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 배산산책
자유인 조동화는 점심을 먹은후 바깥 기온도 차갑고(영하10도)을씨년스러워 누워서 쉬고 있는데 원홍친구로부터 전화벨이 울리길래 받으니 배산산책하고 오세 하여 OK 신호를 보내여 배산 연주정까지 오르게 되었다.
요몇일 날씨가 추워 운동을 못했는데 원홍친구 덕분에 배산산책 두시간 반 1만오천보하여 천연보약 먹은 거지.
익산의 유일한 산 작은산 배산!
배산이 어떤산이길래 느낌표까지........
조동화의 어머님 정순봉의 뿌리가 연일정씨이며, 어머님께서 옥호동(배산 연일정씨문중회관 옆 인접마을)에서 태어나시었고, 배산은 연일정씨 문중산으로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의 묘역이 있다.
그러거 본게 배산은 조동화와 인연이 깊은산이로구먼.
배산 97m밖에 않되는 산이지만 노송들이 많아 솔향기가 그윽하여 맑은 공기를 머금고 산책하고 집에 오니 피곤함이 싹 가시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낄수 있었으며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아야지요.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니, 덧없고 부질없는 삶의 여로에서 좋은일 많이 많이 하시고,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지요.
2025년 을사년을 맞아 더욱 건강과 행복이 깃드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나이다.
감사와 건강과 행복합시다.
외가집 옥호동마을(연일정씨 문중산 배산인근 마을)
옥창산(옛 철도아파트)아래 동쪽에 자리한 옥호동마을은 어머님의 친정마을이며 나의 외가집 마을이다.
고현초등학교 뒤 옥창산 동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름이다.
옥창산에 명당혈이 있는데 이를 금반옥호(金盤玉壺)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옥호동이라 하였다. 금반옥호란 금으로 만든 쟁반에다 옥을 갈아 만든 병을 받쳐 놓은 형국이란 뜻이다.
배산 연일정씨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타지역으로 많이 떠나 외지인들이 들어와 도시화로 변하고 말았다.
배산 일대는 세종 때에 나라에서 연일정씨(延日鄭氏)에게 내려준 사패지지(賜牌之地)이며, 또한 연일정씨의 세천지지(世阡之地)로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賜牌之地(사패지지)란 나라의 임금이 내려 준 땅을 말하며 가족들이 터를 잡아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자손들의 세거지가 되었다.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도 같은 연일정씨라 마음의 사표로 삼으며 연일정씨 배산문중은 종중에 대한 애착심이 대단하다.
배산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유래
연일 정씨(延日 鄭氏)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이다.
영일 정씨(迎日 鄭氏), 오천 정씨(烏川 鄭氏)라고도 한다.
연일 정씨(迎日 鄭氏)의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이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다고 한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迎日)로 하였다 한다. 본관은 연일(延日)의 옛 지명인 영일(迎日)로 쓰기도 하고, 영일(迎日)의 마을인 오천(烏川)으로 쓰기도 한다.
배산의 비석에는 연일정씨 영일정씨 오천정씨로 혼용하여 비문이 세겨져 있음을 알수 있다.
익산에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인 병조판서 정덕성(鄭德成)이 조선전기 입향한 이후 후손들이 익산시 모현동의 원모인마을과 옥호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배산의 유래와 역사
배산은 익산시 모현동 2가 산10-1 등 약 10만평으로 이루어진 주산, 그리고 약 40만평으로 이루어진 해발 0M ~20M종산으로 이루어져 있다.주산은 해발 97M로서 2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종산은 40여개로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 종산들이 취락지와 밭을 이루고 있다.배산은 바위산이라는 뜻으로 주산이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배산은 옛말에 "바위"를 주로 "바회"라고 했지만 전라·충청·함경도에서는 "바이"라고도 했는데 "바이"가 줄은 말이 "배"다. (예 : 까치배(鵲岩), 검배(玄岩), 칠성배(七星岩), 광대배(竹岩), 도장배=도장바위, 여우배=여우바위, 갓배=갓바위, 부엉배=부엉바위, 송장배=송장바위)고전에서 살펴보면 배산을, 백산(栢山), 척산(尺山), 옥성산(沃城山), 연주산(聯珠山·連珠山), 우락암(于樂岩· 樂岩), 우령대(禹靈臺) 등으로도 일컬었다.백산과 척산은 잣뫼의 한문자 표기로 잣은 성(城)의 순수국어 이며, 뫼는 산(山)이다. 척산의 척도 자(尺)에 사잇소리가 붙은 잣이다.그런 이름이 생긴 것은 본시 배산 밑에 옥야현(沃野縣) 시대의 치소(治所)가 있었고, 배산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성의 산이란 뜻으로 일컬었던 것이고 옥성산도 또한 옥야현 성의 산이라는 뜻이며, 연주산은 배산이 위 아래 두 봉우리로 되어 있어 마치 구슬을 꿰어놓은 듯하므로 본시 한자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령대는 산 위 바위가 우렁이와 비슷하여 생긴 이름일 것이며, 우락암도 그로써 생긴 이름일 것이라고 했다.배산은 00시대에 연일정씨가 나라를 구한 공적이 있어 임금님으로 부터 하사받은 산으로 현재에도 연일정씨 오천공파 배산문중 종산이다.한편 작은 배산 중에서 하부 능선을 따라 동산마을에 이르기 까지는 서씨문중의 종산이다.배산은. 주산이 큰배산과 작은배산 2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2개의 봉우리는 4방으로 봉황이 날개를 편 능선을 가졌으며 봉황의 날개속에 취락지들을 형성하여 서해 바다와 어우러진 지형이다.1912년 이전에 배산에 올라 서면 바로 앞에 펼쳐진 새들이 주인인 섬들과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지평선과 일몰 그리고 거대한 원시 늪 해안가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원시 늪은 일정 때 금강의 끝에 군산 하구둑을 쌓아 바닷물의 유입을 막자 그 순간 풍성한 농지로 변하여 오늘날 만경평야가 탄생하게 되었다.큰배산과 작은배산 사이는 남으로 뻣은 작은 계곡이 흐르며 계곡 선단에 서당을 세워 학문을 보급하였으며 이 계곡의 명칭이 서당골이라 불리고 계곡의 아래에는 일정때 농사에 쓰일 담수호 뚝을 만들어 배산방죽이 생겼다.배산은 해발 97M로 높지는 않으나 만경평야의 유일한 주산에 해당한다.
배산은 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특징들이 있다.
배산은 연일정씨 오천공파 배산문중 종산으로 많은 묘와 지방문화제급 제실이 있다.이 일대는 연일정씨 집성촌으로 선조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온 터라 연일정씨 가족묘 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실 4곳과 열여문 1곳, 정열문 1곳, 시제 제단 1곳이 있으며, 한식일과 추석, 설날에는 조상을 찾은 연일정씨들의 일가 행렬로 배산을 가득 메운다.
큰배산의 정상에는 배산정이 있는데 1910년경 지어졌으나 오래되어서 철거하고 주춧돌과 바닥만 보존하고 있으며, 그 옆에 1979년 다시 연주정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작은배산의 정상에는 1980년 연수정을 세웠다.
배산에는 인공적으로 형성된 4개의 땅굴이 있다.배산이 일정 때 일본군 지휘부 주둔지로 사용되었는데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을 혹사시켜 돌을 케내는 작업으로 지하 땅굴을 만들어 사용하였다.큰배산의 동쪽에는 일본군 지휘부가 주둔하던 2개의 땅굴이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진 100여미터 길이의 땅굴이다. 지금은 땅굴 입구가 무너져 내려 아주 작은 구멍만 남아 들어가기가 힘들며 들어가 보면 일제시대 흔적이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큰배산의 남쪽에는 1개의 땅굴이 있는데 비교적 큰 굴이며 15도 경사지게 돌을 파내에 들어간 땅굴이다. 지금은 이 땅굴이 배산 수맥과 닿아 물로 가득차 있다.작은배산에서 큰배산으로 향한 정상 지점에 조그마한 땅굴을 팠는데 이 땅굴은 경계초소 역할정도 기능을 하였으며.지금은 메워져서 사라졌다.
배산은 연일 정씨 문중의 소유로서 평야지대인 익산에서는 유일하게 봉우리를 가진 산으로서 지금은 공원으로 개발되어 익산 시민들이 많이 찾고 이용하는 산이며 여러종류의 운동기구를 배치하고 산책로를 만들어서 주민들의 운동장소로, 또 휴식공간으로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배산은 토종 소나무 군락지로 이루어진 산으로 삐뚤어진 소나무, 휘어진 소나무, 늘어진 소나무 등, 제 멋대로 생겨서 크지도 않아 목재로 쓸만한 나무 하나 없는 토종 소나무들 입니다. 이 소나무들이 저마다 바위 틈새에 박혀 있으니 가히 신비롭기까지합니다. 또 배산입구엔 많은 벗나무들이 있는데 매년 봄이면 벗꽃이 만개하여 벗꽃축제가 벌어져 익산 시민들의 많은 참여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배산은 97m의 높지않은 산이고 봉우리도 두개밖에 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산이라 부르기 조금 민망한 산이지만 이곳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오랜시간 함께 해온 삶의 터전이고 마음의 휴식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