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고아 세 남매의 모험담
동화책을 읽다보면 고아보다 불행한 운명은 없다고 믿게 된다. 죽 한 국자만 더 달라고 애걸하는 올리버 트위스트, 고아는 아니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아서 마녀의 식사 거리가 될 뻔한 헨젤과 그레텔, 생쥐를 벗삼아 다락방에서 지내는 소공녀 세라. 그 가엾은 고아들의 연대기는 12월4일 LA 차이니스 시어터에서 열린 <레모니 스니캣> 프리미어에 이르러 별빛도 닿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모를 잃고 올라프 백작에게 쫓기는 보들레어 세 남매는 다른 고아들에게는 내리지 않은, 유산이라는 축복 때문에, 원작소설이 열한권에 이르도록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신데렐라 같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작가 레모니 스니캣은 그런 보상을 기대한다면 책을 놓으라고 충고한다. 그는 아마도 영화 티켓도 사지 말라고 충고할 것이다.
화자 레모니 스니캣의 참견이 독특한 동화
<레모니 스니캣>은 ‘레모니 스니캣’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다니엘 핸들러의 시리즈 소설이 원작인 영화다. 한국어로는 <위험한 대결>이라는 일관된 제목 아래 매권 다른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지만, 작가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시도가 어색하지만은 않다. 레모니 스니캣은 소설과 영화의 화자이고, 아기 말을 쓰는 막내 서니의 통역자이고, 가끔 냉소적인 어조로 끼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다시 올라프 백작의 음모에 걸려든 아이들을 두고 “이런 말을 하자니 마음이 아프지만 이럴 때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 있다”면서 냉정하게도 그들 앞에 죽음이 놓여 있으리라고 예고한다. 하지만 하나도 마음 아픈 말투가 아니다. 이런 레모니 스니캣의 얄미운 참견과 아이들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묘사는 <해리 포터>처럼 웅장하거나 닥터 수스의 동화처럼 오래되지 못한 이 시리즈에 독창적인 매력을 첨가한다.
그 때문에 이 시리즈를 영화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보다 설명과 감정, 풍경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스퍼> <시티 오브 엔젤>의 감독 브래드 실버링은 가시 돋친, 조금은 토라진 아이같은, <위험한 대결>에 적합한 감독이 아닌 듯도 했다. 발명에 몰두하면 세상을 잊는 바이올렛은 빅토리아 시대 소녀처럼 조숙하고 음침하고, 클로스는 나이답지 않게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책벌레이고, 이빨로 선박용 밧줄도 끊는 서니는 번역해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할 아기 말만 한다. 그러나 실버링은 툭툭 끊으며 내뱉는 원작을 정교한 프로덕션디자인, 걸출한 신체 연기의 달인 짐 캐리, <눈동자의 집> <파충류의 방> <눈물샘 호수의 비밀>을 모두 더해 각색하는 모험으로 돌파했다. 팝업북에서 튀어나온 듯한 숲속 요정들이 뛰어놀다가, “아, 미안, 이건 여러분들이 지금 보게 될 영화가 아니랍니다”라고 사과하는 오프닝은, 원작에 없으나 원작의 정수를 포착한 서비스다.
움직이는 화폭을 보는 듯한 어두운 판타지
<레모니 스니캣>은 잿빛 안개가 유난히 짙었다고 묘사되는, 아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전해 듣는 바닷가부터, 강박증을 가진 장인처럼 공들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암흑에 가까운 공기와 연기보다도 묵직한 안개가 아이들 주위를 맴도는 바다는 영원히 떠돌게 되리라는 저주를 받은 네덜란드인 선장의 유령선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 대신 안개 속을 걸어나오는 이는 부고를 간직한 포 아저씨다.
부유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바이올렛과 클로스, 아기 서니는 원인 모를 화재로 부모와 집을 잃는다. 아버지의 친구 포 아저씨는 유언장에 따라 아이들과 그들의 유산을 가장 가까운 친척 올라프 백작에게 맡긴다. 100년 동안 빗자루 한번 대지 않은 것 같은 집에 사는 올라프 백작은 괴물 서커스단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극단을 이끄는 배우다. 영리한 보들레어가 아이들은 올라프 백작이 자신들을 살해하고 유산을 차지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귀기울이지 않는다. 세 남매가 가진 무기라고는 바이올렛의 두뇌와 독서로 얻은 클로스의 지식, 톱날이 무색한 서니의 이빨뿐이다. 남매는 올라프 백작의 음모를 폭로한 뒤에도 몬티 삼촌과 조세핀 숙모 집까지 추적해온 올라프에게 시달린다.
실버링은 조소어린 원작에 한겹 먹지를 입혀 조명을 낮춘 영화를 내놓았다.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리는 손가락과 마그리트 그림 속의 남자처럼 모자를 쓴 뒷모습만 나오는 레모니 스니캣은,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시대 건물 같지만 지극히 인공적이고 비현실적인 방 안에서, 세 남매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 방은 현실에 없는 공간이나 눈에 익다. 검은색과 회청색을 오가는 눈물샘 호수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는 조세핀 숙모의 집, 장난감 열차 모형 안에 세 아이의 미니어처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철도 건널목, 정상적인 동화책 페이지에서 건져올린 듯한 스트라우스 판사의 예쁜 집과 흉가나 다름없어 검은 오라를 내뿜는 올라프 백작의 저택이 나란히 닿은 동네. ‘고딕’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길 없는 이 판타지 세계는 언뜻 팀 버튼을 떠올리게 하고, 그 편견은 정확하게 맞다. <레모니 스니캣>의 프로덕션디자이너 릭 하인리히는 <가위손>의 세트디자인과 <슬리피 할로우>의 프로덕션디자인을 거쳐왔다. 그 사실을 모르고 보더라도 몬티 삼촌 집 정원의 나무들은 에드워드의 가위손이 다듬은 흔적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촬영감독 에마뉘엘 루베즈키 또한 <슬리피 할로우>의 카메라를 잡은 경력이 있다. 그들이 채색한 <레모니 스니캣>은 단순히 어두운 동화를 넘어 악몽의 한순간을 담은 음산한 그림이 됐다.
<레모니 스니캣> 제작진은 이 시대 불명의 동화를 오로지 실내에서만 찍었다. 나무도 깨물어 먹는 피라냐들이 날뛰는 눈물샘 호수는 현실의 호수 위에 컴퓨터그래픽을 덧붙인 결과가 아니라 거대한 물통이었으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비현실적이다. “이 영화는 우리 세계와 나란히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세계는 어디에도 없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세계다”라는 하인리히의 설명은 움직이는 화폭을 보는 듯한 <레모니 스니캣>의 정확한 각주일 것이다.
짐 캐리에 의존해 전개되는 3막의 구조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동정을 금할 길 없는 <위험한 대결> 세권은 각색 과정을 거치면서 실버링의 말처럼 삼막의 구조를 갖추게 됐다. 책 한권에서 기둥만 뽑아내 한 지붕 아래 꽂아둔 거나 마찬가지다. 덕분에 아이들이 겪는 고난은 재빠른 속도를 얻었지만 에피소드가 따로 노는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이 블록 조각 세개를 관통하는 끈은 캐릭터다. 바이올렛과 클로스를 연기한 아이들은 덜 여문 몸과 나이먹은 얼굴을 가진 드문 배우다. 이들 에밀리 브라우닝과 리암 에이킨은 원작이 신경질적인 펜선으로 그어내린 캐리커처를 슬픔과 분노와 용기가 가라앉은 어른스러운 태도로 중화시켰다. 실버링은 “레모니 스니캣은 범죄자에게 쫓기는 것처럼 절박하게, 직접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주드 로가 목소리를 내준 레모니 스니캣은 초반의 장난기와 중·후반의 근심어린 시선을 적절하게 오가고, 부티크 마네킹처럼 의연한 뒷모습 또한 품위가 있다.
그러나 레모니 스니캣도, 보들레어 세 남매도, 짐 캐리의 접착력에 의존해야만 빛을 얻는다. 짐 캐리는 본모습인 배우로서의 올라프 백작뿐만 아니라 파충류 학자 스테파노와 외다리 선장 샴으로 변장했을 때도 각각의 에피소드를 길게 뻗은 팔다리로 휘어감는다. 실버링은 그 때문에 샴 선장이 등장하는 부분을 대폭 줄였다고 고백했다. <레모니 스니캣>은 짐 캐리 최고의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를 향한 기자들의 질문도 기억 잃은 연인을 안타까워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관한 부분이 훨씬 진지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백작을 누가 연기해야 할까?”라고 물으면서 가는 몸을 우아하게 사선으로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영화가 말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짐 캐리는 하얗다기보다는 탈색됐다고 표현해야 할 피부와 머리카락의 도움을 받아 선을 표백하고 악을 물들였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레모니 스니캣>은 본격적인 시리즈 영화에 앞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면서 <스파이더 맨2>처럼 1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썼다. 아직 계획은 없다. 실버링은 속편을 만들고 싶지만 관객과 만난 뒤에 생각해봐야겠다고 밝혔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남는 <레모니 스니캣>보다 더 드라마틱한 속편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만남은 멀고, 기약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레모니 스니캣>은 엔딩크레딧까지 아껴 보아야 할 영화다. 그만큼 영화가 훌륭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검은 바탕 위에 종이인형을 오린 듯한 애니메이션으로 장식된 엔딩크레딧이 시선을 붙잡아두기 때문이다.
LA=김현정 parady@cine21.com
브래드 실버링 감독 인터뷰
“어른이 봐도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브래드 실버링은 다소 혼란스러운 이력을 가진 감독이다. < NYPD 블루 > <펠리시티> 등을 만들며 주로 TV에서 활동했던 그는 95년 <캐스퍼>로 영화감독이 되었고, 감상적인 <시티 오브 엔젤>과 살해당한 여자친구의 기억을 담은 <문라이트 마일>을 나란히 필모그래피에 올려놓았다. 램프 불빛처럼 희미한 빛만이 존재하는 <레모니 스니캣>은 그가 어른과 아이, 두 가지 심성이 공존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하는 영화다.
-<레모니 스니캣> 시리즈 세권을 영화 한편으로 만들었다. 각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는가.
=시리즈 소설의 첫 번째 책을 각색하다보면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캐릭터는 매우 풍부하지만 사건이 적어서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모니 스니캣> 처음 세권을 읽다보니 책 한권이 1막을 이루는 삼막극 같았다. 우리가 결정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중에서 어떤 캐릭터를 영화에 가져올 것인가였다.
-<레모니 스니캣> 원작소설은 시대와 공간이 불분명하다. 영화로 옮기면서 어떤 시대를 염두에 두었는가.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시대가 분명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보편적인 동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바닥에 깔린 자갈 같은 건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바이올렛의 발명품이나 다른 장치들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섞었다.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으면서도 현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도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약간의 마법도 보탰다.
-아이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어두운 이야기라는 지적이 많다.
=나는 텍스트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아기가 새장에 갇히는 장면이나 몬티 삼촌이 살해당하는 대목은 매우 잔인해 보일 수도 있다. <레모니 스니캣>은 메이저 회사가 제작하는 영화라서 좀더 부드럽게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 열댓명을 모아놓고 비디오를 보여주었더니, 그 아이들이 꼭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라고 말하더라. 어른 관객인 내가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짐 캐리 인터뷰
“6개월 동안 머리를 밀고 지냈다”
짐 캐리는 “짐 아저씨가 꼭 올라프 백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에이전트의 열살짜리 아들 때문에 <레모니 스니캣>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직한 꼬마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짐 캐리가 아닌 올라프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너무 사악해서 오히려 코믹하고, 매번 다른 인물로 변장하지만 어설프고, 창백한 얼굴과 대머리에도 정이 간다. 분장을 지우고 말끔하게 나타난 짐 캐리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스탭이 “이번에는 짧게”라고 몇번이나 부탁할 정도로 열성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악역을 맡아본 적이 거의 없다. 올라프 백작은 당신에게 도전이 되었을 것도 같다.
=올라프 백작은 순수하게 악만 존재하는 인물이어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여섯달 동안 머리를 밀고 지냈는데, 괴물처럼 보이는 내 모습이 재밌기도 했다. 나는 올라프를 공격적인 새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둥지를 노리다가 알을 채가는 새. 그는 얼굴도 새를 닮았다.
-<레모니 스니캣> 시리즈는 매우 어둡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위험은 현실적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삶은 비극과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 영화의 아이들은 세상에 던져져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그것은 십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누구도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게 관심을 갖지 않고,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을 다들 가져보았을 것이다.
-당신은 올라프 백작을 놀라울 만큼 우아한 몸짓으로 연기했다.
=내 몸은 내게 훌륭한 도구다. 감정뿐만 아니라 신체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 매우 큰 축복이다. 올라프 백작은 항상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어하고, 변장하기를 좋아해서,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올라프를 연기하면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면 어떤 농담이라도 훨씬 재미있고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내게도 항상 새로운 걸 하라고 격려해주었던 아버지는 내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