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의 와불을 뵈오려
이동민
경주 남산은 내가 수도없이 올랐던 산이다. 고등학교 때 옥돌을 줍는다면서 올랐으니, 햇수로 따져서 반세기보다도 훨씬 전부터 올랐던 산이다.
골골마다 신라 시대 유적지가 있으므로 답사팀과도 구석구석을 쑤시며 찾아다녔다. 산이 높지 않아서 아내와 산행삼아 자주 올랐었다. 산마루에 오르면 경주 시내가 온전히 눈 안에 들어오고, 서 쪽 저 멀리는 흐릿하나마 내가 자란 고향 마을도 보인다.
하 선생이 전화를 했다.
이번에 와불이 계신 곳을 찾아갈 작정인데, 같이 갈 의향이 있느냐고 했다.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약간은 거짓이리라 계산하여 한시간으로 잡드라도------, 까짓거 그 정도 쯤이면 오르리라 싶다. 동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늦가을 날씨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공기는 청명하다. 하 선생은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남산 자락을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남산의 풍광을 즐기려고 그런단다. 삼릉을 지났다. 다음 골이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금오신화를 쓴 절터가 있는 골짜기이다. 입안에 뱅뱅 돌면서 절 이름이 뱉아지지 않는다. 금오신화보다 이곳의 정경을 쓴 시가 더 좋은데 ---, 그러자 ‘용장사 터 입구’라는 안내판이 지나갔다. ‘그래 맞다. 용장사다.“
차는 이곳도 지나치고, 계속하여 달랐다. 남산이 끝나는 곳에는 울산으로 가는 샛길이 나온다. 이 길을 달리면 박재상 부인이 망부석이 되었다는 치술령을 마주한다. 그러니 산의 틈 사이로 난 골짜기라서 비좁다. 좁은 개울에는 누렇게 말라가는 물풀이 가득하다. 단풍을 달고 있는 나무들도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우리 눈은 인공으로 가꾼 화려한 관광지의 정원수에 익숙해 있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인 골짜기의 모습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웬지 쓸쓸해 보인다. 그렇다. 가을은 단풍으로 화장한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이 베여있는 이 모습이 제맛이다
잎을 모두 떨궈버린 한겨울의 나목이 아니고, 반쯤만 벗은 체이다. 어느 가지는 앙상하게 드러나서 추워보이고, 다른 가지는 반만 남아 성긴 나뭇잎으로 모습이 엉성하여 남루해 보인다. 이것이 가을의 진면목이다. 시간의 빗자루가 쓸고 간 이곳의 골짜기 정경은 쓸쓸하고, 처량한 기분이 든다. 비록 쓸쓸하긴 하더라도 이곳이 자연의 참모습일진데. 왜 여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공원에 몰려가서 단풍나무를 곱다고 하는걸까. 자연이 만든 여기가 더 좋고 말고. 나는 큰 깨달음이나 얻은 듯이 마음으로 말했다.
문득 혜능선사의 법어가 생각난다. 혜능이 법성사에서 몸과 마음을 닦을 때였다.
큰 스님이 설법을 할 때 마당의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강을 듣던 스님 사이에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니,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니 의견이 분분했다. 혜능이 말하기를
”그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인간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 인공으로 꾸만 공원이 더 좋으니, 여기가 자연의 진면목이니 하는 것 모두가 내 마음이 만든 허상이고 환(幻) 이다. 어느 것이 더 좋을리도 없겠지만, 허상으로 판단하여 더 좋다 한들 무슨 소용이람. 나는 혜능의 풍번문답(風幡問答)으로 마음을 훌훌 털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좁은 산길에 제 멋대로 솟아오른 바위들이 울퉁불퉁하고, 나무뿌리도 곳곳에서 튀어나와 좁은 산길을 가로 지르고 있다. 하선생은 행여 내가 미끄러질가봐. 신경을 셔주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마울 따름이다.
저 위쪽의 능선쯤에서 불경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린다. 부처님이 엎드려 계신 곳에 닿을 즈음에 종아리 근육이 아리고 당겼다. 생각보다 높은 곳인가 보다. 젊은 스님이 독경을 하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 불두를 발견하여. 부처님의 몸체를 찾아 접합하여 모시고, 남산문화연구팀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고 하였다. 그때 여기에 엎드려 계신 부처님을 찾았다고 하였다. 아마도 본래는 이곳 바위벽에 마애불로 모셨으나, 기록에 신라시대 때 큰 지진이 있었다고 하니, 그때 앞으로 넘어지신 것이 아닐까 라고 하였다. 큰 지진이 났다는 기록의 햇수로 따진다면 1400여 년이나 엎드려 계신 것이다.
’엎드리다.‘
나는 마음이 울적하면 팔 베게를 하고 곧잘 엎드렸다. 그렇게 하면 어쩐 일인지 몸보다 마음이 펀하게 느껴졌다. 행여 부처님도 마음이 편하실려고 엎드려 계신 것일까. 세상만사를 깨달으신 분인데, 그건 아니리라고 생각해본다.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려고 중생들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세상사가 마음에 차지 않으신지 그냥 엎드려 계신다고 스님이 말하였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일어나시기를 염원하지만 꿈쩍도 않으신다고------. 나는 땅바닥에 구부리고 앉아서 틈새로 부처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미동도 않고, 편안한 얼굴이다. 어디선가 헤능선사의 말씀이 들려온다.
”심과 색을 모두 버리는 것이, 물건을 버리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내가 누워 있던 일어서든 왜들 관심이 많으냐. 네 마음을 네가 다스려야지 왜 나에게 의탁하려느냐.로 들린다. 나는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앞산의 나무들이 가을을 맞이하느라 잎을 떨군다. 마음을 털고 있나 보다. 한줄기 바람이 또 불어오자, 잎들은 더 많이 두두둑 떨어진다.
첫댓글 책상앞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덕분에
치술령의 쓸쓸한 가을 풍경을
알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