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이 온 하늘 가득 잔치를 벌이고 있는 광경을 바라본다면 아마 그의 시는 달라졌을 것이다. 시린 밤하늘, 우수수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은 금빛`은빛가루를 뿌려놓은 듯 화려하기 때문이다.
경북 영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두운 도시’지만,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낭만의 도시이기도 하다. 시(詩)가 있고 별이 있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누구나 로맨티시스트가 될 수 있다.
◆별빛이 내린다
오후 5시를 넘어서면서 영양 수비면 일대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진데다, 워낙 산이 높은 지역이다 보니 해도 일찍 진다. 본격적인 ‘쇼타임’을 앞둔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어스름이 짙어지자 이게 뭐라고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기 시작한다. ‘과연 며칠 동안 일기예보를 들여다봐 가며 몇 번 여행 일정을 바꾼 보람이 있을까.’ 오후부터 하늘에 드리우기 시작한 옅은 구름층이 못내 신경쓰였지만 하는 수 없다. 이제부터는 신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완전한 밤이 내렸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내려서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탄성이 올라왔다. “아아~” 하는 경탄 외에는 생각조차 순간 정지해버렸다. 촘촘히 빛나는 무수히 많은 별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압도감이다.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남쪽 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하늘을 긋는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잠시 후 가로등 불빛까지 완전히 꺼지자 하늘은 또 다른 ‘빛깔’을 드러냈다. 별의 숫자는 몇 배 더 많아져 반짝이는 모래사장 같은 하늘 한가운데 우윳빛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은하수다. 차가운 늦가을 공기 속 별들은 더욱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에서 맨눈으로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도시에서는 목이 빠져라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쳐다봐도 밝게 빛나는 별 몇 개를 찾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영양에서는 굳이 별을 헬 필요가 없다. 영양 출신의 시인 조지훈이 ‘꿈이야기’라는 시에서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고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는 영양은 접근이 쉽지 않다. 지금까지도 접근 가능한 고속도로는 고사하고 4차로나 철로도 놓이지 않은 국내 유일한 지역이다, 일월산, 통고산, 백암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내륙지방으로 1,000m가 넘는 태백산맥을 넘어야 영양 땅에 닿을 수 있다. 덕분에 이곳은 ‘별’을 얻었다. 빛의 공해, 즉 광해(光害)가 전혀 없는 청정 지역으로 지난 2015년 10월 국제밤하늘협회(IDA)로부터 아시아 최초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차가운 공기 속 깨끗하게 빛나는 별
원래 영양 반딧불이천문대의 야간 운영시간은 오후 7시 30분부터 8시까지 30분이다. 탐방객들에게 망원경을 통해 천체관측의 기회를 제공하고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도 들려준다. 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 취재진 외에는 탐방객이 아무도 없어 조금 이른 시간 개인 특강의 영예를 안았다.
자연생태공원관리사업소 직원의 레이저 빔이 밤하늘을 가르자, 별빛 바다 화폭에 그림이 그려진다. 이곳 직원 김경호 씨는 “원래 은하수는 여름철에 관측하기 쉽지만, 이른 시간이다 보니 은하수가 하늘 한가운데 놓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하수를 한가운데 두고 좌우로 견우 직녀성이 밝게 빛나고, 십자가 모양의 백조자리도 보인다. W 혹은 숫자 3 모양의 카시오페이아자리와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한가운데 북극성도 눈에 들어온다. 밤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보니 늦가을, 겨울철 별자리는 아직 산 뒤에 숨어 있다는 설명이다. 겨울철 별자리에는 오리온자리와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토끼자리, 에리다누스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외뿔소자리, 마차부자리, 게자리 등이 속해 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여름철에 별 관측에 나서지만, 사진작가들이 최고의 별사진을 건지는 것은 겨울철이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별은 유난히 빛난다. 건조한 대기가 하늘을 유리처럼 더 선명하게 표현해주는 데다 땅과 대기의 기온차로 발생하는 ‘산란 현상’은 별을 더 반짝이게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관측할 수 있는 15개의 일등성 중 7개가 이맘때 몰려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추위를 견딜 방한복을 든든히 챙기고 밤하늘 우주쇼를 관람해야만 하는 이유다.
‘반딧불이’천문대라는 명칭처럼 이곳에서는 반딧불이도 관찰할 수 있지만 그 시기는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 그리고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 정도로 한정돼 있다.
◆문학기행 즐길 수 있는 두들마을
영양의 밤 최고의 볼거리가 ‘별’이라면, 낮에는 낙엽을 밟으며 낭만적 ‘문학기행’을 즐길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 문향(文鄕)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제법 이름난 문인들이 태어나고 자란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 중 백미는 ‘두들마을’이다. ‘두들’은 둔덕의 순우리말로,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국문학의 거장 이문열의 고향이며, ‘음식디미방’의 저자이자 여중군자라 칭송받았던 장계향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기품 넘치는 한옥의 우아한 곡선이 파아란 늦가을 하늘로 솟아오른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벽에는 한 해를 힘겹게 살아낸 담쟁이들이 발갛게 마지막 힘을 불태우며 붙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인 이곳은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뤘다. 현재도 석계고택을 비롯해 주곡고택, 석간고택, 유우당 등 30여 채의 한옥을 만날 수 있다.
음식디미방 체험관과 교육관을 시작으로 돌담길 예쁜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다 보면 마지막 ‘두들책사랑’이라는 예쁜 문패에, 마당 한쪽에는 빨간 느린우체통이 놓인 집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는 으리으리한 규모의 한옥 한 채가 서 있지만 누구의 집인지 알아볼 길 없이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책의 온기와 향기가 넘치는 ‘두들책사랑’은 책과 함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사랑방이다. 얼핏 카페 같기도 하지만 오해다. 먼 길을 달려 두들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의 성화에 간단히 원두커피만 판매하고 있다.
이곳 책사랑방 운영자에게 물었더니 바로 옆 큰 한옥이 바로 이문열 작가가 거처하는 ‘광산문학연구소’라고 했다. 굳이 문패를 달지 않았기 때문에 관광객은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이 작가는 틈만 나면 두들마을에 머물며 글을 쓰고, 후배 소설가들에게 집필공간을 내준다. 두들마을은 그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그가 잠시 살았던 곳이자 문학의 바탕을 둔 곳이다. 2001년 그는 결국 이곳에 돌아와 ‘광산문우’(광산문학연구소 건물에 쓰인 현판)라 이름 지었다.
그외에도 영양군에는 오일도 시인의 생가와 시공원, 시인쉼터, 문학테마공원이 있는 ‘감천마을’을 비롯해, ‘승무’로 유명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 생가인 호은종택과 월록서당, 지훈문학관, 전통한옥마을로 지정된 ‘주실마을’이 있다. 영양전통시장에서 시작해서 주실마을로 끝나는 13.7㎞에 이르는 ‘조지훈문학길’을 걸어봐도 좋다. 총거리 200㎞에 이르는 장거리 걷기 여행길인 영양 ‘외씨버선길’의 여섯 번째 길로, 조지훈 시인의 삶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감성의 길이다. 코끝을 파고드는 바람이 조금 시리지만, 깊어가는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또 영양과 지척에 있는 청송 진보면에는 김주영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어 함께 돌아보면 더욱 좋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김주영문학관에는 대하소설 ‘객주’를 중심으로 그의 문학 인생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