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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2월23일(화)맑음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정진하고 6시에 아침 차려 먹다. 7시에 도향스님과 같이 택시타고 경상대 병원에 진료하다. 건강에 이상 없다. 9시에 LG U+지점에 들러 도향스님은 아이폰을 구입하고 앱을 다운로드 받는데 시간이 걸렸다. 11시 반에 죽향 찻집에서 문아보살이 공양 올리는 점심을 먹다.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안락을 누리며 공양을 받으니 천상의 복락을 누리는 기분이다. 진주성을 산책하며 義妓의기 논개와 山紅이야기를 도향스님께 해드리다.
기억나는 도향스님 말씀: 우리는 법을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른다. 법을 쉽게 여기는 사람에게 법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준 것 같아 무익하다. 진리의 한 게송을 얻어듣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부처님의 전생담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불자는 욕심이 앞서고 눈이 높아 기본을 무시하고 높은 깨달음만 올려다보며 똑 따먹으려 한다. 제 마음은 하나도 바꾸지 아니한 채 불교를 아무리 많이 배운들 무익하다. 바른 견해를 세워야 한다.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 고액의 코스費를 내면 행복하게 해주겠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인도 구루Guru의 가르침이 있다. 이는 마왕의 짓이지, 지혜인의 길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충족시킬 수 없다. 욕심의 뿌리는 무엇인가?
2016년2월24일(수)맑음
오전에 호연거사가 운전하여 사천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다. 내 경우는 치아상태가 양호하여 스케일링만으로 충분하였고, 도향스님은 상태가 나빠 세심한 치료가 필요하였다. 치과 병원장인 初鹿초록보살의 호의로 이루어진 일이다. 점심과 커피를 대접받고 죽향으로 돌아오다. 문아보살이 도향스님께 자비관상에 대한 법을 청하니 스님께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게 하여 법을 말씀하시다. 그리고 문아보살에게 법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과 법을 청하는 제자의 자세에 대해 자상하게 알려주시다. 법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그런 경우에는 법을 설하는 사람이나 법을 듣는 사람에게 이익이 없다. 저녁 공부시간에 일광과 지견스님이 불원천리하고 참석했다. 나는 내가 출가한 인연으로부터 시작하여 불교를 공부해온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더 넓고 큰 법을 지향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해왔기에 도향스님이 전해온 중관의 견해를 들었을 때 ‘바로 이것이구나, 이것이 빠졌기에 나의 불법에 대한 견해가 불완전했구나.’라고 느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래서 도향스님을 모셔와 진주의 법우들께 법을 설해달라고 권하였고, 도향스님이 나의 권청을 받아들였기에 오늘 이 법의 모임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법우들은 모두 법을 들을 귀를 가졌기에 비워진 잔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듯 도향스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도향스님은 ‘歸依귀의’에 대해 설하셨다. 지금 이대로 해온 대로 살면 삼악도로 떨어질 것이 자명한대 거기서 방향을 돌이켜 부처님께로 돌아와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귀의의 세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삼악도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부처님께로 돌아와 의지하는 것과 윤회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부처님께 돌아와 의지하는 것, 그리고 일체중생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부처님께 돌아와 의지하는 것이다. 세 가지의 귀의는 차제가 있어 소장부의 귀의, 중장부(남방상좌부)의 귀의, 대장부(보살승)의 귀의가 그것인데 뒤로 갈수록 수준이 높아진다. 귀의한다는 말로만 귀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견해가 뒷받침된 정도에 따라 귀의의 수준이 깊고 견실해진다. 귀의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어떤 귀의를 하고 있나, 그런 귀의를 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일어나야 한다. 그 외 연화 합장과 법회에서 공손히 질문하는 법 등등 사소한 것까지 일러주시다.
2016년2월25일(목)맑음
아침5시에 일어나 한 시간 정진하고 아침 공양하다. 도향스님 전주로 볼일 보러 가시다. 해제하자마자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까닭에 피곤함을 느낀다. 도향스님을 떠나보낸 후 계속 누워서 쉬다. 점심을 해먹고 쉬다. 관오사 모임에서 발표할 <간화선을 비판하며 바른 수행을 찾다>을 완성하고 수정하다. 날이 벌써 어둑어둑 해진다. 산책을 해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마트에 가서 몇 가지 식료품 사가지고 오다. 아미화보살님께 전화하여 <귀향>을 같이 보자고 하다. 엠비씨네에서 영화보고 죽향에 와서 차 한 잔, 그리고 집으로.
2016년2월26일(금)맑음
죽향 찻집 아침 햇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다. 智湖지호보살 서울서 버스타고 내려오다. 단송거사와 함께 점심 먹고 나서 차를 마시는 사이 부산에서 지호의 친구 분이 오다. 그러는 사이 의성 水淨寺수정사에서 알게 된 唯心유심보살님이 아들과 며느리(전희경), 손녀(서혜림, 혜주)를 데리고 왔다. 아들 中圓중원거사는 진주 평거동에 약국개업을 준비하는 중이라 한다. 경남 고성에서 약국을 하다 성공하여 진주로 이사 온 것이다. 며느리는 남강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모두 불자이다. 즐거이 환담을 나누다 재회를 기약하고 돌아갔다. 지호와 그 친구는 진주 게스트하우스에 일박하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게스트하우스는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했기에 젊은 배낭족이 좋아할 취향이다. 히말라야 아트 갤러리(HAG)를 방문하니 여래심(박정현 대장의 부인)보살이 갤러리에 소장된 네팔문화와 히말라야풍경에 대해 설명해준다. 北京莊북경장에서 박 대장 부부와 지호 손님네와 저녁만찬을 나누다. 죽향에서 밤늦도록 차와 담화를 나누다. 돌아와 카페<마음의 호숫가에서>를 들어가 보니 <진흙속의 연꽃>님이 도향스님이 쓰신 범일스님의 <수트라 여시아독>비판을 인용하여 자기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도향스님의 비판이 연꽃님의 마음에 가닿았다 생각하니 저어기 안심되고 기쁘다. 왜냐고? 불법을 길을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오해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서로 멀어지기보다는 가까워지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필경에 불법의 큰 바다에서 꼭 만나야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중간에 멀어져 제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간다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제각기 흩어져 가는 길의 끝은 어디인가? 일체가 일체와 연결되어있다는 게 불교의 관점인데 어떻게 서로가 흩어져 영원히 별개인 것처럼 한쪽으로 가서 한곳의 외진 곳에 쳐 박힐 것인가? 불법의 광장은 차별이 없이 넓고도 넓으니 모든 견해와 관점이 서로 만나 상통하고 통섭되는 자유공간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보편타당한 진리를 깨달았다는 <정등각samasambuddha>이라 할 것인가? 도향스님에게 문자를 보내 지금 <진흙속의 연꽃> 블로그를 방문하여 글을 읽어보라고 하였다.
2016년2월27일(토)맑음
새벽에 빗소리 들려 몇 번이나 깼더니 고요하게 가라앉은 아침을 맞는다. 6시30분에 진주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가다. 단송거사와 지호와 친구는 토스트를 구워놓고 벌써 아침 식탁을 마련해놓았다. 가져간 사과와 감을 후식으로 깎아먹고 지리산으로 갈까, 남해로 갈까 분별하다가 남해로 향하다. 바다풍경에 눈이 열리고 바닷바람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다랭이 마을을 찾고, 독일마을에 들러다. 독일마을은 꽤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어 다시 와 봐도 될 만하다. 거기서 독일식 점심과 빵을 사먹고 돌아오다. 지호는 서울로 가고 나는 돌아오다. 너무 피곤하여 오후에 낮잠 자고 저녁에 사우나하다.
2016년2월28일(일)맑음
아침 일찍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린다. 아침인사. 오늘 초록보살님과 약속이 있다. 자고나니 온몸이 아프다. 뼈가 아픈 것 같다. 담요가 너무 폭삭해서 그런가, 아직 결제했던 피로가 안 풀린 것인가? 방안이 건조해서 그런가, 어쨌든 피곤하다. 코 밑에 열꽃이 돋으려고 하는 걸 보니 몸이 안 좋다는 신호이다. 평거동에서 초록과 점심 같이 하고 죽향에 들렀다가 집에 오다.
티베트스님들 독경을 들으며 누워있으려니 머리도 아프고, 몸도 쑤신다. 배가 울렁거려서 도라지 차를 뜨겁게 마시다. 감기 초기증세이다. 열손가락 끝을 따고 피를 좀 내니 안정된다.
밤에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z Sosa)의 ‘그라시아스 알 라비다(Gracias a la vida, 인생이여, 고맙습니다)’를 듣고, 카를로스 나카이(Carlso Nakai)의 피리(나바호 인디언의 악기)연주로 ‘대지의 령(Earth Spirit)’를 들으며 보이차를 마시다. 보리심을 염하며 잠이 들다.
2016년2월29일(월)맑음
어제 먹은 점심이 기름져서 그런지 설사가 났다. 과일을 간단히 먹고 아침부터 쉰다.
월요공부시간에 도향스님께서 자신이 번역한 <날마다 하는 기도문>에 대하여 설명하고 매일 독송하는 것을 일과로 삼으라고 했다. 세 가지 귀의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하시고 질의응답이 있었다. 기존에 해왔던 공부 방식하고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되는 거냐는 소암거사의 질문에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불교를 배울 때 바탕부터 다시 점검하면서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라고, 그러다 보면 전에 해오던 공부와 다르지 않아 결국 바른 견해로 통합되게 될 것이라고. 혜정보살님은 저는 니까야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 ‘나는 모든 것을 설했다, 숨겨놓은 법은 없다.’는 것을 믿고 수행해오고 있는데, 도향스님이 지향하는 불교는 금강승이라 제가 어떻게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도향스님 답변: 같은 부처님말씀이라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유파가 있습니다. 설일체유부, 유식학파, 중관학파가 대표적인 견해입니다. 초기불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有部유부에 가깝습니다. 정신물질현상의 극미요소로서 심찰나(khana), 깔라파(kalapa)를 인정하며 궁극의 요소(paramatha勝義)도 실재하는 것을 진리판단의 기준을 삼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견해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하는데 모순점이 발생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所知障소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나타난 것이 유식과 중관입니다. 그런데 나는 초기불교만 해도 충분하니까 다른 것은 안 배우겠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자기가 좋은 것 선택해서 공부하면 그런대로 공덕이 있고 결과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궁극의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불교의 다양한 견해를 모두 섭렵하고 나서 어떤 유파의 견해가 최종적으로 사실에 부합하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그만한 깊은 구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유파의 견해를 모두 배우고 나서 어떤 불교를 택할지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열띤 분위기가 느껴진다. 보정보살님이 예쁜 딸(특수아동교육학과)을 데려왔기에 격려하고 칭찬했다. 회향기도문을 외우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다.
2026년3월1일(화)맑음
점심약속이 있었다. 오동나무집, 개업한지 50여년이란다. 호연거사가 자랑하는 표변호사가 점심을 공양 올린단다. 나와 도향스님, 원정보살이 초대받았다. 점심을 먹고 헤어져 나는 표변호사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오다. 표변호사는 티베트불교문화에 관심이 많다. 밀라레파의 전기와 십만 송도 알고 있고, 카일라스 성산 순례를 동경하고 있다. 도곡역에서 지월거사가 기다리고 있다. 지월거사와 저녁을 먹고 자택으로 돌아오다. 지월거사는 최근에 읽은 신영복 선생의 책 ‘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사의 책장에서 ‘귀곡자(鬼谷子)’라는 책을 빼보니 춘추전국시대의 종횡가로 활약했던 소진과 장의의 스승이었던 분으로 그의 가르침을 번역한 책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귀곡자 스쿨의 수제자였다. 귀곡자에서 제시하는 인간형과 극적으로 들어맞는 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발췌해보다.
1.일을 이루기도 어렵지만 그치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판단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공에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갖추라. 뛰어난 자도 영원히 뛰어나지 않고, 완전히 성공한 인간과 완전히 실패한 인간도 없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고, 위가가 상존하더라도 역전의 기회가 또 있는 것이다.
2.뛰어난 기획을 하고, 많은 준비를 하고, 빈틈없이 실천을 한다고 해도 실패할 수 있다. 내가 모든 상황을 조정할 수 없다. 그러니 실패를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작은 실패를 모아서 성공을 이루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반명 작은 성공 후에 큰 실패를 부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애석하다, 귀곡자여, 그대는 패도정치를 논하고 있구나. 그것은 아수라의 도이지, 해탈의 도가 아니다. 보살은 자신의 성공과 안락을 타인의 실패와 고통과 바꾸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보살의 실천 37법에 나오는 수행을 귀곡자가 들었으면 아마 기절초풍했으리라. 세상에 이런 사람도 다 있구나, 적이 승리하기를 빌고, 원수가 행복해지길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그런데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뛰어넘은 대장부가 아니랴! 대장부가 바로 대승보살이다.
“모든 고통과 안락은 자신의 안락 원하는 데서 생겼고
완전한 부처님 남 위하는 마음에서 나섰다
그렇기에 내 안락과 남의 고통들
여실히 바꾸는 것이 보살의 실천이네.”
2016년3월2일(수)맑음
민족사에서 주최한 기자 간담회가 인사동에 있는 음식점 ‘지리산’에서 있었다. 내가 쓴 책 ‘붓다 프로젝트’의 출판에 즈음한 기자 간담회이다. 불교계의 언론매체 기자들이 예닐곱 분 참석했다. 봉선사 명고 스님도 자리를 같이 했다. 미리 나누어준 보도 자료를 보고 몇몇 기자가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다. 대불련 동문회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아마도 대불련 모임에 나가 법문을 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그런대로 내가 피력하고 싶었던 의견은 자신 있게 개진하였다고 생각한다. 남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진주 내려오다. 죽향에 들리니 도향스님의 수요 강의가 진행 중이다. 예배드리고 경청하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 귀중한 기회를 가벼이 여겨 낭비하지 말라. 얼마나 힘들게 얻은 인간의 몸인데 이 한생 그냥 흘려보내려느냐? 다음에 어떠한 생을 받을지 기약할 수 없거늘 어찌 보리심을 발하지 아니하고 엄벙덤벙 살아가리? 인간의 몸을 얻어 부처님 법 만났으니 과거 생에 얼마나 선업을 지었길래 이런 경사를 만났는가? 자기 스스로를 칭찬해주라. 그리고 선업을 짓고, 그 공덕을 보리로 회향하라. 청법 대중은 감동하며 경청하였다. 일광과 지견스님은 강의를 듣기 위해 산청에서 달려왔으니 법에 대한 신심을 알 수 있다.
2016년3월3일(목)맑음
오전에 일광스님이 운전하여 사천치과로 진료 받으러갔다. 도향스님의 치아진료는 완료되었고, 일광스님은 좀 더 기다렸다가 적당한 때 다시 치료하기로 하였다. 마침 도암거사가 오늘 임플란트 시술을 완성하는 날이라 아미화 보살님과 함께 왔다. 모든 일이 정리되자 점심을 함께 하다. 죽향으로 돌아오니 민족사에서 보낸 책 120권이 와있다. 책을 보낼 곳이 여러 군데라 우체국에 가서 소포와 등기로 20권정도 보냈다. 카나다의 Sherry에게도 보내다. 정안보살님과 진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어떤 식으로 할까 상의하다. 아주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다. 밤에 비 소리 들리다.
첫댓글 "도향스님의 비판이 연꽃님의 마음에 가닿았다 생각하니 저어기 안심되고 기쁘다. 왜냐고? 불법을 길을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오해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서로 멀어지기보다는 가까워지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필경에 불법의 큰 바다에서 꼭 만나야하기 때문에."
필명이 나와 깜짝놀랐습니다. 수행일기에 필명이 들어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두 종류의 니까야 번역비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재성박사의 단권으로 된 통합본 상윳따니까야에 필명이 머리말에 언급 되었더군요. 오역을 인정하고 바로 잡았다는 내용 입니다. 전재성님도 보통불자의 글을 보고있었다는 얘기 겠죠..
도향스님 글에 공감했습니다. 그런 사실은 김성철교수의 중론강좌를 유튜브에서 들었기 때문 입니다. 흔히 본래 없는 것이라 하여 생사즉열반 번뇌즉보리를 말하지만 이는 공견에 빠졌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에 김성철교수는 중론은 사상이 아니라 테크닉에 불과하다고 했고책장을 덮으면 깨끗이 잊어 버려라 했습니다. 중관학의 권위자 말에 공감했습니다.
그런 김성철 교수를 만나 보았습니다. 우연하게 이학종기자 모친상 때 입니다. 1월말 서울대학교장례식장에서 입니다. 평소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레 제가 먼저 아는 체했죠. 김교수도 필명을 알고 있더군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고합니다.
도향스님의 비판은 추상과도같습니다.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지적은 당연한 것 입니다. 누구나 비판 할 수 있습니디. 그러나 비난이나 비방을해서는 안되겠죠.
"초기불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有部유부에 가깝습니다. 정신물질현상의 극미요소로서 심찰나(khana), 깔라파(kalapa)를 인정하며 궁극의 요소(paramatha勝義)도 실재하는 것을 진리판단의 기준을 삼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견해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하는데 모순점이 발생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所知障소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나타난 것이 유식과 중관입니다."
소지장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 보니 " 소지장(所知障)은 법집(法執)으로 인해 생겨나는 번뇌로 보리(菩提)의 발현을 장애하는 번뇌이다."라 되어 있습니다.
초기불교를 '아공법유'개념으로 파악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출현한 이유중의 하나로서 부파불교의 폐해를 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설일체유부를 들 수 있습니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유론'을 말합니다. 75법이라하여 마치 원소와같은 법이 실재하다고 봅니다. 이를 영화 필름처럼 항상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테라와다에서는 궁극적실재(빠라맛따담마)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조건에 따라 생멸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공법공 입니다.
그럼에도 도원스님이 초기불교에 대하여 아공법공이라고 싸잡아서 말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아공법유는 설일체유부에 해당됩니다.
용수의 중론도 유부의 유론을 부수기 위해서 설핸진 것이라 합니다. 그때 당시 유부가 최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대승은 초기단계에있었기 때문에 유부를 잡기 위해 공의 논리로 부순 것이라 합니다. 유식은 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론이후 나온 것이라 합니다.
내가 아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진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한다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