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바닷가에서 자란 야생화는 순비기나무와 대나물 그리고 갯메꽃이다. 순비기나무와 대나무는 바위틈에 자라고 갯메꽃은 모래밭에서 자란다. 바닷가 야트막한 산에선 백합과 노랑 원추리 꽃이 핀다. 뱃사람과 섬사람들을 오고 가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다. 바닷가 언덕과 작은 섬들의 땅은 천박하다. 빗물이 혹시 머물다 갈 수가 없다. 오자마자 흘러버린다. 우리의 인연도 옷깃을 단정하게 차릴 시간이 없다. 방금 지나버린 시간도 잡을 수 없어 아쉽다. 순간순간 정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린 날에는 좋아하는 이에게 껌 하나 줄려고 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했다. 피가 맑고 깨끗하여 떨리는 순간만이 존재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자체가 꽃이었으니 꽃을 찾으러 갈 필요가 없다. 스무 살 시절은 날마다 새로운 감동이 일어난다. 이제 나이가 든 나에게 그런 감동이 있는가가 의심스럽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다 알 수는 없지만 항상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주고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난다. 물론 천성도 좋았겠지만 인내와 배려가 있었다. 어찌 보면 사람도 물질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것도 쌓이다 보면 정신과 마음이 되더라. 오늘 마주친 이는 웃음이 가득한 표정만으로 충만한 하루가 된다. 모래밭에서 억세게 뿌리로 번식한 멧꽃은 얼굴 하나만 맑고 부드럽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꽃잎은 흔들린다. 그것을 바라본 이에게도 그 떨림이 전해올까. 자그마한 안개비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세한 떨림이 있을 것이다. 떨리는 순간은 아직 살만한 시기다. 저 멀리 수평선은 서로 맞닿아 있지만 분명 떨어져 있다. 어느 정도 간격이 있어야 떨림이 있고 감동이 있다. 아름다움은 경계 선상에 있다. 바닷가 바위틈에서 해국이 산다. 천성적으로 강인함 때문에 바위 위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새벽 아침에 바위에서 생긴 이슬로만 산다.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기 전 가장 깨끗한 이슬로 세수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묵상의 기도다. 석죽과 대나물은 잎이 대나무 잎을 닮았고 마디가 대나무처럼 부풀어 올라온다. 여기에서 가지가 나아 꽃을 피운다. 이른바 바위 위에 대나무다. 몇 천년 변하지 않는 바위도 생명을 끌어안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인내와 고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삶의 참모습일 것 같다. 바위에 잠깐 스쳐 지나갈 인연을 가장 아름답게 피었다. 삶의 흔적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서만 존재한다. 무심히 지나가다가 아주 작은 떨림이 있다면 오늘 행복하겠다. 보이는 순간 아주 작은 미소가 있다. 온 몸이 꽃이 되게끔 떨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