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히7:11-28)
히브리서는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율법의 핵심은 성전제도이다.
성전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제사장제도이다.
이러한 제사장 직분이 바뀐다면 율법도 변혁되어야 한다(히7:12).
그것은 율법은 제사장을 통한 성전제사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은 제사장제도를 규정하고 제사장은 성전제사를 담당한다.
이러한 제사장을 위하여 명한 것이 십일조 제도이다.
여호와께서는 성전제사를 위하여 레위 지파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우신다.
그런데 종말에는 레위 지파 제사장이 아니라 유다 지파 출신 제사장이 세움을 받게 된다.
그러면 모세율법이 폐하여지고 변혁됨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히7:14-15).
율법이 변혁되면 성전제사와 이를 위한 제사장제도,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 제도가 폐함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율법의 핵심은 성전제사이고
성전제사는 레위 계통 제사장만의 직무이며
이들을 위한 규례가 십일조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말에는 레위 계통 제사장이 사라졌는데 십일조 제도가 필요하겠는가?
레위지파 제사장으로는 온전함을 얻지 못함
왜 종말에 하나님께서 레위 계통 제사장을 폐하셨는가?
레위계통 제사장을 통한 제사는 무익하기 때문이다.
레위 계통 제사장이 드리는 성전제사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히10:4,11)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7:16-19, 10:1).
율법은 죄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시행된 통치질서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와 동거함에는 여러 제약과 한계가 있다.
율법 아래에서는 아무 때나 누구든지 휘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는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더라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시대에서는 죄의 장벽이 항상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머문 곳은 휘장 밖이었다.
이는 그들이 죄 아래에 세워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휘장으로 가리신 하나님만을 알고 섬겼다.
이 말은 옛 백성과 이스라엘 모두는 종(머슴)이라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처럼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통해서 온전함을 얻을 수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제사장을 세우실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한다(히7:11).
그래서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이 폐하고 멜기세덱 반차를 좇는 새로운 제사장이 세워지게 된다.
이처럼 제사장직이 바뀌면 율법도 변혁되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편 110편을 인용하여 아들이 대제사장과 왕임을 설명함
시편 110편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라고 말한다(시110:1).
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라고 언급한다(시110:4).
이 두 구절을 인용하여
히브리서는 기존의 레위 계열 제사장과는 다른 유다 지파 출신 제사장을 소개한다.
그는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 예수이시다.
어떻게 예수께서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아들 중에서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을 세우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시110:4).
다윗은 제사장이면서 왕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중에서 참되고 온전한 제사장과 왕으로 세우시리라고 약속한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따라
예수께서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며 종말의 하나님 나라 왕으로 세워졌음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심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세상에 속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겼다(히9:1).
이처럼 세상에 속한 성소에서 봉사함은
레위 계통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가 아래로부터 나서 땅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옛 백성과 이스라엘이 세상에 속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세상에 속한 성소에서 휘장으로 가리고 계셨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생명의 능력을 좇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히7:16).
이러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예수께서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인 모세율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히7:16).
왜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세상에 속한 성소에 계셨는가(히9:1).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이다(창17:7).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하신 언약 때문이다.
이는 언약 당사자인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거주지가 가나안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에 하나님의 처소는 하늘의 성소이다.
그래서 종말에서는 믿는 자들을 하늘의 성소로 들이신다.
하늘의 성소는 대제사장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들어가서 거하는 처소이다.
이는 제사장이 거하는 곳은 그에게 속한 백성들의 처소이기 때문이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들어간 예루살렘 성소는 이스라엘이 위치한 곳이고
예수께서 들어가신 하늘은 우리가 세워진 자리이다.
따라서 아들을 굳게 붙들어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는다.
이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교제하는 영생을 누린다는 말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새 제사장을 세우시는가?
율법은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데 무익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더라도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머문 곳은 죄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을 세우신 것이다.
대제사장 예수께서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계신다(히7:26).
이러한 표현들은 윤리적인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서 완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율법 아래의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멀리 떠나계신다.
이는 레위 계열의 구약의 제사장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언약언어와 개념을 따라,
구원 역사적으로 예수께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대제사장임을 강조한다.
이는 이전처럼 모세율법(구약성경)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종말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제사장 예수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