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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21-22절. 동역자들의 문안 인사
1.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기록했습니다.
52년에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 5년 후 57년에 로마서를 써 보냈습니다.
사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가서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은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 궁핍하여, 고린도 교회를 비롯해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서 거둔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로마에 갈 수 없고, 편지로 대신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장 앞에서는 이 편지를 받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길게 문안 인사를 드렸고, 오늘은 바울의 동역자 다섯 명의 문안 인사가 나옵니다..
3. 그래서, 오늘은 <동역자들의 문안 인사>입니다.
바울과 함께 있는 성도들이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함
21절.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imothy my fellow worker greets you, and so do Lucius and Jason and Sosipater, my kinsmen.
나의 동역자 디모데---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Ἀσπάζεται ὑμᾶς Τιμόθεος, ὁ συνεργός μου,
greets you Timothy, the fellow worker of me
‘문안하느니라’(Ἀσπάζ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greets) 문안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
καὶ Λούκιος καὶ Ἰάσων καὶ Σωσίπατρος, οἱ συγγενεῖς μου.
also Lucius and Jason and Sosipater, the kinsmen of me
1.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디모데,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더디오, 가이오, 에라스도, 구아도 등 8명입니다.
2. 나의 동역자 디모데
(1) 바울 사도는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 단연코 디모데를 가장 먼저 소개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디모데였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믿음의 아들이라고 늘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1장 8절에서는 <아들 디모데야>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부친은 일찍이 돌아가시고,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가 함께 살면서 예수님을 잘 섬겼던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 디모데는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고, 평생 바울을 따라 다니며, 전도사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도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베뢰아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와 빌립보 교회 등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걷어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도,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0:3-4.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큰 교회를 설립한 후에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세웠습니다.
디모데전서 1:2-3.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이 디모데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처음 감옥생활을 할 때도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 소위 옥중서신을 쓸 때 송신자로 등장합니다.
빌립보서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골 1:1)
그리고 바울이 2차 로마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내게 오라’고 당부합니다.
디모데후서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 그런데, 오늘은 공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적으로 친형제와 부모자식간이라고 할지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전도사님, 목사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사적으로 친구지간이라도, 공적으로는 장로님으로, 권사님으로, 집사님으로 존경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물론 사석에서는 반말로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하겠지요.
광주에 황 장로님은 동생 황*준 목사에게 공석에서는 물론 사석에서조차 ‘황 목사님’이라고 존댓말로 호칭했습니다.
그러자 황 목사님이 형 장로님에게 ‘형님 사석에서는 말씀을 낮추시지요’라고 하자, 황 장로님은 ‘사석에서 말을 낮추면 습관이 되어서 공석에서도 말을 낮출 수 있으니까, 아예 사석에서도 말을 높이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처럼, 가까운 사람이 신앙 안에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중직자 남편은 교회에서는 거룩한 직분자인 것처럼 행세하는데, 집에만 오면 집사 된 아내를 세상 사람처럼 욕하고 저속한 말을 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화>
어떤 장로님이 교회에서는 거룩 거룩하게 행동하시는데, 집에만 오면 부인된 집사님을 마구 욕하고, 때리고, 괴롭히고, 못 살게 굴더답니다.
그래서, 하루는 장로님이 예배 때 거룩하게 기도를 마치자, 부인된 집사님이 교인들 다 보는 데서, 이불을 가지고 강대상 앞으로 가지고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온 교인과 장로님이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놀라서 쳐다보더랍니다.
그러자, 부인 집사님이 말하기를 <나 오늘부터서는 이 교회 강대상 밑에서 살랍니다. 우리 장로님이 교회에서는 거룩 거룩하게 행세하는데, 집에서는 나를 개 패듯이 패니까, 집에서는 안 살랍니다. 여보 이제부터는 교회 강대상에서만 삽시다.>
이처럼, 장로님이 창피를 톡톡히 당하고서, 크게 회개했답니다.
그래서, 다시는 집에 가서 아내를 구박하지 않고, 교회에서 다른 집사님 대하듯이 존경하며 잘 살았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 안 계시겠지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많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예수 믿고, 직분까지 맡은 내 아내와 남편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나라에서 존경받는 성도요 직분자들 되시고, 범사에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76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살 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바쳐서 힘써서 일하세
2. 나의 친척 누기오
누기오는 바울의 친척이면서, 구레네 출신이었습니다.
즉, 누기오는 바울과 같이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지만,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에 나온 대로 예수님을 믿고,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누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그런데, 이 누기오가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에 동참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로마 교회에 함께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즉, 누기오는 바울과 함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봉사도 같이 하고, 전도 여행도 같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디모데처럼 아들 같지는 않았으나, 영적 전투에 동참한 동지처럼 친밀하고, 든든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 다음으로 누기오의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랫동안 주의 일을 같이하는 동지들로서, 서로 사랑과 우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의 일할 때, 언제나 함께 참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야손
이 야손은 원래 데살로니가 성에 살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전도 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손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들여서, 숙식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을 반대하던 유대교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시기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야손을 끌고 읍장에게 가서 고소하였습니다.
그 후에, 야손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57년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심방 왔을 때,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 가서,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손은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고, 바울의 고난에 대신 동참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1-9. (바울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이처럼, 바울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일심동체가 되어 사역한 귀중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할 때 뿐만 아니라, 고난과 역경 중에서라도, 주님과 함께 사역하여, 충성된 직분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일군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소시바더
이 소시바더는 베뢰아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후, 베뢰아로 가서 전도할 때,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베뢰아교회의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과는 달리 신사적이어서 바울의 복음 전도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성경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7:10-13.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이처럼 소시바더는 베뢰아에서 예수님을 믿은 후에, 베뢰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인 57년에 바울 사도가 헬라 지방에 순회 심방을 왔을 때, 함께 동행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소시바더는 고린도 교회에서 석 달을 겨울 동안 지내다가, 봄에 배 타고 에베소로 함께 갔습니다.
이 때, 바울과 함께 동행한 사람들의 이름이 사도행전 20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4.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로라.
이처럼, 소시바더( 약칭으로 소바더라고도 함)는 베뢰아 교회의 대표자로서, 주의 일에 충성했습니다.
이렇게 바울과 함께 선교 사역에 동참하려면, 적어도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소시바더와 같은 교회의 대표자는 자기 생업을 버리고, 주의 일을 위해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선교 여행에 동참하여 충성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도시 교회(광주 동*교회)에서 의사와 약사와 간호사들이 명절 때, 1-2주 휴가를 내서, 수천만 원을 바치면서 저 멀리 외국에 의료선교를 다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명절 때면, 가족 친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야 할 텐데, 귀중한 시간을 주님 위해서 바치는 훌륭한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어떤 교회는 명절 때마다 부흥사경회를 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명절 때, 가족과 함께 신령한 은혜를 받겠다고 매년 명절 때만 되면, 부흥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주님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는 못 할지라도, 명절 때 열심히 기도하여 가족과 친척을 전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지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군들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시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빛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 사나 죽으나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라
22절.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Tertius, who write this letter, greet you in the Lord.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ἀσπάζομαι ὑμᾶς ἐγὼ, Τέρτιος, ὁ γράψας τὴν ἐπιστολὴν ἐν Κυρίῳ.
I greet you I, Tertius, the (one) having written down this letter in Lord
직역하면 ‘이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나 더디오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는 뜻입니다.
‘나’(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문안하노라’(ἀσπάζ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greet) 문안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대서하는’(γράψας)는 부정과거 분사인데(having written down) 직역하면 ‘기록하고 있었던’이란 뜻인데, 여기 부정과거를 소위 서신적 부정과거로서(epistolary aorist) 현재 편지를 쓰고 있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과거 일이기 때문에, 부정과거로 표현한 것입니다.
1. 바울 사도는 눈병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편지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대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서명하는 형식으로 친필로 몇 자 적었습니다.( 고전 16:21, 갈 6:11, 골 4:18, 살후 3:17, 몬 1:19).
그래서, 로마서는 <더디오>가 대서했습니다.
2. 이 <더디오>는 다른 곳에 나오지 않는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편지를 대서할 정도로 유식하고, 신앙도 좋은 분이었습니다.
3. 그런데,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편지를 기록하면서, 대서인인 더디오에게 직접 문안 인사를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훌륭한 인품의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4. 보통 교회에서 중직을 맡으신 분들은 신앙이 어린 성도들을 중요한 일에 동참시키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더디오가 신앙적으로 중직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의 특기를 소중히 여겨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고, 로마 교회에 문안 인사까지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특기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글 쓰는 재주, 컴퓨터 하는 재주, 음악 하는 재주, 그림 그리는 재주, 사진 찍는 재주, 춤추는 재주, 웃기는 재주, 운동 잘하는 재주 등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집사님(서*남)은 잘 웃기는 재주를 어르신 행복학교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형*희)은 춤추는 기술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요리하는 기술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어떤 분은 악기 다루는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차량 운전을 통해서 봉사하는 귀한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사진 찍는 기술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림 그리는 재주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컴퓨터 재주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이런 재주꾼이 저를 좀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깊은 신앙적인 일이 아닌데도, 도와주실 일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직분이 높든 낮든 하나님이 주신 재주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길이 기록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31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새 아침을 당할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에 못자국을 보아 알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