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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8. 마흔네번째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기도 염성섭 장로,이원준 장로,하경숙 권사,조용림 권사,(549)
성경말씀 요한복음 7:37~52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가을 편지
찬송 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광고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
서울에 교회 설립을 위해 기도(모범, 모델이 되는 교회)
김장(11/16~18), 미용봉사 (11/24,화), 추수감사절성찬예배(11/22)
찬송 401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188 만세 반석 열리니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어제 우리 권선희 권사님 눈이 충혈되었기에
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새벽 2시에 일어나 잠을 못 자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저도 요즘 밤잠을 못 이룹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예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온몸을 두둘겨 맞은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
넓은 들녘을 가로질러 출근할 때마다 해돋이를 봅니다.
그러면 차를 갓길에 멈추고 해돋이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퇴근길에도 석양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러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핫 뉴스거리가 트럼프와 바이든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미국도 이제 늙었습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축제가 아니고 늙은이들의 싸움질입니다.
그러나 다른 일면에서는 감탄도 합니다.
바이든이 4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9세입니다.
이제 곧 80입니다.
트럼프는 4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6세입니다.
정말 노병은 죽지 않았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장군 말이 생각납니다.
이분들의 노익장이 경의 롭습니다.
그러니 목사인 저는
이제 시작입니다.
37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절.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절.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리리에서 나오겠느냐
42절.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절.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절.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절.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절.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절.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절.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절.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절.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어제 해드라인 뉴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친 생매장한 아들, 노모는 "내 발로 들어갔다"..눈물의 모정
중국에서 거동이 힘든 79세 친어머니를 생매장한 아들이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생매장한지 사흘 만에 어머니를 땅속에서 구조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아들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내 발로 들어갔다고 아들을 감싼 어머니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우리 요양원에서도 모양만 다르지 이런 처지로 사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약도 주지 마라.
밥을 먹지 않더라도 영양제도 맞히지 마라.
그러면 밥을 먹던지 말던지 그냥 그대로 두고 보란 것입니다.
이것이 또 다른 모양의 생매장입니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성도님이 계십니다.
몇 달간 대변을 누지 못해서 병원에 가보았더니
항문 입구에 큰 혹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미 보호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께서 당장 수술하라고 수술 일정까지 잡아주었더니
가족회의를 하고서 수술 일정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그 성도님이 얼마 전 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어머니 똥 기저기 갈아 주면서 돌보았던 요양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려도 받지를 않는 겁니다.
요양원 운영하고 처음으로 법원에 소송을 했습니다.
곧바로 요양비가 입금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집사님이십니다.
이렇게 떼인 돈만 몇억원 입니다.
글쎄 같은 교회 장로님이십니다.
징그럽게도 말도 안 듣습니다.
어머니가 뼈만 남아 있어도 약도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이런 분들이 욕창이 발생하면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드시는 것이 부실하니 영양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욕창 부위를 사진 찍어서 보내 드렸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영양제랑 같이 맞으셔야 빨리 회복 됩니다.
그랬더니 제가 없는 사이에 오셨습니다.
뼈만 남으신 어머니를 보시더니 약값도 잘 줄 테니 잘 돌봐 주시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각박한 마음에도 감동이 생깁니다.
그래서 목사인 제가 너무나 고마워서
장로님,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문자를 보내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산다는 것이 뭐겠습니까?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목사인 저도 효자가 아닙니다.
너무도 일찍 고인이 되신 우리 어머님께
새 옷 한 벌 못해 드렸습니다.
고기반찬 한 번 못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죄인처럼 살아갑니다.
37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오늘 말씀은 초막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1월 셋째 주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절기 성찬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고 광야를 헤매고 살 때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광야 유랑 생활을 기념해서 초막절기 7일 동안은 천막을 치고 생활합니다.
우리도 가난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고난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고 곡식들을 주셔서
감사 절기이기도 합니다.
어제 예배 준비를 하다가 우리 전예순 권사님 방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보더니 목마르다고 물 좀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뉴케어 죽을 드렸습니다.
벌컥벌컥 마시는 것입니다.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7)
목사인 저도 항상 목이 마릅니다.
항상 갈급합니다.
부자인데도 그놈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가 않는 그 뭔가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허전합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서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38절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마태복음 5장 6절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의학적으로도 우리 몸은 물이 70%입니다.
그래서 좋은 물을 마셔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정말 목마름도 없는 좋은 물이 있습니다.
이 물을 생수라 합니다.
이 생수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받아 마셔야 합니다.
39절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생수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떻게 받아 마시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4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
엊그제 우리 김선심 집사님께서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김선심 집사님이 저와 함께 몇 년을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날 너무나 피곤해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유태규 집사 정신 병원에 심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춘자 권사님 약 처방 받으러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동렬 성도님 폐암소견 때문에 익산 CT촬영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조리팀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양치질하고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우리 김선심 집사님께서 회개 기도를 하시는 겁니다.
지나온 세월 모두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김선심 집사님 성품이 얼마나 까다롭습니까?
아마 우리 요양원에서 까다롭기가 1등일 겁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아예 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김선심 집사님이 회개기도 하시고
온화해 지시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렇게 온화하게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지금 내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신지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온화한지?
내가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항상 불평불만에 살고 있는지?
내가 항상 믿음이 있는지?
지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40절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절.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리리에서 나오겠느냐
아무리 잘해도 의심병을 어찌하겠습니까?
입만 가지고 믿어달란다고 어찌 믿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41)
이렇듯 비아량거리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1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요한복음 12장 37절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믿음이란 게
이렇게도 어렵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 무엇을 보여주고 증명해 보일지라도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찌 믿겠습니까?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도대체 믿지를 않습니다.
지금 미국 대통령까지 한 트럼프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전 세계 70억 인구가 지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만 부정 선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50절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절.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아름답습니다.
이것을 절차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절차적 정의를 다른 말로는 민주주의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예수를 가짜라고 말하고 있을 때
니고데모 한 사람만 절차적 정의를 지키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증거도 없이 예수를 가짜라며
무조건 붙잡아 죽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설령 목사님이 죽을 죄인이라고 말할지라도
여러분들을 목사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한 믿음의 동지입니다.
목사님의 삶을 1년도 아니고 10년이 넘도록
그리고 30, 50년이 넘도록 지켜보아 왔습니다.
그런데도 가롯유다와 같은 사람이 속닥속닥 고자질한다면
솔깃합니다.
아~ 목사님 귀가 당나귀였네~
그렇지만 목사님은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제가 쓰던 커피포트가 깨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없어진 그 자리에 필립스 커피포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배유경 과장께서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에서 쓰던 커피포트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 일이 작은 것 같지만 저를 감동시키고도 남았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어제 함열 장날이었습니다.
모퉁이 항상 그 자리에서 10년이 지나도록 나무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그래서 으스대며 다가가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유명한 시인인지 몰랐지요?
나무장사 아주머니를 소재로 한 시를 보여 드렸습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서 읽고 있었습니다.
함열 장날이면
모퉁이 길가 그 자리에서
나무를 파는 아줌마가 있다
찐빵 모자를 눌러 쓰고
웃는 얼굴이 비구니다
벌써 십 년이 지났는데도
항상 그 자리에
가로수처럼 서 있다
오늘은
붉게 익은 감 두 개가 대롱대롱거린다
마치
비구니 아줌마 방싱방실 웃는 모습이다
홀딱 반해 버렸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우리 집 대문가에
한 그루 감나무를 심기로 했다/비구니 2020. 11. 가을에
그렇습니다.
자금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을 성령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은 생수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은 눈물샘이 마를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김선심 집사님을 볼 때마다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집사님 사랑해요! 수백번씩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묘약입니다.
이 가을이 가기도 전에
가을 편지를 쓰기 바랍니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우리 인생 헛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 의심병을 믿음으로 고쳐지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