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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있는중국이야기-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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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발굴을 못하는 이유”중국,중국인
진시황릉 병마용갱.
세계8대 불가사의 중 하나.
엄청난 규모와 섬세함에
지금의 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 할정도.
그러나 호위무사들의 갱이지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이 안된 상태다.
예전 한국의 여배우도 등장한
신화 라는 중국영화에 등장하는
진시황릉 비밀의 이야기들.
도굴을 막기위한 여러가지 장치들.
불로장생을 꿈꾸며 만들어 놓았다는
수은으로 꾸민 강과 바다들.
인어의 기름으로 밝혀 놓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불.
최근 근처의 산과 밭에서 엄청난 양의
수은 함유량이발견된다는 보도를 보면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이 전혀 허구는 아닌거 같다.
무한한 이야기와 상상력을
만들어 내는 진시황릉.
왜 이런 진시황릉을 발굴하지 않을까?
무덤조성에 죄인 70만명을 동원했다.
구리물을 부어 틈새를 메워 외관을 놓았다. 모형으로 만든 궁궐과 백관, 그리고 온갖 기기묘묘한 형상의 물건들을 설치했다.
자동발사되는 활을 장치했고, 수은을 주입하여 강과 바다를 조성했다. 풀과 나무를 심은 묘지는 마치 산과 같았다.”(<사기> ‘진시황 본기’)
기원전 246년 등극한 진시황은 불멸을 꿈꾸며 37년 동안 자신의 무덤을 조성했다. 시황제의 뒤를 이은 진2세는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뒤 무덤문을 닫아버렸다.
1974년 여름, 우물을 파려던 농부들에게 발견된 병마용 군단.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를 두고 세계 8대 불가사의라 극찬했다.
무덤의 구조를 알고 있던 노예들과 기술자들의 비밀누설이 두려워 모조리 질식사시킨 것이다. 이후 진시황릉 관련 기록들은 처참하다.
진나라 도읍인 함양(시안·西安)을 점령한 항우가 ‘30만명을 동원해서 진시황릉을 파헤친 뒤 발굴한 보물을 30일간 실어날라도 끝이 나지 않았다’는 기록(<수경주> ‘위수’)이 있다.
심지어는 ‘어느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고 발굴구덩이 속에 들어갔다가 진시황의 시신이 안장돼있는 관곽을 불태웠다’는 내용(<한서> ‘유향전’)도 있다.
당나라 말기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황소 역시 진시황릉 약탈을 명령한 후 금세 평정되고 말았다. 일설에는 항우와 황소는 진시황의 보복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진시황릉의 실체파악은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언감생심이다. 1974년 가뭄해소용 우물을 파던 농부들이 우연히 병마용갱을 발견했다.
이를 두고 ‘세계 제8대 불가사의’니 뭐니 했지만, 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병마용갱에서 1.5㎞ 떨어진 폭 500m, 높이 70여m의 황릉은 아직 전인미답이다.
진시황릉 모습. 진시황은 재위 37년동안 자신의 사후세계를 위해 무덤을 쌓았다. 무덤 안에 궁전과 백관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었고 수은으로 강 바다를 조성했다. 도굴방지를 위해 자동화살장치도 설치했다.
‘밖으로 항우가 파헤쳤고, 안으로 목동이 불태웠다’는 기록(<한서>)과 달리 발굴 및 도굴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1981~82년 사이 중국사회과학원의 분석결과 황릉 봉토의 수은 함유량(평균 205ppb)은 인근 지역 흙(평균 30ppb)보다 약 7배 많았다. 휘발성이 매우 강한 수은 기체는 결국 침입자를 막고 시신과 부장품의 부패까지 막았던 것이다.
이렇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진시황릉을 발굴해서 관광자원화 하자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이집트 피라미드 못잖은 문화유산을 자랑하고픈 중국인들의 마음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최근 발굴·보존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발굴을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낼 능력이 없다면 후손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낫다”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언급이 상기해본다.
이쯤에서 천년고도 신라 왕경의 발굴·복원사업이 한창인 경주로 시선을 돌려본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발굴은 곧 파괴’라는 것은 고고학계의 금언도 떠올려본다.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웁니다.



첫댓글 세상이 모두 내건데
이걸 두고 가야하니
얼마나 아까웠을까요? ㅎ~
발굴되면 무엇이 나오려나?
아직 들어가보지도 못한 진시황릉의 모습이 고대 우리민족의 피라미드 모양으로 추측한 것이 신기합니다~
광개토대왕릉이 저런 모양이라는데...
천부문화 건축 양식이라고 보는
피라미드..
마고성과 유관하다고 추측합니다..
아직 연구중이고 공의를 얻을 정도의 근거를 제시할 단계에 이르지 못하여 확언할 순 없지만...
이집트의
쿠푸왕 대피라미드 설계상에
지면이나 지하에 시신이 안장되어 있지않고 정 가운데 지점에
왕과 왕비의 방에 떠있게 안치했는데
아마도 진시황제 시신도 피라미드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을 듯 합니다..
@마고본성 피라미드 정중앙... 중심점... 무게 중심점 말씀하시는지요?
@인향만리 네
이집트 피라미드와 멕시코 피라미드에서 대량의 수은이 발견된 것처럼 진시황릉이라고 하는 곳에서도 대량의 수은이 발견됩니다.
수은전지처럼 수은은 밧데리연료가 됩니다.
세계제일의 크기와 규모를 자랑하는 삼협댐이라는 곳은 우연인지 하,은,주라는 중국고대의 발상지입니다.
그런데, 전부 수몰시켜버립니다.
일본의 거대한 전방후원이라는 일왕들의 고분 또한 신성한 곳이라며, 발굴하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모았다가 방출하는 밧데리에 사용되는 수은을 무덤에 사용한 이유가 혹시...
후대들을 위해서 일까요?
@인향만리 저는 수은이 대량으로 발견되는 고대유적은 무덤이 아니라, 발전소로 사용했다고 이해합니다.
전기를 이용하는 고대문명이 존재했지만, 파괴적 재앙으로 전세계가 신석기시대로 돌아 갔다고 봅니다.
@김덕신 그러면 향후시대는 수은도,핵도 아닌 시대가 되어야 할텐데요~
병마용갱을 제외한 나머지는 별 내용이 없을 것 같군요.
진시황이 제대로 왕권을 장악한 것이 31세 일 때이고
그후 9년에 걸쳐 천하통일을 이루었는데 그때 나이가
40세였지요.
그리고 천하통일 후 10년만에 진시황이 명을 다 했지요.
그 10년 동안에 만리장성 분서갱유 등의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데 집중했고 죽기 전 5년 정도는 수은 중독으로
연산군처럼 또라이로 살면서 불로초를 찾다가 명을 다했지요.
그 후 간신 조고에 의해 세자를 죽이고 띨띨한 호해를
황위계승을 하게한 결과 4년 만에 진나라는 세상에서
사라졌지요.
전부다 해봐야 겨우 사후4년을 합해도 14년인데 그 시대
의 기술로 볼때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진시황이 죽기 전 5년 사후4년 동안 부패한 관리
들의 분서갱유의 정치탄압과 병마용갱으로 황제를 칭송
하는척 하고 북방침략을 내세워 만리장성을 쌓는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핑계로 관리들의 사적인 부를 축적하
다가 결국 나라가 거들나게 함으로서 공사가 용두사미로
끝났을 것으로 봅니다.
중국이 원래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고 그 정도가
누가봐도 과할 정도로 뻥이 심하다는건 모두가 아는사실이고
진짜로 뭔가가 있었으면 벌써 드러내놓고 그위에 뻥튀기
를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지요.
그리스 로마시대를 넘어 르네상스 시대 마저도 왠만한
건물은 50년 100년에 걸쳐 축성한 건물이 부지기 수 입니다.
14년의 시간으로 할수 있는 일에 대해서 너무 큰 기대는
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유리상자 시황이 자기무덤을 37년간 조성했다는 말은 틀린 주장이다?는
말씀도 되나요?
@인향만리 진시황이 14세에 왕위를 물려 받았는데 31세까지는 여불위
또는 친모인 조희가 섭정을 했습니다.
31세에 왕권을 제대로 잡았는데 그후 9년만에 천하통일을 했지요.
그 시대는 세상이 혼란스러웠고 전쟁이 일상이었는데 그와중
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했다면 아마도 천하통일을 하기전에
진나라가 먼저 망했다고 봅니다.
@유리상자 네~
그러면 37년은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될까요?
@인향만리 37년이라는 시간을 적용하면 50세에 죽었으니까.
재위 하자마자 14세부터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31세까지는 섭정 중이었으니 힘을 못쓸 시간이지요.
@유리상자 그리고 마지막 5~6년은 수은중독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구요.
결론적으로 불로초 이야기도 진시황의 뜻이라기 보다
간신 조고의 사기극일 가능성이 더 크지요.
@유리상자 진나라 이야기는 최초의 통일이라는 관점을 빼면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14년의 역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백년의 역사도 많은데 왜 하필 14년밖에 존속하지 못한
왕조에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뻥이 도를 넘었다고 하는것입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역사에서 아예 취급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중국이 아니었다면 그냥 미스테리나 헤프닝 정도로 취급
되었을법 한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고대에는
적어도 100년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강산이 변할수 있습니다.
시간적 개념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유리상자 감사합니다~^^
중국이 그런 진시황 진나라와 한나라를 그토록 중시하는 이유는...
아마도 통일왕조국가를 그리워하고 유지하려는? 불안심리? 같은 것이겠군요
@유리상자 진시황이 수은 중독에 걸린 이유를 혹시 알수 있을까요?
@인향만리 진시황의 시대가 짧게 막을 내린다음이 바로 한나라 유방의
시대가 됩니다.
이때 유방이 자신을 도와 건국을 한 수많은 공신들이 논공행상
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고향에서 살게해 달라는 장량을
제외한 한신을 비롯한 모든 공신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지요.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진시황을 뛰어난 황제로 만들어야
했고 개국공신들이 부정축재를 일삼는 바람에 나라가 망하는
스토리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진시황의 신화는 한고조 유방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수 있지요.
그리고 수은은 조선시대까지도 화장품에 원료로 사용 되었지요.
우선은 빛깔이 좋지만 피부영양 순환장애를 일으켜서
종래에는 피부조직이 괴사하는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리상자 중국역사에서 그나마 한나라 역사가 길었던 이유가 한고조
유방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 했던 이유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고관들의 부정축재는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국가를 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니까요.
유방이 용맹무쌍하지는 못했지만 정치적 식견이 뛰어났던
것은 틀림 없었던것 같습니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 친족 처족을 몰살 하다시피 한것도
결국 개국공신 척결의 명분을 위해서 어쩔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덕으로 500년 역사의 기초가 마련된 것입니다.
@유리상자 감사합니다~
정치란, 권력이란 참으로 무자비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미래의 권력도 정치도 이럴까요?
@인향만리 권력의 공식은 영원히 깨지지 않는다고 봐야지요.
과거 몇천년 동안 깨지지 않은 공식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고려태조 왕건은 개국공신들을 몰살하지 않고도 균형을
잘 잡은 정치지형을 만든 좋은 예라고 볼수 있습니다.
여러 호족세력을 골고루 등용하는 균형잡힌 정치제도로
고려 역시 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권력을 힘으로 보지 않고 균형으로 인식한 지혜로운 왕
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실제로 "권"자는 권세권 이 아니고 저울"권"자 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정치에서는 김대중대통령이 비슷한 예라고
볼수 있습니다.
한고조나 태종 이방원의 예는 개국공신들이 균형잡힌
인재등용을 방해하고 백성을 수탈하는 선봉에 서기 때문
에 문제가 된 것이지요.
진나라가 겨우 15년을 유지했는데,
수십년 걸리는 진시황릉을 만들수 있나요?
무슨 진시황릉이라고 중국이 우기는지...
진시황릉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병마용갱의 쌍투튼 모습을 보면,
조선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죠...
아...위에
황릉주인이
진시왕인지 모르니
판단 보류하겠습니다.
그래서 쉬쉬하는 모양입니다~
진씨황제와
진기스칸은?같은 김씨네요이 ㅋ
진씨가 황제인 나라 !
울나라 한짜로
는 김,금 이라고 하죠이
근거를 명확히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투가 우리 선조들이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고대중국도 했었겠지요~
@인향만리 http://m.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8
■ 상투를 튼 한민족의 이주 역사
@김덕신 감사합니다.잘 읽었습니다~
당시에 찰갑옷(물고기 비늘 같은 쇠)은 중국은 쇠를 그렇게 만들지 못합니다
고구려 만이 유일하게 만들었습니다 화살이나 칼에 찢기지 않는 강력한 무리를
만드는 것이 유일하게 고구려 밖에 없습니다.
병마용갱 마차는 전통적인 고구려 형식입니다
진시왕 30년동안 어청난 일들을 했군요...만리장성 지으랴 왕릉지으랴...길어야 2-3백년 왕조의 지나국은 그리만은 유적이 있는데 기본이 천년인 우리는 왕조 유적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진시황능은
중국이 그렇다하고 이야기하니
지금 국제정세하에선 그냥토를 달기 귀찮고. 놔두는겁니다.
그들도 더 이상 발굴하면 들통이 다 나는것이고
그냥 그대로 두는 도리밖에 없다
바로 그것입니다
몇년전 러시아어느학자가 모든일 전폐하고
십수년 아시아대륙 연구결과를대규모 학숳회에서발표.
"중국대률에 중국은 없다.
고대 오랜 시대 와 역사 모두가 조선이다."
라고 했읍니다.
미미한 국력의 작은나라
십수년에 진시황능?백수십년이면 또 몰라도
그냥갖다붙인것입니다 그들로선 대책이 없읍니다
병마용갱 군사들도 북방민족입니다,
진시황군사가 아님니다
진니리정도의 쪼잔한나라가 만든것이 아니고
그 이전 강력한 문명국력을 가진 나라가
오랜 기간 건설한것입니다
어느 나라 누구일까요?
중국이 제일 밝히기를 싫어 하는나라
우리 배달국시대 그후 수천년 오랜기간의 고조선시대
금속 기술이 뛰어나고 과학문명이 대단했습니다.
참고로
우리 울산앞 바닷가의 암각화.
많은 고래 와 여러동물들.
그리고 바이킹이 타고 다닌 모습의 배.
기구 도구등의 그림
연대측정 해보니
7천년전......
우리민족 낚싯배타고 돌칼.죽창들고
고래잡이
태평양을 항해한 것이 아닙
솔구름88님 감사합니다.
구석기시대,신석기 시대 유적이 한반도에 제일 많다니...
과학이 발전하는 지금 시기에 그 진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자로 松雲88님? ㅎ
松雲보다 한글인 솔구름이 더 운치있게 느껴집니다
인향만리님.
수은(Hg)은 연단(鍊丹)재료입니다.
"산해경"에 보면
수은 산지 많습네다.
수은전지 말로 않되는 추측이고
시황이 불로장생 할려고 했으니
연단재료인 수은이 당연히
쓰이죠
전국시대를 평정했으니
전국시대를 이끌었던 에너지를
소진해야 천하가 안정이 되죠
시황이 많이 현명하죠.
장성축조.황릉건설로 무력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분서갱유로 문화(사상)에너지를
소진시키고
문자통일,도량형통일,마차폭 표준화
군현제 실시로 민심을 얻었죠.
재인이가 데모꾼들의 에너지를
소진 못시킨 결과가
지금의 정국이죠
히데요시도 배워 임진란을
일으켰는데.
강촌인님 그런 데모꾼들?이 지금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보이네요~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고요.
데모꾼 빨갱이로 몰던 적폐들의 문제가 하나 둘 드러나고, 청산되어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수은은 연단의 재료라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발전소 였다면 그와 관련한 유물들이 발견되어져야 겠지요
청동기,철기시대 문명도 발견되어지는데...
광대한 중국대륙에서의고대역사를
철저히 연구하고 미치다싶이 공부한
러시아 학자.
P. K 푸틴.
러시아에서 국가적 큰 역사학술회의 에서
외친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말이지요.
중국대률의 모든것은 조선이다
중국은 없다
그래놓곤
" 어느나라는 없는역사도 만들고
없는역사를
있다고도 주장하는데.
왜?
코리아는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는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일본 중국은
역사문제에서 만은
사기끈,날강도 ,협잡끈이라는 소리이지요?
선생님 역사는 자긍심도 주지만...현대 영토주의 중심사관은 위험한 것 아닐까요?
민족이기주의? 중심주의?는 경계도 필요하지 않을지요...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인류의 문화와 정신문명의 철학이 아닐까요?
그런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 철학과 그 이상을 알아가는 것...
그래서 인류사회를 리드할 자긍심을 찾는 것이 역사를 바로 알고자 하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솔구름88님
주재(主宰)는 하되 군림(君臨)하지
않는 것이 홍익인간의 이념이지요
이(夷):있되 너무 자연스러워
없는 듯 하다.
중국대륙,마주벌판,시베리아
솔찍이 말해서 준다고 해도
있는듯 없는 듯 다스릴 능력 됩니까
재인이,정은이 그 능력 보입니까
그기에 지금 사는 주민에게
갑질이나 할 인간들이지
주민들이 우리를 받아들어
60%는 고맙다 해야지
일본이 우리를 점령했을 때
좋아한사람 많습네다
반상제도를 없앴으니
이런 것은 역사에 안 가르치지요.
민초들의 역사가 참 역사지요
수가 원체 많다보니
희기성이 없어 약발을 안받으니
엘리트의 역사만 부각되고
청제국이 성공한 것은
중화의 민초들이 적극 환영했죠
세금을 적게 걷었으니
누르하치가
夷의 정신으로 천하를 얻고
천하를 지배햤죠.
그래도 살생을 한 죄를
순치는 황제의 몸으로
승이 되었죠.
이정도는 되어야
천하를 담을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