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메디치가문을 배반했던 사실을 아는가?
미켈란젤로가 여덟 살 아래인 천재 화가 라파엘로를 시기하고 경쟁자로 여기며 평생 살았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고 있는가?
메디치가를 다시 부활한 코지모1세가 등극하면서 미켈란젤로는 예술의 고장 피렌체를 밟아보지 못한 체 로마에서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위 사진은 코지모 1세 재위기간 동안 강력한 후원을 받았던 브론치노의 작품이다. 코지모 1세의 아내 엘레오노라 왕비의 모습이다.
메디치가의 4대 군주로 '위대한 로렌초 대왕'으로 불리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던 주인공이다. 문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최고로 사랑한 군주였다.
그러나 동생 줄리아노의 죽음으로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더 예술과 문학을 가까이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군주 로렌초는 우연히 열다섯소년 미켈란젤로를 만나게 되며 그를 전적으로 배려하며 후원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스승이었던 기를란다요로부터 그는 최고의 드로잉 기법을 훈련받게 된다. 그러나 돈만 밝히는 예술가는 싫다며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를 쫓아낸다.
미켈란젤로가 로렌초 군주의 비호 속에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결국 그의 죽음 후 그의 아들 5대 군주 피에로 국왕의 핍박 가운데 산토스피리토 성당으로 잠시 피신해 간다.
산토스피리토 성당 지하실에서 미켈란젤로는 시신들 몇몇을 훼손하여 장기를 끌어내 스케치를 해 본다. 해부학의 의미가 깃든 조각 <다비드>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된다.
프랑스 샤를 8세는 20만 대군을 이끌어 이탈리아를 침략하며 결국 피렌체를 점령한다. 프랑스 대군의 길을 열어주는 조건으로 희생을 줄이자는 묘수의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변절과 계략으로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피렌체 군대는 무장해제를 당하며 메디치가의 피렌체는 유린된다.
신혁명정부 기간에도 돈 벌기에 탄력 받은 미켈란젤로는 유통 구조에 눈을 뜨고 모든 프로젝트를 직접 거래하게되며, 심지어 돌을 사러 마차를 몰아 직접 간다.
미켈란젤로가 가장 싫어한 일 중 하나가 유통마진을 주는 것이었다.
피렌체와 그리 멀지 않은 도시국가 우르비노 왕국에서 태어난 라파엘로, 그가 피렌체에서 예술가로 활동했던 시기는 메디치가가 축출당하고 과도기 혁명정부가 들어섰던 때다. 라파엘로는 1504년 피렌체 혁명정부로부터 초대된다.(143)
피렌체에 도착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와의 언쟁에 맘이 상했던 레오나르도가 방금 전 피렌체를 떠났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하여 그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라파엘로는 거장 레오나르도와의 만남도 이루지 못했고 넉넉한 보상을 책임진다던 혁명정부는 미켈란젤로의 요구로 너무 많은 비용을 <다비드>에 책정했기에, 라파엘로의 작품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게 되었다.(145)
라파엘로는 최고를 꿈꾸는 미켈란젤로와의 경쟁 아닌 마찰도 종종 있지만, 되도록 미켈란젤로 작품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라파엘로는 메디치가의 로렌초 일 마니피코 국왕의 둘째 아들인 레오 10세 교황 시절 수석 예술가의 직책을 맡아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151)
바티칸 수석 예술가로써 너무 많은 중책과 교황 레오네 10세의 후원과 쇄도하는 작품 요청에, 작품 <아테나 학당>, <교황 레오네의 초상화> 등 명작들의 계속된 작업과 휴식시간을 할애해 진행한 무료강좌 등으로 누적된 피로와 과로로 쓰러진 천재 라파엘로는 보름을 앓다가 다른 세상의 별빛으로 사라지게 된다. 1520년 4월 6일이다.(154)
미켈란젤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최고의 조각을 위해, 특히 과도기 혁명정부의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뜬 채 신의 계시 속에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배제하려는 듯한 전투 전의 다비드를 추구한다. 1501년 1504년에 걸쳐 3년 반 동안 제작된 걸작 <다비드>의 탄생이다.(157)
적지 않은 피렌체 문헌들에서는 미켈란젤로를 '인간말종'이라고 기록했다.(166)
메디치가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천재는 바초 반디넬리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와 여덟 살 차이로 라파엘로와 같은 나이이며 피렌체가 배출한 또 다른 천재이다. (163)
후기 르네상스를 장식하는 예술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바사리는 1511년 7월 30일에 태어나 굴리엘모 공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르조바사리는 코지모 1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미켈란젤로의 주검을 피렌체로 모셔 온다.(347)
메디치가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치밀한 역사구조를 바탕으로 전개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개신교를 지향했던 프랑스와 메디치가문의 교황청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을 손에 땀을 쥐며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