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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 사랑은 비를 타고 - 01
"호호, 아가씨 드디어 사공운이 죽었답니다. 그리고 도망친 용설아는
곧 잡을 수 있을 거라 합니다."
웃고 있는 팽예린의 눈엔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 아직은 아닌데, 조
금 더 유흥거리가 되어 주었으면 했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이었다.
팽예린은 그 동안 보완된 정보를 종합해서 용설향에게 설명하였다.
다 듣고 난 용설향의 표정은 생각보다 환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굳어진 안색으로 팽예린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사공운과 풍백이 결투를 하는 동안 그들을 찾지 못한 이
유가, 우선은 오복귀가 흑밀위 공령에게 죽었기 때문이라 이거죠? 후에
다행히 흑안마복 노악이 나타나서 다시 그들을 찾을 수 있었고."
팽예린은 대답대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
다.
"그런데 언니, 그거 아세요? 지금까지 공령이 오복귀를 죽이지 못한
이유가 그를 비밀리에 호위하는 호위대 때문이었고, 공령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죽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오복귀 뿐 아니라 그 호위대마
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군요."
팽예린 역시 그것이 큰 위문이었지만 나름대로 짐작한 것이 있다는
듯 말했다.
"누군가가, 예로 사공운과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도왔다고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 않을까요? 아가씨."
"언니, 그건 나도 모르는 것이 아니에요. 사공운이 처음 강가의 갈대
숲에서 포위망을 벗어 날 때, 사령문의 환혼삼사를 유인한 것도 분명
그 지인이라 생각되는 자 일거예요. 문제는 그 지인의 능력 또한
사공운에 뒤지지 않고, 그 지닌 능력으로 보아 그의 사형제나 혹
은 사부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이예요."
"그런데.. 그게..?"
팽예린은 자신이 무엇인가 빠트린 것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 느끼는 것이 있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대단한 자가, 왜 사공운이 죽어갈 때 나타나지 않
았을까요?"
"그 의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직 일이 완전하게 끝난 것이 아니에
요."
팽예린의 눈에 다시 묘한 흥분을 어렸다. 그녀는 생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설아를 잡으면, 확실하게 알겠군요. 그녀의 무공은..."
"무공이 약한 여자치고는 꽤 오래 동안 잡히지 않는군요. 그리고 사
공운과 용설아가 봉성이 있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도망한 사실도
조금 이상해요."
"그건 여우몰이를 할 때 주 전력을 남쪽에 배치했기 때문 아닐까요?
혹여 봉성의 도움을 염려해서 그들을 몰 때 북쪽으로 몰았으니, 그건
당연히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아가씨."
팽예린의 설명에 용설향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그랬다면."
말을 잠시 멈추었던 용설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말은 마치 혼
자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사공운의 무공이 풍백마저 능가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용설향의 머리에 떠 오른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녀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죽은 사공운이 지닌 의미였다. 이미 몇 번을 확인
하고 다시 확인해도 사공운은 죽었다. 비록 사고운을 죽인 것이 자신의
수하들이나 자신과 손을 잡은 세력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경로를 통
해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목을 잘라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다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문제가 있
어 보였다. 왠지 허전하다.
그 어려운 추격 속에서도 무려 10일을 버티었으니, 그의 무위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데 도망친 용설아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용설향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
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무공이라면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반 시진 이내
에 잡혔어야 옳았다.
그런데 마치 지워진 것처럼 사라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사공운을 도와주던 그 누군가가 다시 용설아를
데리고 사라진 것인가? 어차피 자신의 실력으로 사공운을 돕는다 해도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용설아만 빼 내어 도망친 것인가? 설사 그렇다
고 쳐도 흑안마복의 청시복을 피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돕는
자의 꼬리라도 잡혔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녀는 팽예린을 보면서 가볍게 탄식을 하였다.
"언니, 사공운이란 자, 어쩌면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는지도 몰
라요. 왠지 무엇인가 우리가 당한 느낌입니다."
팽예린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하체가 짜릿해지는 흥분감을 느꼈다.
참 이상한 여자다.
호북성의 한 숲에 하나의 인영이 뛰어 내렸다. 그녀는 복장이나 모든
것이 분명 용설아였다. 그러데 숲에 내린 그녀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더
니 공령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는 숲에 내린 다음 어디선가 구해온 옷으로 빠르게 갈아 입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능숙하게 땅을 판 후, 용설아의 복장을 묻고
그 위에 나뭇잎과 풀로 완벽하게 위장을 하였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종료하자 잠시 하늘을 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장마로 인해 질척하게 내리는 비가 그녀의 얼굴을 씻어 주었다.
'사공운, 당신의 사부님은 당신을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전 그 분에게
큰 은혜를 입고 혼자 도망했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오복귀를 죽이려다 그의 호위무사들에게 죽음직전 까지 몰렸
었다. 사공운의 사부인 병서생에게 구함을 받고, 오복귀를 죽인 후, 둘
은 사공운과 용설아로 변장 후, 모든 시선을 끌어 들였다.
이미 자신의 정체를 환하고 알고, 또한 자신을 구해 준 유지학이 사
공운의 사부임을 알고 몹시 놀랐던 공령이었다.
유지학은 약물로 둘의 체취마저 완벽하게 속이고, 청시복과 흑안마복
노악을 우롱했다.
사공운에게는 몇 가지 물건을 전해 주고, 전음으로 잠시 그들의 시선
을 끌겠다고 만 했었다.
그리고 끝없는 추적과 도망, 정말 그녀의 생애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친 후, 그녀는 사공운의 사부가 미
리 준비해 둔 가루약을 자신의 몸에 뿌렸고, 하나의 알약을 먹었다. 그
것으로 그녀의 체취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용설아는 완전히 행방 불명
이 되고 말았다.
끝까지 사공운으로 죽어간 유지학을 생각하며, 그녀는 그의 명복을
빌었다. 후에 사공운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 자신이 홀로 살아 있음이 너무도 미안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신형이 숲으로 사라졌다.
산서성과 호북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자락을 사냥꾼 차림의 청년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한 명의 할머니가 업혀 있었는데 무엇인
가 다 급한 일이 있는 듯 장마비속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한 동안 달리던 청년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멈추어 선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의 등에 업혀 있던 할머니
는 청년의 감정을 느꼈음인가?
"이젠 절 내려 주세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맑고 깨끗했다.
청년은 할머니를 내려놓고 북쪽을 보았다. 청년의 눈은 불안함아 가
득했고, 그의 몸은 무엇인가 안절부절못하는 듯 했다.
청년은 조금 전 자신의 가슴을 저미는 아픔과 불현듯 밀려온 불안함
이 자신의 사부와 관련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사부님이 혹시. 아니다. 누가 있어 사부님을 해 할 수 있으랴.'
청년은 고개를 흔들고 한쪽에 비를 맞고 서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가씨,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다른 모습으로 바꾸
고 대로로 가야겠습니다. 그 전에 이 근처에서 하루를 묶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영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청년은 사공운이였다. 그리고 할머니로 변신한 여자는 당연히 용설아
였다. 사공운의 사부와 공령이 두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많은 사람
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둘은 그 반대쪽으로 도망을 한 것이다.
잠시 후, 사공운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나의 폐찰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은 사찰은, 제법 커
서 한때는 꽤 많은 사람이 찾았던 절 같았다.
사공운은 용설아를 대리고 대웅전이었을 것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
갔다. 그 다음, 여기저기서 문짝이나 나무를 같다가 틈을 막아 놓고 나
니 제법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단 쉴 곳이 정해지자 사공운은
용설아의 등에 자신의 손을 붙이고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약 반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용설아의 얼굴 근육이 뒤틀리며 자신
의 모습을 찾았고, 입었던 옷은 거짓말처럼 말라버렸다.
사공운이 그의 양강진기로 옷의 물기를 말려 버린 것이다.
용설아와 사공운은 이렇게 은밀한 곳에서 쉴 때는 항상 본래의 모습
으로 돌아왔다. 오래 동안 변신의 모습으로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
용을 가져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는 편이었다.
일단 본 모습으로 돌아온 사공운은 밖에 나가서 장작을 한 더미 해
가지고 왔다. 비에 젖은 장작을 다시 삼매진화로 말리고 불을 붙이자
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대웅전의 찬기를 밀어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은 용설아가 사공운을 보면서 물었다.
"여긴 어디쯤인가요?"
"아마도 산서성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제 얼마 안가면 포양호입니
다. 봉성까지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녀의 말은 왠지 힘이 없었다. 이제 봉성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
는데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사공운은 근래 들어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항상 무거운
얼굴의 그녀를 보며서 사공운의 마음도 답답해졌다. 무엇보다도 이젠
봉성의 턱 앞까지 왔다.
봉성으로 들어가면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아무리 모질게 마음먹은
사공운이지만 마음에 번뇌가 없을 수 없었다.
참고 또 참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공운이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피워 놓은 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용설아가 말했다.
"불을 보면, 가끔 그 안으로 뛰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공운이 그녀를 보았다. 불 속에 뛰어 들고 싶다는 말은 생각이 많
다는 뜻일 게다. 그 번뇌를 불에 태워 버리고 싶다는 뜻으로 사공운은
들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번뇌하게 하는가?
사공운은 묻지 않았다. 무엇인가 그녀에게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웠
다. 사공운은 앉아서 대웅전 한쪽으로 난 창 밖을 보고, 눈을 고정 시
켰다. 이제 막바지에 이른 장마비는 바람과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록 바람은 세찼지만 대웅전 안은 고요했다. 그 버거운 침묵을 견디
지 못했음인가? 그녀의 눈에 물이 고였다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공운은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녀가 무엇을 괴로워하는지 묻고, 그
녀를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하면 무엇인가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주어진 금기를 어길 것만 같았다.
그는 보지 못한 듯, 그저 문살 없는 창 밖의 비를 바라본다.
사공운의 눈을 타고 흘러든 물기가 그의 가슴을 적시고, 다시 그의
머리로 흘러 고여 들었지만, 그는 감정을 부둥켜 앉고 있을 뿐이었다.
'아영 강해져야 하오.'
사공운은 속으로 그 말을 수 없이 되 뇌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 낸 용설아는 불을 응시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을, 사영환님은 사랑했던 사람이 있으셨다고 하셨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힘이 들어 보였다.
숨이 차 왔다. 잠시 호흡을 조절한 사공운의 목소리는 마치 남의 이
야기하듯 담담하게 흘러 나왔다.
"있었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그
녀를 사랑합니다."
작지만 그의 목소리엔 어떤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누군가가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용설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격한 격류가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여울목처럼 돌았다가 천천히 실개천으로 풀어져 흩어진다.
그녀의 시선이 사공운의 시선을 쫓아 창 밖으로 이어졌다. 이미 술시
말에 달한 밖의 사물은 전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빗소리 바람소리
만 요란하게 들려 왔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쾌활하게 들려왔다.
"비 오는 밤이라 달도 없구나?
자연의 이치로 하늘이 바람을 담았거늘
어느 모진 세월에 별을 보리.
사랑이 가득한 님이라 내가 설 틈이 없구나?
사람이 가고 옴은 내 뜻이 아니거늘.
홀로 가득한 마음을 언제 고백인들 해 보리.
마음은 님을 쫓아 정원에 꽃을 따는데
묶은 약속은 몸을 붙들고 봉성의 귀신이라 하네."
중얼거리듯 시를 읊어 가던 용설아의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그녀는 차마 사공운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사공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천명의 고수에게 둘러싸인 듯 주체 할 수 없는 두려움과, 깨질 것 같
은 맹세가 그의 뇌리를 돌고, 돌고, 돈다.
첫댓글 ㅎㅎㅎ
재밌는소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ㅈㄷㄱ~~~~~~```````````````
즐독!!!!!!!!!!!!1
추억
감사해요~~~^~
ㅈㄷㄳ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잘읽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