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전쟁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살라미스 해전'이다.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건인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리스연합군이 페르시아를 물리친 전쟁의 하나로 기억될 따름이다. 하지만 베리 스트라우스 덕분에 이제 '살라미스 해전'은 생동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이 책 <살라미스 해전>으로 고대 그리스의 숨 막히던 시절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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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라미스 해전> 책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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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고스 | 최초의 민주주의가 등장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권의 여러 도시들은 성숙함을 바탕으로 그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식민지와 경제 무역으로 경제력을 확고히 다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서양문명의 근간이 된다고 말해지는 그리스문화가 서서히 꽃을 피우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이렇게 강대한 세력이 등장하던 때에 가까운 동양에서는 이미 확고한 강대국이 존재하고 있었고 새로운 세력의 부상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다. 충돌은 불가피했고 이미 두 차례 큰 전투가 있었다. 신화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으며 현대 마라톤의 효시가 되는 일화를 남긴 마라톤 전투와 같이 페르시아와 그리스는 치열하게 싸웠고 그때마다 그리스가 승리를 거뒀다.
그 사이 페르시아는 왕이 바뀐다. 다리우스 대왕이 죽고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군주가 된 것인데 새로운 군주도 선왕만큼이나 그리스를 탐냈다. 그렇기에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쟁 병력을 동원해 그리스에 창끝을 겨눈다. 이에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갈등이 심했던 이들은 화해를 하고 페르시아의 대군에 반격하려 한다.
전쟁 초기 그리스 연합군은 나름대로 선전했다. 비등한 병력이었다면 페르시아가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대군이었고 그런 일로 회군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페르시아는 아테네의 영토까지 점령해 신전을 파괴하고 중요한 동상들을 훔쳐가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졸지에 그리스연합군의 맹주격인 아테네는 땅 덩어리 없는 서러운 신세가 됐고 그때까지 살라미스로 도망쳤던 그리스연합군의 도시들은 두려워서 우왕좌왕하며 분열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페르시아의 승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은이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이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수식어가 계속해서 떠오를 정도다. 혼란에 빠진 그리스세력과 승리를 목전에 둔 페르시아의 의기양양함은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텍스트 이상의 생명력을 얻었다. 다양한 사료와 성실하면서도 생생한 묘사 덕분에 <살라미스 해전>은 전쟁의 매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지는 순간은, 전쟁의 긴박한 순간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만들고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 흡인력은 전쟁을 복원한 작품 중에서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살라미스 해전>이 단순히 생생한 전쟁 묘사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가치는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지은이는 다양한 시선으로 살라미스 해전을 바라보고, 분석한 뒤에, 그 결과를 내놓는다. 역사를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분석하는 재미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왜 패배했는가? 그리스에는 노련한 지략가 테미스토클레스가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어떻게든지 그리스연합군이 흩어지지 않게 만들고 페르시아와의 결투가 살라미스에서 일어나게 만들려고 절치부심하며 온갖 계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페르시아에도 노련한 지휘관이 있었다. 살라미스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걸 아는 이가 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알려주듯 페르시아는 살라미스에서 싸웠고 지형의 도움을 받은 그리스군에게 대패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투의 승자를 가늠하게 만든 요인은 지형이었을까? 아니다. 지은이는 그 이전에 페르시아가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하는데 그것에 따르면 페르시아 군대는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웠고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와 같은 영광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페르시아 군대는 패배해도 승리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했고 살기 위해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그들은 살아서 왕에게 잘 보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연합군은 달랐다. 그들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패전이 불 보듯 뻔한 전쟁터에 나섰던 이유는 자신과 자신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 전쟁은 외견상 동서양의 유례없는 대격돌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물질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의 대결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고 이제 이름으로만 알려졌던 살라미스 해전은 '정신'이 '물질'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페르시아는 왜 그토록 그리스에 집착했던 것일까? 적을 살라미스로 데려오기 위해 지략가는 어떤 계책을 펼쳤는가?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에는 어떤 이유로 '제국적 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 격동하는 역사의 한 장면을 포착한 <살라미스 해전>에 그 답들이 있다.
묻혀있던 세계를 바라본 지은이의 돋보기 덕분에 과거의 그것은 빛바랜 사진이 색을 얻어 되살아나는 것처럼 오늘의 것이 되어 그 시대를 중계하고 있다. 놀라울 정도로 아주 생생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