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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문학, 고은문학, 북한산, 선희궁길,문학미술엿먹이는 사람들
영인문학관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부부가 사재를 들여 2001년에 설립한 문학박물 관이다.(이어령의 ‘령’자와 강인숙의 ‘인’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이곳은 한국 근대문학 의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문학박물관이다. 국립문학관이 없는 상황에서 문학자료의 유실을 방지하고, 자료를 체계화하여 근대문학 발전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9년 이어령 전 장관이 시작한 한국문학연구 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곳에서는 13년간 《문학사상》을 발간하면서 수집한 문인들의 원고, 초상화, 편지를 비롯해 문인 및 화가들의 부채, 서화, 애장품, 사진, 문방사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과 자료실을 갖춘 문학관은 문인 초상화 104점, 문인 도자기 15점, 작가 원고 500여 점 등 모두 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광수와 모윤숙의 초상화를 비롯해 이상과 김남조의 자화상, 박경리와 조병화의 마스크와 흉상 등을 볼수 있다.
18년간 창작과비평사, 민음사, 문학동네, 문학사상사, 현대사상사에 원고를 보내고 들은 소리가 저희출판사하고 맞지가 않아서인데
이분도 그안에 책한권 못내게한 분들중에 한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하는 문학사상 발간이라는 내용입니다.
오죽하면 1인출판사를 해서 책을 유통시켰을까 .... 도서출판 숨쉬는행복 대표 김선희 그리고 작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문학 현실입니다.
돌아가시고 기사에는 북한산 밑에서 태어났다고 기사화 되었는데 그 기사를 캡쳐를 못해두었는데
이분 어린시절 지나고 난 기사에는 충남으로 되어 있습니다. 으아한 내용....
본인들은 이렇게 비우면서 산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했다는....
자동차로 실어나르는 최영미 시인을 보면서 미국놈들의 난장질같습니다. 그리고 노벨문학상 후보 두번씩이나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생기므로 이러한 결과들 .... 왠지 남의 나라 인종들이 우리나라 문학을 밟을 여고 하는 짓 같아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놈들이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말입니다. 이것도 계획됨이 아닌지....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 아래,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올라 가다보면 굳게 닫힌 철문 하나가 나온다.
문살 틈 사이로 보이는 꽤 멋들어진 노송들, 어느 대감님댁 저택인가 싶었는데, 이곳은 지난 2013년 수원시가 인문학 도시 구현을 목표로 삼고초려 끝에 유치한 고은 시인의 창작공간이자 거주 공간이었다.
지하1층 지상 1.5층 연 면적 265㎡ 규모로 지어진 이 저택은 시가 전시장 용도로 매입해 두었다가 리모델링을 거쳐 시인에게 제공한 것이다.
고은 시인의 입주 후 4년 여가 지났을 무렵, 광교산 일대는 한동안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
광교산 인근 주민들은 개발제한구역을 이유로 재산권 행사 제약 문제를 놓고 고은 시인의 퇴거를 촉구하는 집단 집회를 열었다. 해당 지역은 50년 넘도록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구역 등 제약에 묶여 개보수 조차 쉽지 않았다.
당시 주민들은 고은 시인의 주택 공간의 리모델링을 위해 조례까지 만든 시가 고은 시인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때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상습 성추행 논란이 빚어졌고, 결국 시인은 2018년 2월, 불명예 퇴진과 함께 집필 공간을 떠나게 됐다. 이후 고은 시인이 떠난 '문화향수의집'은 시인이 퇴거한 2018년부터 수원시 공무원들의 공무 공간으로 이용돼 왔다.
'문화향수의집'은 현재 '광교힐링하우스'로 명칭이 개칭됐다.
지난해 광교힐링하우스는 원천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송년 행사 등 공무원 연찬 모임, 정기회의, 내빈 영접 등 10차례가 공무 용도로 이용됐다. 이용 빈도에 비해 지난해 광교힐링하우스 공사 비용에만 1억원 상당 예산이 쓰였다.
29일 인천일보 취재에 따르면 조경정비공사 비용으로 6731만5000원, 전기시설 보수공사 1325만5000원, 물품구입비 1550만원 등 관리인 용역비를 제외하고도 9607만원이 공사비로 사용됐다.
'광교힐링하우스'가 고은 시인 퇴거 후 수원시 공무원들의 공무 용도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지만 활용이 미비해 적절한 활용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민은 “시인 퇴거 후 시설이 적극 활용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난번에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활용하지도 않는 공간에 리모델링 공사가 왜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며 ”조례를 바꿔가며 유치한 시설인 만큼 차라리 시민들에게 개방해서 시민들의 공간으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공동이용시설로 용도를 변경하려면 단순히 자치법규 개정만으로 되는 사항은 아니다. 시에서는 올해 활용도를 높이고자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
북한산 밑에서 태어난 사람은 나였습니다. (김선희) 도서출판 숨쉬는행복 대표 김선희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구기동 북한산 계곡을 끼고 등산할 수 있는 계곡이 있습니다.
이 계곡에서 놀곤 했던 기억입니다.
사직동 근처 가면 선희궁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종실록 7(1870)년 1월 2일의 기록에 따르면, 선희궁은 고종의 명에 의해 같은 해 육상궁 별묘로 이전됐다. 그 후 선희궁은 다시 옛 선희궁 자리인 한성부 북부 순화방으로 옮겨졌다가 고종 33(1896)년 육상궁 별묘로 다시 이전됐다. 선희궁이 이처럼 자주 이전됐던 이유는 영빈 이씨의 묘가 이때까지도 정식으로 봉원되지 않아서였다. 또한 왕실의 여러 사당을 통합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고 보인다.
특히 고종 34(1897)년 4월 24일에는 고종이 지난해 선희궁을 육상궁 별묘로 옮긴 것을 미안하게 여겨 옛 선희궁으로 되돌려 모시라는 조서(詔書)를 내렸다. 이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영왕(영친왕)을 임신 중인 귀인 엄씨(후에 순헌황 귀비 엄씨)의 꿈에 영빈 이씨가 나타나 폐지한 자신의 사당을 다시 지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태중(胎中)의 왕자를 돕겠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다. 꿈에 나타나 돕겠다던 영빈 이씨의 간곡한 부탁이 잊혀지지 않은 귀인 엄씨는 고종에게 부탁해 사당을 원래의 자리에 새로 짓게 했다는 것이다.
선희궁을 옮겨 짓는 공사는 고종 34(1897)년 6월 19일 완료되고, 같은 해 6월 25일 정당에 신위를 모셨다. 그리고 고종 36(1899)년 8월 23일에 정조·순조·익종·헌종·철종의 어진을 선희궁 내 망묘루(望廟樓)에 옮겨 모셨다. 고종 36(1899)년 9월 1일 영빈 이씨의 아들 사도세자가 장종대왕(莊宗大王), 같은 해 12월 7일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추존됐다. 이에 영빈 이씨는 임금(황제)을 낳은 어머니의 신분으로 격상돼 그 신위도 높이고 묘도 정식으로 봉원됐다. 이에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도 새로 지었다. 선희궁은 고종 연간에 몇 번의 자리 이동이 있기는 했지만, 사당이 세워진 1766년 이래 140여 년간 거의 세심궁 지역의 자리를 지키다가 순종 2(1908)년 왕실의 여러 신위와 함께 지금의 칠궁 내 육상궁 별묘 지역으로 최종 이건됐다.
이건 후 선희궁 자리에는 대일항쟁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 산하 제생원 양육부(濟生院 養育部)가 들어섰으며, 그 후 신이 지금의 국립서울맹학교와 농학교다. 지금도 이곳에는 영빈 이씨의 신위를 모셨던 정당(正堂)을 비롯해 담장, 각종 장대석과 초석·은행나무·느티나무 등이 남아 있다.
[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시대의 지성 이어령, 고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절망의 시대, 멘토 이어령의 메멘토 모리를 넘어서는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 삼성 고 이병철 회장은 죽음과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님에게 종교와 신과 죽음에 대한 스물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2021년, 지독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이 그 스물네 가지 질문에 대해 신부님과 다른 입장에서 답한다. 비유, 스토리텔링, 상상력, 추리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멘토 이어령의 답은 지금 혼돈의 포스트 코로나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 출간될, 총 20권에 이르는 방대한 시리즈 『이어령 대화록』의 제1권이다.
1부는 2021년 12월의 대담으로,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품고 이어령 선생이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스물다섯 가지 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눈앞에 그려봤다.
2부는 2019년 7월~10월에 진행된 대담으로, 우리 삶에서 이병철 회장의 스물네 가지 질문이 왜 중요한지 구체적인 생각과 느낌을 이 선생에게 물었다. 이어령 선생은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서 헤매는 사람, 그 문지방을 넘어 영성의 빛을 향해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사람을 위해 답했다.
증거타령하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내용중 영성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곳에서 나온것 같습니다. 6년째 그들의 말이 들리는데 그속에서 돌아가신듯...이단어는 목사들이 쓰는단어고 노원순복음교회에서 많이 나왔고 그리고 대구 천지인에서 나왔습니다. 근데 이단어가 이곳에서도 나옵니다.
교인들은 주로 영성단어보다 영혼단어를 많이 쓰고 성경말씀에도 인간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때도 영성이라는 단어보다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고 마무리가 그러네.....
3부는 2021년 5월의 대담으로, 인류가 전대미문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경험하고 세계대전보다 더 거대한 죽음 앞에 살아가게 되었음을 토로하고, 이 죽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이어령 선생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4부는 이병철 회장이 남긴 스물네 가지 질문을 끝마친 다음 이어령 선생과 나눈 영성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다. 이어령 선생이 몸소 겪은 위대한 신앙의 체험, 신께 드리는 청원,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담겼다.
관훈에서 전시할때 의자그림있었는데 종로구 평화복지관 김연재 선생 개인전에서...
저자 이어령은 1934년(나이 90세)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석좌교수이다. 그는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명 칼럼리스트로만 활약한 게 아니라 88서울올림픽 때는 개ㆍ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0~1991년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젊음의 탄생』,『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고, 어린이 도서로는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시리즈 등이 있다.
디지로그(Digilog)는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는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현재 우리가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해준다.
시대를 읽는 특별한 눈을 가진 그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사명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척자이자 전도사가 되었다. 한국이 산업사회에선 뒤졌지만 정보화사회에선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음을 일찍부터 설파한 그가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다.
물리적 나이로 보자면 분명 노학자이지만, 그는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명전환의 시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디지털 패러다임의 한계와 가능성을 몸소 체험한 얼리어댑터이다.
인생의 후반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어령. 존재 자체의 변화로 인해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서, 그는 지성을 넘어선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세례를 받았고,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냈다. 생명과 영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글쓰기에 나섰다. 지나온 세월 동안 한국의 대표지성으로 이름을 날린 그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최근 저서로는 《메멘토 모리(열림원, 2022.01.24.)》가 있다.
1966년 창간 창작과 비평사
산야초 2002년 처음 원고를 보냈을때 제작이 늦어져서...이후 제작 취소....이래로 원고보낼때마 저희출판사하고는 맞지가 않아서...
18년동안...다음부터 출판사를 만들어 전자책부터 출간하였습니다. 책을 하도 안내주어서 아예 편집 디자인을 배워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뒤에 누군가가 있겠지 싶었는데 위와같은 사람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막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어령같은 경우는 방송대 다닐때 국어국문학과 교재 집필한 사람입니다. 가르치는 것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 박사들이 강의를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교수들의 하는 일들이 제자 밟기인지 의문이 듭니다. 상황들이 이러한지라....
미술에서도....저희가 ....
미술에서도 이 유튜브 비공개 때리라고 저희가 서울디지털대학교 화화과 권인경교수 강의시간에 말했었습니다.
문학에서도 원고 보내면 저희출판사하고 맞지가 않아서....18년동안
미술에서는 아트페어 부스추첨식 유튜브 동영상도 비공개때려라고 하는 것들이 저희가 였고
아트페어 전시도 MBN방송요청에 가로 막은 이들도 저희가 였습니다.
옹기아트센터 일반 초대작가전 1500명에서도 도록을 전체 예술인단체에 발송키로한 내용이 변질 도록자체를 보내오지도 않았는데
삼성과 연결된것이 코엑스 파도 설치미술설치 할때이고 겹쳐서 엿먹은 경우입니다.
작가들에게 도록을 전달하지 못하게 한것으로 압니다. 순이라는 사람이 .... 삼성가 인물중에 이러한 이름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