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믿고 맡기는 평온장묘개발 대표
장례마스터 염쟁이강씨입니다.
오늘 현장은
백골부대가 주둔하고있는 강원도 철원 와수리 서면 단장 1기 묘지개장 현장입니다.
묘지개장은 단순히 봉분을 없애고 유골을 수습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고인을 다시 정성껏 모시는 일이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는 부모님을 다시 한번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2007년 별세하신 아버님을 19년 만에 다시 모시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님이 떠나신 뒤 관리가 어려워진 아버님 산소
아버님 슬하에는 남매가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2007년 별세하셨고, 이후 산소 관리는 주로 어머님께서 해오셨다고 해요.
하지만 어머님마저 4년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동안 어머님께서 정성스럽게 관리해 오셨지만, 어머님 작고 후에는 자녀분들이 모두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예전처럼 자주 찾아 관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는데요.
더 큰 문제는 묘역의 규모였습니다.
전체 묘역이 약 200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었고, 봉분 역시 일반적인 산소와 비교하면 약 10배 정도 크게 느껴질 만큼 상당한 규모였습니다.
몇 년 동안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풀과 잡목은 사람 키만큼 무성해졌고, 여기에 멧돼지까지 침범하면서 묘역 곳곳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어요.
결국 남매분들은 오랜 고민 끝에 아버님 산소의 개장을 결정하셨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고 염쟁이강씨를 찾아주셨어요
처음 연락을 주신 날은 8월 22일이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염쟁이강씨의 묘지개장 현장 기록을 여러 편 살펴보신 뒤 상담 전화를 주셨어요.
전화로 기본적인 내용을 상담한 뒤 직접 철원 현장을 찾아 묘역 위치와 진입 여건, 봉분 상태, 장비 진입 가능 여부 등을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이번 묘역에는 묘비가 없었는데요.
묘비가 없는 묘역은 개장신고에 필요한 사진을 준비할 때 조금 더 세심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A4 용지에 고인의 성함과 묘지 지번을 작성해 묘역과 함께 촬영했고, 개장신고에 필요한 현장 사진도 준비해드렸어요.
이후 관련 사진을 묘주님께 전송하고 정부24를 통해 묘지개장신고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드렸습니다.
화장은 9월 26일 성남화장장으로 예약을 진행했고요.
묘지개장은 현장에서 파묘만 잘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개장신고부터 화장예약, 현장 일정과 이동시간까지 미리 맞춰놓아야 당일 일정이 차질 없이 이어질 수 있어요.
자욱한 새벽안개를 뚫고 철원 현장으로
드디어 개장 당일입니다.
전날 비가 제법 내렸지만 아침이 밝아오면서 날씨는 청명했어요.
묘주님들과 약속한 미팅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온장묘개발팀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앞선 오전 6시 30분 현장에 도착했어요.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자욱한 새벽안개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오늘 현장은 도착하자마자 파묘를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오랫동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부터 풀이 무성했기 때문입니다.
묘주님들이 안전하게 아버님 산소까지 들어오실 수 있도록 가장 먼저 진입로 예초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조용했던 철원 산속에 예초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진입로를 확보하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묘역 벌초를 시작했어요.
무성했던 풀을 하나씩 걷어내자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아버님의 봉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일반 봉분과는 확연히 달랐던 200평 규모의 묘역
벌초를 마친 뒤 묘역 전체를 다시 한번 살펴봤습니다.
토질은 마사토였고, 매장 방식은 관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소실되는 전형적인 탈관 형태였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봉분의 크기였습니다.
일반적인 단장 봉분과 비교하면 약 10배 정도로 느껴질 만큼 상당히 크게 조성되어 있었어요.
여기에 멧돼지가 여러 차례 침범하면서 묘역 곳곳이 파헤쳐진 흔적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봉분이 크다고 해서 중앙만 보고 무작정 굴착을 진행할 수는 없어요.
이런 현장일수록 중요한 것이 바로 내광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입니다.
평온장묘개발은 파묘를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탐침봉을 이용해 내광의 위치와 깊이를 확인해가며 조심스럽게 작업 범위를 좁혀갔습니다.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파묘를 시작합니다
파묘에 앞서 묘주님들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제물을 진설했습니다.
장례지도사 염쟁이강씨가 제사를 주관하고 가족분들이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셨어요.
19년 동안 이곳에 모셔져 있던 아버님께 드리는 인사입니다.
잠시 묘역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제사를 모두 마친 뒤에는 묘주님의 첫 삽으로 파묘를 시작했어요.
아버님을 오랜 시간 모셨던 자리를 가족이 직접 열어드리고 새로운 곳으로 정성껏 모시겠다는 의미가 담긴 첫 삽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파묘가 시작됩니다.
회닫이가 보이고 두꺼운 횡대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봉분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조금 굴착하고, 탐침봉으로 다시 확인하고, 위치를 잡아 조금씩 내려갔어요.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던 중 회닫이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자 드디어 횡대의 윤곽도 확인됩니다.
오늘 현장에서 확인된 횡대는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보다 상당히 두꺼웠는데요.
보통 현장에서 약 1.5치 정도의 횡대를 많이 접하는 편인데, 이날 확인된 횡대는 약 3치 정도로 상당히 두꺼운 편이었습니다.
묘주님들께도 직접 보여드리며 현재 상황을 설명드렸어요.
이후 횡대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횡대 아래 모틀자리에 쌓여 있던 고운 흙을 천천히 제거했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의 흔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19년의 세월, 육탈은 아주 잘 진행되어 있었습니다
탈관 형태로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육탈 상태는 아주 좋았습니다.
이때부터는 장비보다 사람의 손과 경험이 더욱 중요해져요.
유골이 확인되기 시작하면 무리하게 작업하지 않고 손작업과 채반을 병행하면서 작은 유골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수습합니다.
큰 유골만 수습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고인을 모셨던 모틀자리의 흙을 다시 한번 채반에 걸러 작은 잔뼈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재확인했습니다.
한 번 확인하고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마지막까지 확인한 뒤 묘주님들께 고인을 모셨던 자리를 직접 보여드렸어요.
“아버님 모셨던 자리는 이렇게 깨끗하게 확인했습니다.”
묘주님들께서 직접 확인하신 뒤에야 유골 수습을 마무리했습니다.
고인을 모셨던 자리 역시 그대로 두지 않고 평토작업을 진행해 원상복구해드렸어요.
묘주님 참관 아래 아버님의 뼈맞춤을 진행합니다
수습한 유골은 묘주님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뼈맞춤을 진행했습니다.
그저 유골을 순서대로 맞추는 것으로 끝내지 않아요.
어느 부분의 유골인지 하나씩 설명드리고, 고인이 누워 계셨던 방향과 산소 내부 구조, 실제 수습 당시 상태까지 묘주님들께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유골전용 오동나무 개장관에 예단과 함께 정성스럽게 입관해드렸어요.
2007년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어느덧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산소에 계셨던 아버님을 이날 남매분들이 다시 품에 모셨습니다.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신 묘주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정말 꼼꼼하게 일을 하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그 한마디에 새벽부터 흘린 땀과 피로가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현장에서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장례지도사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철원에서 성남화장장으로 이동합니다
현장 정리를 모두 마친 뒤 아버님을 정성스럽게 모시고 성남화장장으로 이동했습니다.
12시 30분 화장접수를 진행했고, 접수에는 개장신고증명서와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이후 13시 25분 화로운구,
14시 10분 분골 및 수골까지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어요.
개장유골 화장비는 적용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 일정에서 확인한 기준은
관내 26,000원 / 관외 400,000원 / 국가유공자 무료였습니다.
화장을 마친 아버님은 다시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후에는 가족분들이 마련하신 개인 수목장으로 이동해 아버님을 모시는 일정으로 이어졌어요.
묘지개장은 단순히 산소 하나를 없애는 일이 아니에요
이번 철원 와수리 서면 단장 1기 묘지개장 현장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님께서 산소를 관리하셨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 역할이 자녀분들에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자녀분들은 모두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고 약 200평 규모의 묘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풀이 자라고 잡목이 들어오고, 결국 멧돼지까지 침범하면서 아버님의 묘역은 점점 훼손되어 갔습니다.
남매분들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아버님 묘지개장을 결정하셨어요.
저는 묘지개장을 단순한 파묘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장답사부터 개장신고와 화장예약, 진입로 확보, 벌초, 제사, 파묘, 유골 수습, 채반 확인, 뼈맞춤, 입관 그리고 화장장 운구까지 모든 과정에 가족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골을 수습할 때는 눈에 보이는 큰 유골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잔뼈 하나라도 남지 않도록 마지막 흙까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말 꼼꼼하게 일을 하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오늘 묘주님께서 해주신 이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19년 만에 다시 아버님을 품으신 남매분들.
아버님을 모셨던 자리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화장까지 무사히 마친 뒤 가족분들의 품으로 다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새벽 6시 30분, 자욱한 철원 안개 속에서 시작한 하루였어요.
진입로를 만들고, 벌초를 하고, 제사를 올리고, 큰 봉분을 조심스럽게 열어 아버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철원에서 성남화장장까지 긴 일정을 함께했습니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가족분들의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보니 오늘도 참 보람찬 하루였네요.
앞으로 어디에 모시든 자녀분들의 마음속에는 아버님과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겁니다.
아버님, 이제는 자녀분들 걱정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소중한 인연을 믿고 맡겨주신 묘주님께 감사드리며, 장례지도사 염쟁이강씨는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을 끝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하고 돌아갑니다.
묘지개장에 진심인 장례지도사, 장례마스터 염쟁이강씨.
믿고 맡기는 평온장묘개발은 상담부터 현장답사, 개장신고, 화장예약, 묘지개장, 유골수습과 운구까지 가족분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함께하겠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잘 모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