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빌라이는 고려를 일본 침공의 전진 기지로 삼아 1274년, 고려군 5,600명을 포함한 3만여의 병력과 900여 척의 병선으로 쓰시마 · 이키(壹岐)를 침공하고 북규슈 하카타만(博多灣)에 상륙하였다. 일본 측은 이를 맞아 싸웠지만 이들의 집단전법과 화약을 사용한 새로운 병기 때문에 고전했다. 한때 다자이후(大宰府)의 미즈키(水城) 일대까지 후퇴했다. 그런데 날이 밝은 이튿날 하카타만에 정박해 있던 원군의 병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사이에 몰아친 폭풍우 때문에 많은 병선이 바다에 침몰하고 원정군은 고려로 퇴각하였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가호에 의한 기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일본 측에서는 다시 원군의 재침에 대비해서 규슈의 고케닌들으로 하여금 하카타만 연안에 해안선을 따라 석축의 방벽을 쌓았고 수군도 보강했다. 그리고 교대로 규슈 북부의 요지를 경비하도록 하는 이국경고번역(異國警固番役)을 정비하고, 막부의 고케닌이 아닌 자들도 동원하여 북규슈의 요지와 나가토(長門) 연안을 방비시켰다.
드디어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킨 원은 일본원정을 계획하여 1281년 고려의 동로군 4만 명, 중국 본토의 강남군 10만 명 총 14만의 대병력을 4,400여 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북규슈에 2차 침공을 단행하였다. 일본군은 석벽에 의지하며 약 2개월에 걸쳐 공방전을 계속했는데, 원군이 본토상륙을 눈앞에
첫댓글 아니, 일본군 장수가 복합궁을 쓰다니.
오 뭘 좀 보시는 눈이 있으시군요.
요즘 어쩌다가 저 동영상이 돌고 도는지 모르겠지만...
http://blog.naver.com/halmi/50034751810
같은 동영상인데, 왜 멀쩡한 HD 드라마를 70년대 후진국 화질로 만들어?
중국 방송국에서 화질을 이런식으로 햇던데여
만약 저당시 여몽연합군이 일본먹었다면 일본역사 한국역사가 바뀌지않았을까요??
바뀌기야 했겠죠. 근데 결국 유지를 오래 못하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일본토착세력이 다시 회복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