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는 조선 전기의 유명한 기생으로 본명은 황진, 일명 진랑, 기명은 명월입니다. 개성 출신으로 확실한 생존 연대는 미상입니다. 그녀의 사료는 직접적인 건 없으며 간접 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기경에 이웃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생으로 들어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 가지고 있어 그녀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사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여 당대의 석학 서경덕을 사숙하여 거문고와 주효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를 정공 하였다고도 합니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걸로도 유명하며,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에 사제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박연폭포, 서경덕, 황진이를 송도삼절이라고 합니다.
황진이는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내 언제 신이 없어, 산은 옛산이로되, 어져 내일이여 등 5개의 시조가 전해집니다. 현존하는 작품은 5, 6수에 지나지 않으나 기발한 이미지와 알맞은 형식과 세련된 언어구사를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청산리 벽계수야는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라는 사람이 하도 근엄하여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높았다고 합니다. 벽계수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황진이를 보더라도 유혹받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마침 그때 벽계수가 개성에서 달밤에 나귀를 타고 만월대를 산책할 때에, 소복 차림을 한 황진이가 이를 시험해 보려고 그에게 다가가 이 노래를 건네었더니 그토록 큰소리를 치던 벽계수는 황진이의 시재와 미모에 끌려 황진이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흥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 시조는 초중장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전제한 뒤, 종장에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번 바다로 흘러가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논리로 벽계수를 유혹하고 종장에서 밝은 달과 자신으로 시상을 연결시킨 기지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유교적인 인습에 젖어 있던 당시 사대부에게 인습에 얽매이지 말고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자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시조창 - 김월하
오동일 곡 - 강릉여성합창단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풀이]
청산리(靑山裏) : 푸른 산 속
벽계수야(碧溪水)야 : 푸른 시냇물아. 당시 종실(宗室)이던 벽계수(碧溪水)란 사람을 중의적(重意的)으로 표현한 말
수이 : 쉬이. 쉽게, 순간성, 일회성, 흐르는 물의 속도, 인생의 짧고 덧없음.] 감을 자랑 마라 - '청산'은 영원한 자연을, '벽계수'는 덧없는 인생을, '수이 감'은 순간적인 인생의 삶을 비유적(중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도창해하면[(一到蒼海)하면 :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한번 늙어 죽음에 이른다면 / 중의법 ] 다시 오기 어려우니 - 한번 넓은 바다에 이르면 / 한 번 늙거나 죽으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올 수 없으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 : 적막한 산에 가득 참]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명월'은 밝은 달 혹은 지은이 자신(황진이)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현세적 애정관이 들어 있다. '만공산에 쉬어간들 어떠리'는 즐기기에 좋은 순간으로 젊은 시절을 자기와 함께 보내자는 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