는 상품이 그동안 세상에 심어 온 온갖 서민의 눈물과 땀과 먹는 즐거움….., 그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중에서 이 작품 속 실직 가장의 꿈은 큰 것도 아니고, 가족들에게 라면이나마 굶기지 않고 먹일 수 있는 봄을 찾는 일이다.
금은 금맥을 발견할 때가지 파고 들어가야 된다. 금맥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금을 캣다고 떠드는 것은 망신 당할 일이다.
시도 꼭 그렇다. 이야기 속에서 아직 시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발표해봐야 욕만 먹는다. 잘됐든 못됐든 일단 시를 발견하였을 때 시를 쓰고 발표도 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이고, 자기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를 잡은 후에는 시가 나올 때까지 파고 들어가야 된다.
필자는 이 작품의 시 금맥은 '뱃속에 라면을 끓이고 있다'라고 보았다. '라면을 끓이고 있다'를 빼놓고 전체 작품을 다시 읽어보시라. 시와 시가 아닌 차이가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필자는 「月刊文學』 매호마다 이 작품처럼 '이야기 시' 작품들이 줄줄이 올라오기를 목타게 기다린다. 이 작품이 게재된 2월호에 올라온 48편의 시가 모두 '이야기 시'라면 필자는 다른 시 선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필자가 이 같은 희망을「月刊文學』에 두는 이유는『月刊文㈜에 게재되는 시작품들은 일단 '무슨 소린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문학지에 게재되는 시작품들은 세상이 다 보고 있는 그대로 전판 글 자체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글들뿐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月刊文學』에 올라오는 시 작품들 중에 이 작품 <봄을 찾아서>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
를 하는 '이야기 시' 작품들이 늘어나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란다.
<산문의 시 편집 발행인 이관희>
●.산문의 시
•발행인 이관희(李寬熙 1940. 호적 1941)
· <산문의 시 -이야기 시 > 발견자 이론창안자
2004년 30년 이민에서 돌아오자마자 '수필은 신변잡기에 충격, 해결방법 모색, 백철, 조연현, 공정호 교수 등의 <산문 (메세이)의 창작(詩)적 진화> 이론 발견. 곧장 <수필의 현대문
학 이론화 운동> 시작, 창작문예수필」(현 산문의 시) 창간.
부천, 대전, 대구, 광주 교실에서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창작 문예수필 강의 2018년, '서정시를 방불케 하는 에세이의 20세기 진화' (공정호)론에 근거한 이야기 시 창작현장 발견 이후
<산문의 시 '이야기 시 > 연구 • 전파에 전념하고 있음.(참고: <산문의 시>는 보들레르의 <산문시>가 아닌 자생 이야기 사임)
• 대광중고등학교 졸업 (1960)
• 중앙대학 철학과 수강 (1960)
서라벌예대(미아리야간문창과 수강 (1962)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
(전 Pacific Christian College) 성서신학(문학) 졸업 (1984)
•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ㆍ소설 각 입선 (1991.1992)
•現代文學> 에세이(수필) 추천 (1993)
•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논픽션 입선 (1994)
•<조선문학> 시 등단 (2009)
•<조선문학> 문학평론 등단 (2010)
· 시집 : <사랑하고 죽으리라> 외
• 소설집 <아내의 천국>
• 저서: <창작문예수필이론서> 외
1974년 미국이민 2004년 귀국
•공장노동자(30년)
• 전직 목사
• 현 : 계간 「산문의 시, 편집·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