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개봉한 건 아마 96년 97년 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참 좋은 영화라 했고 나도 보려 했는데 왠지 기회가 닿지 않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이 영화가 재개봉을 해서 보러 갔다.
사실 영화는 단순하다. 2차 세계대전 한 간호사가 중증 화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다. 참으로 이쁜 간호사(줄리엣 비노쉬)가 전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지만 언제나 상대방은 전사하거나 불행하게 되었다. 그 간호사가 새로 만나는 사람(시크교 인도인)과 사랑에 점차
빠지고 그 두근거림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가 겹친다. 전쟁 이전에 국제사막클럽이라는 동호회 활동을 하는
랄프 파인즈가 어느 유부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이어주는 한 인물이 바로 윌리엄 데포, 랄프 파인즈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다가가는 인물이다.
내용 소개를 할 건 아니다. 그냥 스무살 즈음에 나온 영화인데, 마흔을 넘겨 본 영화는 어떤 느낌인가를 말하기 위한 글이다.
'사랑은 만고의 알리바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젊은 날에는 또는 자기에게 주어진 많은 권력이나 재물들 또는 지위를
떨치고 상대방에게 다가갈수록, 또 더 많은 방해물을 극복하고 다가갈수록 그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내가 젊은 나이에 보았다면 정말 이 영화를 좋게 보았을 것 같다. 유부녀임에도, 서로 용기를 내어 다가서는 사람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고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는 그런 사랑이라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위해 적국에 아프리카 지도를 넘겨 전쟁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성찰이 없다. 오로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서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지도를 넘기고 그 때문에
전쟁에서 크게 밀리는 것,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보다 중요한 사랑........
내가 이 사랑을 이해할 것 같지 않다. 사랑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왔나 보다.
오히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술만 마시던 남편(콜린 퍼스),
오히려 그에게 공감을 한다. 진짜 사랑은 그 남자가 아니었을까. 못가게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억압적 사랑을 그는 원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놀라운 반전은 남편은 비행기에 자신의 바람난 아내를 태우고 날아가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랄프 파인즈에게
자폭한다. 나는 그 남자를 이해할 것 같았다. 사랑은 비이성적이다. 그리고 격정적이다. 나는 이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다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보지 못했다. 그냥 격정적 사랑만 보았을 뿐이다.
목숨을 바치고 목숨을 뺐는 사랑,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랑, 사실 그게 진짜 사랑일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멀게 느껴지는 말이 있을까. 과연 우리는 사랑이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