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으로만 여기면 안 되는 사랑 (살전5:12-18)
2026.7.5, 맥추감사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 2026년도 맥추감사주일이다. 구약에서 맥추감사절은 본래는 밀이나 보리의 첫 열매를 수확한 것을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현대에는 한 해의 전반기를 지켜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했다(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까지도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범사에 감사해야할 이유는 우리의 범사가 하나님의 손아래 있고, 그 하나님이 나의 범사에 주인이신 것과 그분의 성품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되도 주가 인도하신 것 감사 모든 것 감사”,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일에 감사 모든 순간에 감사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라고 찬양한다.
정말 그렇다. 중환자실에 가보면, 환우들이 숨을 쌕쌕 거릴 때마다 모니터에 그래프와 숫자가 변하는 것을 본다. 그 모습을 보면, 지금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토록 중요한 감사를 쉽게 잊을까? 심리학자들은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호의를 권리로 인식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진심어린 호의는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의 이름일 수 있다. 사람의 뇌는 누군가로부터 호의나 사랑을 받으면, 처음에는 "우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감동한다.
그러다가 그 호의가 여러 번 반복되면, '저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다'는 생각의 데이터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저 사람은 원래 나에게 그래야 하는 사람" 또는 "내가 저 사람에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뇌 속의 인식이 바뀐다. 그래서 상대방의 선의를 '그 사람의 의무'나 '나의 당연한 권리'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마음의 빚을 탕감해 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반복되던 호의가 끊기면,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느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당신이 변했다’고 비난하면서 적대감을 드러내는 심리가 발동한다. 이러한 심리를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한다.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인간의 한계이자 근성이다.
그런데 이처럼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는 모습들이 놀랍게도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종종 나타난다. 가족(특히 부부와 부모)과 성도들과 하나님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나의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맥추감사주일 설교말씀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점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고자 한다.
1. 가족의 사랑
당연시 여기면 안 되는 감사의 조건들 가운데 첫 번째는 가족의 사랑이다. 가족 사이의 사랑을 당연한 권리로만 여기면 감사를 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가족을 상실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들의 존재와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부부 사이는 더욱 그렇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배우자를 먼저 보냈을 때, 가장 많이 아파하는 1순위는 분노나 절망이 아니라, 깊은 상실감에서 비롯되는 극심한 공허함과 당연시했던 배우자의 헌신을 복기할 때 찾아오는 ‘회한의 정서’라는 것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조금 더 자주 건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배우자가 곁에 있을 때 그의 헌신과 배려에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에 대한 회한으로 괴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다(벧전3:1-7).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7)
그러므로 가족의 존재와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나의 권리처럼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히 여기자.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2. 성도들의 사랑
두 번째로 당연시 여기면 안 되는 감사의 조건은 성도들의 사랑이다. 교회 성도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며, 식구이다. 이들이 내 곁에 있음을 감사하라. "70살 넘으면 알게 되는 친구 사이에 비참해지는 순간“이라는 설문 조사에서 1위는 그동안 진심인 줄 알았던 관계가 ‘계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익어갈수록 중요한 것은 ‘많은 친구’가 아니라,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계는 단지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지막 까지 심지어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 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가족과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성도들이다. 본 설교자는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임종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고, 장례식들을 집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들 중의 하나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이르고, 장례식의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은 가족과 성도들이였다. 많은 경우에 평상시 친하다는 술친구나 지인들은 대부분 중간에 어디로 다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어차피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상이나 작은 성의 표시조차 하지 않는 무정(無情)을 넘어서 무자비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주 안에서 한 가족 된 성도들은 끝까지 영원토록 함께 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라는 말씀을 하면서 이렇게 권면했다(살전5:12-18).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 5:12-18)
그러므로 목회자와 성도들의 사랑과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면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이 된 지체들이라고 인식하고, 더욱 감사하며 서로 귀한 줄 여기자.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3. 하나님의 사랑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사랑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의 클라이맥스 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랑과 은혜를 당연히 여기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당연시 여길만한 자격이나 권리가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의롭지 못한 자들이었으며, 죄 값으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던 자들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을 받을 만한 자격은 더더군다나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구해내셨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은혜이다. 바로 이 점을 망각하면 사람이 방자해 진다.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이러한 초심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그래서 순교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그러므로 이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성도들의 사랑 그리고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자. 이러한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욱 힘써 서로 사랑하고, 서로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간증하는 삶을 살자. 그래서 올 해 남은 후반기에도 승리하는 삶을 살자. 이것이 맥추감사주일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