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의원이 특사자격으로 북경을 방문했다.
아직 본격적인 대선 정국은 아니지만 유력한 대선후보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P의원이 특사로 나선 것은 파격이다. 미국이 항공모함까지 파견하면서 점점 험악한 양상으로 치닫는 조어도 사태 때문이었다. 중국 주변국 중 가장 비중이 있는 한국이 손 놓고 방관만 한다는 것도 문제라는 상황인식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았다. 때문에 대통령에 버금가는 비중의 여당 대표에게 특사 역할을 청하게 되었고 P가 이를 흔쾌히 수락해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명분은 어디까지나 중국 측 불법어로 문제의 무마였지만 조어도 사태에 대한 중국 지지표명이 핵심이었고 김정은의 북한에 대한 중국 측 입장 탐색도 포함된 방문이었다. 한국측 선물 보따리에는 국토해양부의 조어도 자료도 들어있었다.
중국 측의 좌장인 원자바오 총리는 P 의원과 악수한 손을 오랫동안 놓지 않으며 치하했다.
“ 우리가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도 몰랐던 사료를 발굴해주시니... 기쁘지만 한편으로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역·사·연·구에 많은 협조를 하겠습니다.”
그는 왕년의 주은래 못지않게 진솔한 인품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권력 교체를 앞둔 중국은 후진타오가 대표하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과 장쩌민의 샹하이 방 2대 파벌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공청단의 실세인 원자바오는 전임자 장쩌민이 저질렀지만 국가적 치부라 그동안 쉬쉬 해오던 파룬궁 사건을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질타할 만큼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
“ 마취제도 없이 산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는 게 인간이 할 짓인가? 이런 일이 수년씩 계속됐는데도 아직까지 해결 못했다. 왕리쥔 사건을 세계가 다 알게 되었으니 보시라이 처리 김에 파룬궁 문제도 해결하자.”
이런 그가 ‘역사 연구에 협조하겠다.’ 면 이는 동북공정에 영향을 미칠 중대발언이었다. 배석한 중국 측 인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인 것도 당연했다.
영어는 실무와 현실의 언어다. 반면에 한문은 사상과 학문에 걸맞다. 사상과 학문의 도구로 실무를 다루면 답답한 게 당연하다. 그들은 절대 직언하지 않는다. 언제나 에둘러 말한다. 논리적 화술은 생리적으로 혐오한다.
중국 문서에는 오자는 물론 앞뒤가 잘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들은 논리보다 감感의 화술을 즐긴다.
‘내 비록 앞뒤 안 맞게 말하더라도 알아서 들어라.’ 식이다.
논리에 길든 서구인에게는 실로 뜬구름 잡기다. 그들과의 대화는 시적이고 선문답 같다.
그들은 '창문을 열고 산을 보듯 말하는 ‘개문견산 開門見山’ 식의 직접적 표현을 깔본다. 노자는 ‘말로 표현된 도는 이미 진정한 도의 세계가 아니다.’ 라 했다. 비논리적인 모호한 화법에 정당성까지 부여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기’ 따위는 그들의 사전에 없다.
이것도 모르고 확답을 다그치면 건성으로 ‘별문제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확답하지 않는 습성이 굳어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말의 참 뜻을 새겨들어야 실수가 준다. 확답에 목매지 말고 스스로 답을 얻어야 대화 역시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러한 문화를 지닌 중국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이라 할 만큼 시원시원하게 속내를 드러내 준 회담이었다. 이는 한국 외교의 개가이자 P 의원의 명예를 드높인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만찬석 상의 시진핑이 P의원에게 은근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 시경을 아십니까?”
중국인 특유의 그 우회적 화법에는 ' 당신, 우리 중국인의 마인드를 알고 있소?' 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씨익 웃은 P 의원이 유창한 성조의 보통화로 읊었다.
“ 꽌→관 쥐/찌우→, 짜이↘허↗ 즈/쩌우→......”
그것은 시경 첫 머리에 나오는 관저關雎 첫 구절이었다.
(關關雎鳩, 在河之洲 꾸륵 꾸륵 물수리 소리 강가 모래섬에서 들려온다
窈窕淑女, 君子好逑 하늘하늘 어여쁜 여인을 총각들이 그리워하네)
' 물론! 그 정도도 모르고 왔겠습니까?' 라는 의미의 응구첩대였다.
무릎을 탁 친 시진핑은 만면에 희색을 띠며 건배를 제의했다. 자국어로 시경을 읊는 빈객에게 주변의 중국 인사들 역시 저마다 호감을 드러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그들의 구미에 쏙 든 한 마디가 딱딱하던 공식 만찬 분위기를 삽시간에 녹인 것이다. 한 중국측 인사가 말했다.
“ 일본은 영토분쟁을 - 조어도, 독도 그리고 쿠릴열도. - 동시다발로 벌이고 있습니다. 한, 중, 러시아와의 3면 대국을 자청해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왜 굳이 이런 길을 택했을까요?”
그것은 한국측을 이미 우군으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담긴 발언이었다. 한국 측 오 국장이 화답했다.
“ 원래 개봉관에서는 한 편만 상영합니다.
동시 상영 따위는 없어요. 그런 건 질에 자신 없을 때 양으로 승부 내려는 3류 극장들의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심한 경우 3편 동시상영도 하지요. 하지만 현자들은 짐작합니다. 그 영화 수준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
P 의원의 중국고전 소양에 흐뭇해져 있던 중국인들은 이어진 오 국장의 재치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국 인사가 다시 말했다.
“ 노다 총리는 마쓰시다 정경숙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보수 우익 중에서도 과격파란 평가더군요. 영토분쟁을 자신의 과격 노선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끼어들었다.
“ 차제에 평화 헌법을 개정해보려는 것 아닐까? 영토분쟁은 염불, 평화헌법 개정이 잿밥이라면...
그들의 국내정치용 쇼에 우리가 조연으로 나설 이유는 없지요. 강경 일변도로 나가면 오히려 재무장을 도와준 '고마운 이웃'이 되어버릴 우려가 큽니다. 냉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저들이 격장지계로 나올지라도...“
역시 관록 있으면서도 참신한 시각이었다. 그 정도면 거의 외교 지침이었는데 중국 측 인사들이 무덤덤한 것으로 미루어 이미 내부조율을 거친 의견으로 짐작되었다.
시진핑이 부연했다.
“ 우리는 마쓰시다 정경숙이 배출한 인재의 품격을 지켜볼 것입니다. 요시다 쇼잉의 전통을 이은 정경숙의 진면목이 조만간 드러나겠지요. 무작정 강물로 뛰어드는 레밍 같은 사태로 흘러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꾸라처럼 화려하게 산화하려 덤비는 기질 따위... 피차 불편하지요.“
민우는 그날의 스마트 폰 영상을 미주에게 보냈다.
대화 중 북한이 거론되던 장면에서 원자바오나 배석자들의 의식지수는 ‘경멸과 신뢰’를 오가는 170~ 250 사이였다.
북한은 그들에게 더 이상 혈맹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점수였다. 의식지수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외교자료였다. 이로써 빌리는 설령 상대가 포커페이스로 나올지라도 속내를 파악해주는 도우미임을 증명했다.
P의원은 너무도 신기해했다.
“ 세상에, 무슨 컴퓨터가 사람 마음을 다 읽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