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들의 결혼생활
최근 나훈아의 세 번째 부인인 가수 정수경이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걸어 세간의 화제를 일으켰다.
이미 오랫동안 이미 별거 상태에 들었으며 연락조차 없었다며 위자료 소송을 걸었고,결국 나훈아가 쿨하게 원하는대로 넘겨주며 일단락되는 듯 했다.
어차피 이렇게 살았는데 왜 더 못 참냐며 이혼만은 원치 않는다는 애초의 나훈아가 결국 세번째 이혼을 조만간 하게 될 것 같다.
나훈아는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있는데, 1973년 영화배우 고은아의 사촌 이숙희와 결혼했으나 2년 만에 결별했다.
이후 1976년 영화배우 김지미와 두 번째로 결혼했지만 6년 만인 1982년 헤어졌다. 1983년에는 결혼소식보다 먼저 아빠가 됐다는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정수경과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 했으나 뒤늦게 또다시 이혼 위기에 섰다.
나훈아와 김지미는 결혼과 이혼 모두 화제였다.
연상인데다 톱스타였던 김지미와의 결혼은 너무나도 큰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6년만에 이혼했는데,
이혼할 때 빈몸으로 나오며 나훈아가 했던 말이 오래토록 회자되었다.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며 그 모습에서 남자다운 배려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김지미 또한 총 4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한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톱스타의 모든 면을 갖췄기에 가능하겠다. 무엇보다 특히 여자에게 치명적이었던 이혼에도 그녀는 특유의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영화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과 결혼해 스타감독과 여배우의 결합으로서 떠들썩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배우 최무룡과 결혼했고 1969년 또다시 이혼했다.
무엇보다 헤어지면서 한 말이 화제가 되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로 이혼해도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최무룡은 영화 제작 등 사업을 벌이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김지미가 떠안을 여러 가지 부담을 덜어주고 톱스타인 아내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며 이혼을 결정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김지미는 1991년에 심장내과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4번째 결혼을 했지만 10년이 채 지나지 못해 이혼했다.엘리자베스 테일러 또한 8번의결혼과 이혼으로 할리우드 호사가들을 즐겁게 했는데,4번의 결혼과 이혼한 김지미에게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말은외모 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정말 딱 맞는 별칭인 것 같다.
'라디오스타'에서 최민수가 아직도 김지미를 어머니라고 부른다며
아버지와 헤어졌어도 자신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최무룡 또한 동료배우 강효실과 결혼해 최민수를 낳았으나 결국 이혼했고, 이후 김지미와 결혼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살아본 적 없어 결혼을 포기하면서도 막연한 그리움을 가졌다는 최민수는 현명한 부인을 얻은 덕에 여러가지 기행에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재혼조차도 실패한 연예인은 참 많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의 결혼 또한 큰 화제를 모았었다.
1948년 영화로 데뷔한 최은희는 당시 촬영기사였던 김학성과 결혼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편인 김학성이 포탄을 맞고 장애인이 되며 불화를 겪는다.
이후 영화감독이었던 신상옥과 함께 여러 작품을 하며 사랑에 빠졌고, 1954년 김학성과 이혼 후 바로 재혼한다.
김학성은 최은희와 신상옥을 간통죄로 고소했으나 곧 취하했고 이에 관해 여러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5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신상옥과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는 작품을 많이 배출했으나 1976년 이혼하며 22년 결혼생활을 종지부 짓는다. 이유는 신상옥 감독이 여배우 오수미와 바람을 펴 2명의 자식까지 몰래뒀던 것이다.
하지만 1978년 1월 최은희가 북으로 납치되고 전남편이었던 신상옥이 7월에 연달아 납치되며 북한에서 재회했으며1986년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했다.
신상옥의 불륜상대였던 오수미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납치되며 신상옥의 두 아이와 남겨졌고 이후 사진작가 김중만과 재혼했었다.
1984년 신상옥 감독이 탈북에 성공해 오수미는 자신이 키우던 두 자녀를 신상옥 감독에게 다시 돌려보냈고 김중만과의 결혼 생활도 결국 이혼으로 끝을 맺게 됐다.
신상옥 최은희의 북한 탈출로 신상옥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김중만에게 안기부 직원들이 찾아와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강제출국 당했고 미국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오수미는 이후 배우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마약에까지 손을 대며 인생 하락세의 길을 걸으며 1992년 교통사고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가수 조영남은 2번의 이혼경력과 파산 경력을 노래로 승화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특히 첫번째 부인인 윤여정에 대한 미안함을 방송에서 수시로 고백하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개인적으로 연락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해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컴퓨터 미인'으로 불리며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는 황신혜는
1987년 에스콰이어그룹 회장 2세 이 모씨와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1998년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해 딸을 두고 있으나 재혼 7년만에 합의 이혼했다.
한 때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전유성과 진미령도 이혼했는데,
둘 다 재혼으로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전유성은 한 토크쇼에서 진미령과의 이혼에 대해 질문받는 것조차 꺼려하고 가정을 이룰 자격이 없다며 자신없는 모습을 보였다. 관두시고 제 매니저를 했다"며 "반대로 그분이 무대를 관두고 저를 서포트하니 내가 이걸 죽을때까지 해야 싶고 실망이었다"고 밝혔다.1975년도에 한국에 잠깐 나와 '윤복희 특집쇼'를 했는데, 남편이 신문을 들고 공항에 마중 왔었는데 신문에는 한국에서 가수 남진이 윤복희를 사랑한다는 기사였다. 나약해진 남편의 모습에 섭섭함을 느꼈고, 자꾸 신경쓰는 남편에게 실망해 __김에 이혼했다. 이후 남진을 남편의 질투를 일으키려 이용했고,
결국 남진과도 이혼하게 되었다.
남진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미안하다 없던일로 하자'한 후 반지 돌려주고 집도 다 가지라고 하고새벽4시에 통행금지 해제되고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오히려 소문에 남진이 윤복희를 내쫓고 폭행했다고 돌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무릎팍 도사'에서 윤복희는 자신을 사랑했고 절 귀하게 여겼다며 "항시 죄송하다"고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003년 8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며 파경을 맞았던 김혜선은 이혼 10개월만인 지난 2004년 7월 4살 연상의 사업가 이모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끝내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번째 결혼생활마저 정리다.
강문영은 가수 이승철과의 첫 번 째 이혼 이후 2007년 재혼과 임신 사실을 발표했지만 2009년 돌연 이혼을 했고 전 남편과 1년여의 소송 끝에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확보하면서 지금은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8-90년대 인형같은 외모와 함께 하이틴 스타로 큰 사랑을 받았었던 배우 이상아1997년 개그맨 김한석과 첫 번째 결혼에서 1년 만에 이혼했고,
하지만 재혼 간격이 짧았기 때문에
보는 시선이 더 곱지 않았던 게 사실.
얼마 전에는 안정훈이 '강심장'에서 김민종이 이상아와 사겼던 사실을 폭로했다.
2001년 사업가와 재혼했으나 이듬해 헤어졌으며 11살 연상인 현재 남편과는 2002년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다시 이혼을 1년 사이에 하게 되며
'연예계의 이혼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던 엄용수
"보통 연예인이 이혼하면 외국으로 도피 하는데 나는 정면 돌파를 했다"며 "그래서인지 토크쇼에서 더 많은 섭외가 들어왔고
이혼해서 우울한 말보다 스포츠 중계하듯이 재미있게 말을 하다 보니 더 많이 불러준 것 같다. 모두들 내가 '이혼을 재밌게 극복하나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며 이혼의 아픔을 개그로 승화했음을 밝혀 화제가 됐다.
전유성은 한 토크쇼에서 진미령과의 이혼에 대해 질문받는 것조차 꺼려하고 가정을 이룰 자격이 없다며 자신없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진미령은 방송에서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데,
그 짧은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밖으로 나가버리는 남편의 무심한에 상처를 받고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중견배우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김영애도 어린나이에 결혼을 했다
밴드마스터 이종옥과 불륜 혐의를 받고 간통죄로 고소를 당해 충격을 줬다.
하지만 1979년 결혼해 20년간 부부로 지냈으나 2000년 돌연 이혼했다.
2003년에는 다섯살 연하의 재미사업가와 재혼해 함께 황토사업을 꾸려왔으나 사업의 부진으로 남편과 소원해져 6년만에 다시 이혼했다.
한동안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폭로와 비방으로 추한 모습을 보였던 편승엽과 길은정 커플도 재혼커플이었으나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헤어진 이후에 보인 흙탕물 전쟁에 씁쓸함이 컸는데, 길은정이 암으로 죽은 이후, 보험금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4월 이혼의 시작을 알렸던 전노민, 김보연 부부
두 사람 다 재혼으로 만난 것인데, 8년만에 전노민의 막걸리 실패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혼했다.
이혼 소식이 알려지기 2주 전만해도 아침방송에서 잉꼬부부라고 애정을 과시했는데, 화면 속 가식적인 부부관계에 뒤통수를 맞은 듯 해 씁쓸하다.
다행히 헤어진 후 전노민이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라며 서로 비방하고 헐뜯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과거 잉꼬부부였던 것을 믿게 한달까
한국 최초의미니스커트로 신여성의 아이콘이었던 윤복희도 2번 이혼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두 번의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1968년 동료가수 유주용과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난 윤복희는 "제 꿈은 어렸을때부터 결혼하면 무대를 내려오고 싶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 남편이 노래를
"옴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