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7:1~12)
우리가 시험과 연단 안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른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3절)
마음과 행위, 둘 중에 더 본질적이고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마음이다.
마음은 행위를 조정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행위가 마음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방향이 행동을 규정한다.
최근 신도들의 문제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감동이 있는 듯한데
행동에 변화가 없거나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의 변화가 있지만 행동을 터부시하는 잘못된 관념에 빠졌거나
실제적으로는 마음의 변화가 없는 것일 수 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라고 5절에서 규정한다.
누가 이 시대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겠는가?
현대화된 세상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고,
많은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기에 대놓고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가난한고 약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을
효율과 효능 등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 하는가?로 판별할 수 있다고.
위정자나 교회, 사회의 지도자들은 보면
모두가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마음이나 이성이 가난한 자를 위하라는 것을 인정한다해도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그렇게 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그런 지금의 상황을 인정하고
부단히 그렇게 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노력해야 한다
분투해야 한다.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힌다.( 10절)'
타자와 관련되고 영향을 주는 최대치는
측면지원하는 것 정도이다.
encourage, empower, urge, facilitate, support 등
상담이나 리더십 등 인문학을 다루는 어떤 학문에서도
위와 같은 측면지원, 지지와 관련된 동사를 사용할 뿐이지
상대방을 장악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한 측면지원이 너무 미비하다라고 하면
미비한 것이 되겠지만, 큰 위력이 있다면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하는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총명한 자에게 건네는
좋은 말 한마디는 매우 효과적일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타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반대로 매 백대를 때리는 행위는 나의 조급함과
강한 의지를 타자에게 투영하려는 일종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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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으로 충분하고
하나님을 향한 모든 오감과 지각을 집중하여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모습은 거기에서 너무 요원합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도와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