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불행한가
내가 크게 비뚤어지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외가댁 덕분이었다.
‘저러다가 애 하나 완전히 버리겠다. 차라리 우리가 데려다 키우겠다’ 하고 큰외삼촌이 날 데리러 왔다.
국문과를 나온 큰외삼촌 집엔 책이 아주 많았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읽었다.
내면이 말할 수 없이 불안정했던 그 시절 독서는 황량한 내 마음을 잠시나마 고요하게 해 주던 유일한 안식처였다.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 리> 와 박가당의 <만리종>은 소설 같은 만화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봤다. 독서가 재미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이다. 동화와도 같았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내 또래들의 순수한 사랑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아이반호> 와 <좁은 문> 같은 책은 작가도 모른 채 읽었다.
이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어른들의 애증의 세계를 알아 갔고 초등학교 3,4학년 때에는 이미 애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기도 했다.
중학교 때도 많은 책을 읽었다. 큰외삼촌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거의 독파하다시피 했다. 밤새워 책을 읽는 내가 기특해서 큰외삼촌이 책의 내용을 물으면 나는 소설보다 더 실감나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폭풍의 언덕>이나 <죄와 벌> 같은 소설들을 읽고 나서는 ‘도대체 사는 게 뭐란 말이나’ 라는 의문을 품었다.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거친 파도와도 같았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그때 누가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리라.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해 주었다면 내가 조금 덜 괴로웠을까? 우리들 각자의 삶이 모두 인연 따라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조금 덜 불행했을까?
인생이란 것이 고통의 바다이며 본디 무상하다는 것을 어린 나이의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것도 독서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최희준의 ‘하숙생’이란 노래가 유행했다. 나는 이 노래를 꽤나 부르고 다녔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간다
나는 이 노래가 마치 나를 위해 만든 노래처럼 마음에 사무쳤다. 이리 저리 떠도는 내 인생을 노래한 것 같아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따라 불렀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얼마나 노래를 불러댔는지 외할머니가 “저놈의 자식, 청승맞게 또 저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고 야단을 치셨다.
나중에 보니 이 노래가 기가 막힌 법문이었다.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이랑 두지 말자’는 가사가 ‘집착하지 말라’는 법문과 무엇이 다른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삶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나는 것이며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지는 것이네
뜬구름이란 본래 실체가 없는 것
나고 죽고 오고 감도 그와 같다네
오직 한 물건만은 홀로 뚜렷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고 담연하다네
공수레공수거시인생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생야일편부운기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독유일물상독로
담연불수어생사
배호가 노래한 ‘마지막 잎새’ 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도 나의 애창곡이었다.
노래를 일러 곡조 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그 시절 노랫말들은 심금을 울렸다.
사실 이런 유행가 가사만이 법문이겠는가.
꽃이 붉은 것도 진리요, 버들이 푸른 것도 진리요, 해가 서산에 지는 것도 진리요, 달이 동쪽에 떠오르는 것도 진리다.
‘두두물물이 부처’라고 하듯이 우리 삶이 모두 다 진리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세상에 진리성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절 고통받고 상처 입었던 나의 영혼은 노래를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출처 ; 명진 스님 / 스님은 사춘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