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2장
21 그것이 이루어지리니, 이것은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救援)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롬 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딤후 2:22] 그대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십시오.·
시편116편
12 나를 향하신 주님의 베푸신 모든 은혜를 내가 주님께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 에노스 시대부터. 부르던 이름.엘로힘
2. 아브라함은 엘삿다이
3. 모세시대 부터 부르던 이름. 출애굽기6장3절.
레위기16장 1년1차. 속죄일때 지성소에서만 속죄피를 일곱번. 뿌리면서 대제사장이 부르던 이름(요세푸스. 유대역사서. 탈무드프샄익편.기록된 내용. )
4. 사도시대 부르던 이름. 히브리어로 예슈아 마쉬아흐 .행26:14-15 요19:20
사도행전3장
6 그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가 가진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사람 예슈아 마쉬아흐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16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강건하게 한 것이니, 참으로 그분을 통한 이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의 면전에서 이같이 온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20 또 그분께서 예슈아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니, 곧 너희에게 미리 선포되신 분이시니라.
잠언30장
5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분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純粹)하시나니,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방패가 되시느니라. 6 너는 그분의 말씀에 더하지말라. 그분께서 너를 책망하시고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염려함이라.
예슈아 마쉬아흐.예슈아 마쉬아흐.예슈아 마쉬아흐.
하루종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2000년전 갈릴리 유대땅에서 제자들 사도들이 부르던 이름 히브리어로 예슈아 마쉬아흐 임마누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약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실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세기 4장 26절에서 인류의 셋째 세대인 에노스 때부터 시작되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욥(욥 12:4, 27:10), 아브라함(창 12:8, 13:4, 21:33), 이삭(창 26:25),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신 4:7), 삼손(삿 15:18, 16:28), 사무엘(삼상 12:18, 시 99:6), 다윗(삼하 22:4, 7, 대상 16:8, 21:26, 시 14:4, 17:6, 18:3, 6, 31:17, 55:16, 86:5, 7, 105:1, 116:4, 13, 17, 118:5, 145:18), 시편 작가 아삽(시 80:18), 시편 작가 헤만(시 88:9), 엘리야(왕상 18:24), 이사야(사 12:4), 예레미야(애 3:55, 57)와 그 밖의 사람들(시 99:6)을 통해 지속되었고, 그들 모두가 구약 시대에 이것을 실행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부르라고 당부했다(사 55:6). 이방인들까지도 이스라엘의 신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욘 1:6, 왕하 5:11). 하나님께서 북쪽에서 일으키신 이방인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사 41:25).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바로 그분의 명령이고(시 50:15, 렘 29:12) 그분의 갈망이다(시 91:15, 습 3:9, 슥 13:9).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천에서 기쁘게 물을 마시는 길이고(사 12:3-4),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즉 즐겁게 그분을 누리는 길이다(욥 27: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매일 그분을 불러야 한다(시 88:9). 요엘은 신약 희년에 관하여 그러한 기쁜 실행을 예언했다(욜 2:32).
신약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당시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하나님의 신약 희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을 경륜적으로 부어 주신 것과 관련된다. 하나님의 신약 희년에 관한 요엘의 예언과 그것이 이루어진 것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님 편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신 것이고, 우리 편에서는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모든 것에 도달하시고 모든 것을 획득하신 승천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성취하시고 도달하시고 획득하신 모든 것에 참여하고 누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고전 1:2). 이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의 주요 실행으로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누릴 수 있게 한다(롬 10:10-13). 초기의 믿는 이들은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을 각처에서 실행했고(고전 1:2),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 특히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보편적인 표시가 되었다(행 9:14, 21). 스데반은 박해당할 때에 이것을 실행했는데(행 7:59), 그의 실행은 그를 박해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던 사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행 7:58-60, 22:20). 그 후, 믿지 않던 사울은 이름 부르는 것을 하나의 표시로 삼아 주님의 이름 부르는 이들을 박해했다(행 9:14, 21). 사울이 주님께 사로잡힌 직후에 그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 안으로 인도한 아나니아는 사울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침례 받고 사울 자신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되었다는 것을 다른 이에게 보여 주라고 사울에게 당부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한 말을 통하여, 초기에 주님을 추구하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이름 부르기를 실행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의심할 것 없이 바울은 이것을 실행한 사람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젊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이것을 행하여 자기처럼 주님을 누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부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위에’라는 말과 (이름을) ‘부르다’라는 말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들을 수 있게, 심지어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다(행 7: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