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을씨년스런 날씨에 겨울을 방불케 하는 날씨가 이어지더니
김정묵 선생님과의 15년 만에 해후를 축복이나 해 주는 듯
오늘은 정형적인 가을 날씨가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김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김 선생님은 풍기북부국민학교 발령 때 우리 큰딸이 4학년 둘째 딸이 2학년이었다.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정 평온하고 행복했던 황금기였다.
엄마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원 없이 해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때가 김 선생님과의 인연이 되었다.
우리가 서울 살다가 단양으로 내려와 펜션을 하고 있을 때
시보네님과 솔바람, 이경진, 명성왕후 한창 풍우회 카페에서 중추적인 인물로 활발하게 활동 할 때
하룻밤을 자고 갔을 때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문득문득 찐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이튿날!
김 선생님과 합류해 아침에 우리 거실에서 소백산을 바라보며 바른자세로 손을 앞으로 모우고
"선구자"를 성악가 못지않게 불렀던 때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런데 오늘 우리 집에 소고기를 사가지고 방문한다고 하니 새벽부터 분주해진다.
텃밭에 배추를 뽑아 겉저리를 만들고 고기와 먹을 밑반찬을 준비한다.
며칠 전에 남편의 막역지우 친구가 보낸 누룽지 쌀로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준비한다.
약속시간 조금 지난 뒤 고기를 사느라 늦었다고 조금 지체한 뒤에 온다.
홍인숙 가수 영남 일대의 최고의 가수라면서 겸손한 가수로 칭찬이 침이 마른다.
또 한분은 홍인숙 가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메니저 역할을 하시는 분이다.
김선생님은 소고기를 눈치보면서 먹지않을 만큼 넉넉하게 사왔다.
초면인 홍인숙 가수는 고급 와인과 물티슈 한 박스를 메니저분은 비싼 고급 빵을 한보따리 사왔다.
처음 방문하는 집에 과한 선물을 가지고 와서 김선생님에게도 그분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김선생님 능력이 대단하다고 농담을 했다.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할배가 어찌 저런 젊은 여자들과 동행할 수 있겠냐고
음악이 좋긴 하다고 우수개 소리를 했다.
사실이 그랬다...ㅎㅎ
15년 만에 만난 우리들은 비록 얼굴에 연륜의 골이 져 있어도 마음은 아직 젊었을 적에 그대로다.
같이 오신 분들은 초면이지만 어찌 구면처럼 편안하고 낯설지 않다.
두 분은 손님이 아닌 친구처럼 점심준비를 도와준다.
김선생님도 청소해놓은 야외 바베큐장에 금새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주고
참 훈훈한 풍경이다.
전자 오르간을 설치 해놓고 작은 음악회를 연다는 형식으로 많은 대중이 모인처럼 정석으로 인사말을 한다.
공식적인 것 같은 이런 모임은 처음이다.
잠시만 봐도 김선생님은 정도를 걸으면서 활동적이고 젊은 사람을 능가하는
열정과 음악으로 승리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잠시 숯불을 피워놓고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작은 음악회를 빛내기 위해 김선생님이 3곡의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는 변하지도 않고 예전 그대로다.
능숙하게 전자 오르간을 치면서 '별빛 같은 사랑'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얼마나 심금을 울도록 잘 부르는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음악회는 홍인숙 가수가 가수로 알려진 성공한 노래 "부석사의 밤"을 부르는데
가창력이 명가수다.
김선생님과 송인숙 가수가 제목은 잘 생각이 안나지만 달콤한 듀엣으로 부른다.
김정묵 선생님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우리를 위로해준다고
마지막 한곡을 부르면서 작은 음악회를 마무리한다.
이제는 들어도 제목이 입력이 안되지만 달콤한 음률이
우리의 마음을 행복으로 가득하게 해주는 듣는 감성은 아직도 살아있다.
오래 만에 만난 김선생님 할 말도 많고 그간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3시 넘어서 금쪽같은 손자가 치과에 예약이 있어 가야 된다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떠난 그 자리
오래도록 우리 부부의 가슴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예절바른 김선생님이지만 후배님이니까 경어는 생략하고 편하게 표현했습니다.
노래 제목이 일일이 입력이 안 되어 그것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