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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지금의 티르키에 중부 지역)에 거주하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말한다.
<갈라디아>란 용어는 본래 프랑스 남부지역에 거주하던 고올(Gaul)이란 큰 종족이 아시아로 이주해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입니다(주전 278-277년경).
주전 232년 이후 그들의 경계가 고정되고 그들의 나라가 <갈라디아>로 명명되었습니다.
약 200년간 갈라디아라는 나라를 유지하다가 주전 25년에 갈라디아는 로마제국에 합병되어 갈라디아는 로마의 주(州)가 되었다.
고로, <갈라디아>? 지리적으로는 고올족이 살던 소아시아의 중앙 고원 북부 지역을 의미
2) 정치적으로는 광범위한 로마제국의 행정 구역을 의미.
갈라디아 지역에 분포했던 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개척한 것으로 추측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갈라디아는 도시명이 아니라 지역 이름이다.
사도행전의 주된 내용은 바울의 선교여행 보고서이다.
사도행전 13-14장에 소개된 도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가 갈라디아 지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언급한 갈라디아에 거주하는 성도들이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 거주하며,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다녔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 바울이 왜 이 지역에 거주 중인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가?(갈 1:1-2)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성도들이 다른 복음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6-9)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노라"(6)
"이상히 여긴다"? 영어번역본) "충격받았다" "깜짝 놀랐다"
부모님이 자녀를 나무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 착한 아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 엄마가 깜짝 놀랐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나오는 표현이다.
상식밖의 행동을 목격한 후에 내뱉는 말이다.
지금 사도바울이 상식밖에 행동을 한 자녀를 나무라는 부모의 심정으로 갈라디아 지역 성도들을 나무라고 있다.
지금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목회생활 하다 보면 이런 사연들을 목격한다.
반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그냥 집에서 놀고 있는 청년들이나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다가 이단에 현혹되어 가정을 버리고 가출하는 권사님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오늘 설교의 주제가 바로 <다른 복음>이다.
다음주일은 대한예수교 장로교 총회 통합 측 교단이 지정한 이단경계주일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다른 복음>에 관한 몇 가지 진실을 말하려 한다.
1.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6)
6절에서 사도바울은 부르신 이를 떠났다는 사실과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라고 강조한다.
6절을 다시 한번 읽자.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 중에 많은 이들이 다른 복음을 따르므로 자신들을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여기에서 떠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이탈한다"는 의미이다.
군인이 부대에서 무단으로 이탈할 때 쓰는 용어가 있다. "탈영"
탈영에는 무거운 징벌이 따른다.
지금 사도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것은 군인이 탈영하는 행위와 견줄만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군사로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에 대해서 탈영하는 것입니다.
탈영은 충성의 대상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갈라디아 지역 성도들은 다른 복음을 따르므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배신했다.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출석하는 일부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렇게 책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성도들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면서도 하나님을 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복음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미준교회가 선포하는 복음 외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을 따른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2. 다른 복음이란? 변질된 복음을 가리킨다(7)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공동번역본)
변질? "성질이나 물질이 변하거나 달라진 상태"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단어이다.
"오래된 음식이 변질되었다"라고 말할 때 "변질"은 음식이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이때 변질은? 음식 맛이 더 좋아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변질은 부정적인 쪽으로 변했다는 의미이다.
다른 복음이란? 변질된 복음을 말한다. 한마디로 부패된 복음이다.
음식이 부패되면 유해한 세균이 발생한다. 유해한 세균은 우리 건강을 해친다.
마찬가지다. 변질된 복음은 우리들의 영적인 건강을 해치는 복음이다.
이단이 그렇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처음에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극성을 부리는 이단들의 교주들 대부분이 정통 교회 출신들이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할 때 한자어로 "다를 이" "끝 단"이다.
처음에는 같았는데 끝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정통교회의 교리를 사용하다가 끝에 가서 정통교회와는 다른 교리를 사용했다는 의미이다.
이단은 변질된 복음을 선포한다.
그럼 왜 이렇게 변질되는가?(10)
사람들의 지지와 호감을 얻으려다가 변질된다.
종종 말씀 전하는 행위를 음식 조리하는 행위에 비유하는 분들이 있다.
말씀을 전하는 것과 음식을 조리하는 행위에는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
가끔 보도매체에서 식중독 사고를 다룬다.
이런 식중독 사고는 조리 전단계, 조리되는 과정, 조리된 후 보관단계에서 주로 음식이 부패해서 생긴다.
소량 급식과 대량 급식 중 어느 급식에서 주로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는가?
가정에서 식중독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가? 아니면 일반 식당에서 식중독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가?
주로 대량급식 시에 식중독사고가 발생한다.
대형 식당이나 학교 급식에서 식중독사고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부패된 복음이 선포될 확률은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중 어디가 더 높은가? 큰 교회이다.
그렇다고 모든 큰 교회에서 부패된 복음이 선포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대부분의 대형교회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복음이 선포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집밥을 조리하는 과정에서는 식중독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가족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고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조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변질된 복음은 식중독 사고를 일으키고 급기야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먹는 집밥이 우리 건강을 유지한다.
집밥 조리과정에서는 식중독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저는 우리 미준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집밥이라고 굳게 믿는다.
3.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8-9)
8-9절 두 구절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1) "전한 복음"(8) "받은 것"(9)
시제가 과거형이다.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언급한다.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8) "받은 것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다"(9)
진짜 복음은 이미 과거에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미 받은 복음이 진짜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과거에 받아들인 복음은 완성된 복음, 결코 부족한 복음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과거에 이들이 완전한 복음을 받았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더 이상 다른 복음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다. 복음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다.
기독교 복음은 결코 시대마다 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복음의 유일성과 확정성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은 사도 바울 자신이라도 변경할 수 없고 하늘로부터 온 어떤 천사라도 변경할 수 없는 성격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하물며 오늘날 누가 감히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을 변경시킬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 내용을 변경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이단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변경시키고 지금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경시키고 있다.
그러면 그 복음은 지금 어디에서 확인되며 확증될 수 있는가?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확인되며 확증될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신약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제시되어 있고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복음은 사도 바울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며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복음이다.
갈라디아 성도들 모두는 이미 진짜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다.
지금 우리가 가진 복음은 진짜 복음이다. 성경말씀에 기반된 복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다른 복음이 필요 없다.
2)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는 말씀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죄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각대로 임의로 변경시키는 것은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매우 악한 일이며 사탄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들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그의 일을 방해하고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일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사탄의 방해 때문에 죄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이단과 사이비들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은 없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변경하고 왜곡시키고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은 그들로 구원받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들을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저주받을 큰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이단경계주일을 한 주 앞두고 오늘 이 시간에 다른 복음에 대해 묵상했다.
지금 우리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모든 종교를 동등한 선상에 두고 상호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더 나아가 서로의 주장과 가치까지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모든 종교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석가탄신일에 성당에서 사찰로 축전을 보내고, 성탄절이면 사찰이 성당에 축하메시지를 보낸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이런 현상을 아주 바람직한 현상처럼 보도한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오늘 성경에서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말한다.
복음은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도 하나인 것이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들을 대신하여 이들의 죄를 짊어진 사실을 말한다(4)
성경에 소개된 말씀만 복음이다.
1+1=2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1+1이 경우에 따라 2도 되고 3도 되는가? 아니다.
진리는 예수님 한 분뿐이다.
그래서 그분이 증거 하신 말씀만 복음이다.
그 복음을 우리가 이미 받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복음은 필요 없다. 이미 받은 복음을 잘 간직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