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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에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
자동차 역사를 거스르고 거슬러 완전히 끝까지 다다랐을 때 남는 태초의 부품, 휠에 얽힌 이야기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처음으로 그리는 부품은 무엇일까?
바로 휠이다. 휠 위치가 자동차의 자세를 결정하고 앞뒤 휠 사이 거리가 차급을 결정하기에, 디자이너는 그림 그릴 위치를 정하자마자 휠부터 그려 넣는다.
참 흥미롭다. 그림 그리는 첫 순서가 마치 자동차의 기원을 기념하는 듯하다. 휠, 즉 바퀴가 자동차를 넘어 인류가 만든 모든 탈것의 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토록 깊은 역사 때문일까? 누군가는 자동차 휠을 “원시적인 금속 덩어리”라고 정의한다. 동의할 수 없다. 휠은 자동차와 만나 지난 140여 년 동안 더 강력한 힘을 견뎌내고, 튼튼하게 떠받들며, 가뿐히 회전하도록 꾸준히 진화해 왔다. 지금부터 결코 원시적이지 않은 휠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보자.
1886년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 가느다란 철사를 촘촘히 엮은 와이어 스포크 휠을 달고 있다
최초의 자동차, 강철 휠에서 나무 휠로 퇴보?
기원전 7000년이 어쩌고저쩌고, 메소포타미아 유적에 흔적이 남았네 마네…. 고리타분한 인류 바퀴 역사는 박물관에서 확인하도록 하고 우리는 자동차 휠에 집중하자. 자동차 최초의 휠은, 당연히 1886년 칼 벤츠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에 붙은 휠이다. 휠이 없는 차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자전거 휠처럼 가느다란 철사를 촘촘히 엮은 와이어 스포크(휠 기둥) 휠을 달고 세상에 등장했다.
나무 스포크 휠을 쓴 페이턴트 모터바겐
그런데 이상하다.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길 위를 누비는 흑백 사진을 보면 와이어라고 부르기엔 스포크가 두껍다. 여기엔 안타까운 이유가 있다. 처음엔 가볍고 탄력적인 와이어 스포크 휠을 쓰고자 했으나, 온통 울퉁불퉁했던 당시 길 위에선 걸핏하면 휘거나 망가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실제 판매용 모델에는 무겁지만 험로 위에서 견고한 나무 스포크 휠을 사용했다.
와이어 스포크 휠은 가볍고 탄력적이다
비록 열악한 도로포장 때문에 상용화하지 못했지만 와이어 스포크 휠은 당시 신선한 기술이었다. 페이턴트 모터바겐보다 불과 17년 앞선 1869년에 첫 자전거 와이어 스포크 휠 특허가 나왔을 정도. 수많은 철사가 짱짱하게 장력으로 림(휠 테두리)을 잡아당겨 무게를 효과적으로 분산하고, 탄력적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나 자동차 엔진의 강력한 회전력과 제동력을 버티질 못했고, 회전력까지 대응하는 더 복잡하게 얽힌 구조가 나올 때까지 초기 자동차 휠은 나무 스포크가 대세였다.
알로이 휠, 바퀴에 미학을 더하다
길거리를 거닐 기회가 있다면 도로를 누비는 차들의 휠을 유심히 살펴보자. 거의 예술 작품이 따로 없다. 마이바흐 휠은 영롱하게 빛나고 제네시스 22인치 휠은 기다란 스포크가 압도적이다. 심지어 저렴한 경차나 소형차마저 두 가지 색깔을 섞은 투톤 휠로 잔뜩 멋을 부린다. 대체 언제부터 자동차 휠이 이토록 화려하게 바뀌었을까?
온갖 경주에서 1000회 넘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린 부가티 타입 35 경주차
본디 자동차 휠은 멋져 봐야 강철 와이어가 어지럽게 얽히고설킨 휠이 전부였다. 아니면 동그란 구멍을 송송 뚫은 무심한 스틸 휠이거나. 혁신의 시발점은 오늘날 1500마력짜리 시론을 만드는 하이퍼카 브랜드 부가티다. 1924년 세계 최초로 타입 35 경주차에 알루미늄 합금 휠(알로이 휠)을 달았다. ‘경주차’라는 소개로 엿볼 수 있듯 목적은 지극히 기능적이다. 가벼운 만큼 더 빠른 속도를 탐했고, 높은 열전도율로 뜨겁게 달아오른 브레이크를 빠르게 식혔다. 결과는 온갖 경주에서 1000회 이상 우승. 압도적인 성적으로 알로이 휠의 우수성을 멋지게 증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나면 뭐 할까. 비싸고 만들기는 까다로웠다. 결국 경주차만 쓰는 특수 휠로 역사를 이어가다, 196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알루미늄 주조 기술 발달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로에 나온다. 잠깐, 여기서 ‘주조’가 핵심 포인트다. 주조란 모양을 갖춘 틀에 쇳물을 부어 굳히는 제작법. 얇은 강판을 찍어 누르는 식으로 모양을 만드는 스틸 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모양이 자유롭다. 바야흐로 알로이 휠 상용화를 시작으로 자동차 휠 디자인 시대의 막이 올랐다.
스틸 휠을 미워 말아요
알로이 휠은 빼어나다. 스틸 휠보다 가볍고 브레이크 냉각 성능이 뛰어나며 디자인까지 자유롭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동차 제조사는 스틸 휠을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등장한 현대 MPV 스타리아는 큼직한 17인치 스틸 휠을 달았다. 알로이 휠 역사가 벌써 100여 년에 육박하건만, 어째서 스틸 휠을 계속 쓸까?
만들기 쉽고 싸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합금을 주조나 단조(대장간에서 망치 두들겨 만들듯이 압축해서 모양을 만드는 방법) 방식으로 빚은 알로이 휠은 가격이 한 짝에 국산차 기준 15~50만원 정도다. 반면 얇은 철판을 찍어 눌러 만드는 스틸 휠은 가격이 한 짝에 4~6만원 수준. 한 차마다 네 개씩 들어가는 부품이란 점을 고려하면 체감 가격 차이는 더더욱 벌어진다.
견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경찰차 스틸 휠
기능적으로도 나은 구석이 있다. 더 견고하다. 타이어가 미처 흡수하지 못한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알로이 휠은 쪼개지지만, 스틸 휠은 찌그러질지언정 쉽사리 찢어지지 않는다. 충돌이 잦은 경찰차(미국)와 가혹한 환경을 버텨야 하는 상용차에 주로 쓰고, 날카로운 충격이 이어지는 오프로드에 알맞다. 유럽에서는 윈터타이어 전용으로 쓰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무게 덕분에 눈길 위에서 바닥을 더 끈끈히 붙든다고. 물론 저렴해서 겨울 전용으로 한 대 분을 더 사 놓아도 부담 없는 이유가 가장 크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사실 하나. 같은 크기로 비교할 때 스틸 휠은 알로이 휠보다 분명히 무겁지만, 그 차이가 엄청나게 크진 않다. 실제로 4년 전에 직접 현대차 15인치 순정 스틸 휠과 알로이 휠을 각각 쟀을 때 무게 차이는 0.5kg이었다. 스틸 휠은 두께 대비 충분한 강도를 확보해 얇게 만들 수 있고, 주조 방식으로 만든 순정 알로이 휠은 안전한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두께를 늘린 까닭이다. 그러니 너무 스틸 휠을 미워하지 말자.
무려 23인치 휠을 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엄청나게 덩치 키우는 휠, 대체 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휠 크기에 둔감했다. 2000년대 초, 조그마한 현대 아반떼 XD도, 거대한 다이너스티도 온통 15인치 휠을 썼다. 지금은 어떤가. 차체 휠하우스에 담을 수 있는 최대 크기 휠을 채워 넣는다. 아반떼는 17인치(N 모델은 19인치), 그랜저는 19인치, 제네시스 G80은 20인치…. 비단 큰 휠은 현대차만이 아닌 세계적인 흐름이다.
오늘날 휠이 과도하게 자란 이유는 결국 멋이다. 기다란 스포크가 쭉쭉 뻗은 19인치, 20인치 휠이 땅을 딛고 선 모습은 마치 근육질 허벅지처럼 위풍당당하다. 멋진 모습은 곧 인기로 이어져 자동차 제조사는 경쟁적으로 휠 크기를 키웠다. 결국 휠 크기가 22인치에 달하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제네시스 GV80 등이 등장했다.
18인치 휠을 사용한 페라리 F50(1995)
명암은 또렷하다. 휠이 큰 만큼 타이어는 옆쪽 두께가 줄고 단면이 네모나게 바뀌어, 땅바닥과 닿는 면적이 늘어나고 옆면(사이드월)은 더욱 탄탄히 보강한다. 덕분에 접지력이 좋고 선회 시 쏠림도 적다. 휠 크기가 커 봐야 대부분 15인치였던 1990년대에도 고성능 스포츠카만큼은 18인치급 휠을 썼던 이유다. 단점은 휠이 무거워 가속 성능과 연비가 떨어지고, 접지 면적이 늘어 노면 소음이 더 크다. 무엇보다 얇은 타이어는 그만큼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승차감을 해친다. 큰 휠과 큰 타이어는 비싸기도 하고.
엔진 성능에 발맞춰 브레이크 크기를 키우느라 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 단점이 더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양산차에 큰 휠이 등장한 데는 기술적인 배경이 있었다. 더 튼튼한 휠과 타이어 제작 기술은 당연. 신경질적으로 흔들리는 큰 휠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스프링과 댐퍼, 고무 부시, 링크 등 서스펜션 기술, 그리고 강성을 끌어올린 차체 기술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큰 휠을 써야 하는 이유도 있다. 점점 크고 강력하게 변화하는 자동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 더 큰 브레이크를 담으려면 휠이 커야만 했다.
휠 바꾸려고요? 이것만은 꼭!
지금부터 어쩌면 가장 중요한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사실 우리는 휠에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 차 살 때 한 번 고르고 나면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폐차할 때까지 관리도, 교체도 필요 없는 튼튼한 부품이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휠에 관심 갖는 이유는…. 튜닝 때문 아닌가? 멋진 휠은 자동차 분위기를 바꿀 뿐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좋다. 가볍고 냉각 성능 좋은 휠은 성능 향상까지 꾀할 수 있다.
휠은 다른 부품보다 호환성이 월등히 뛰어나지만, 그래도 규격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누구나 예상하듯 휠을 키우더라도 타이어 전체 크기는 지켜야 하며, 휠과 차를 하나로 묶는 볼트 개수와 두께, 볼트 사이 거리(PCD) 확인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반지처럼 끝에서 가장 빛나는 원통! 여기에 휠 중심을 건다
하품 나오는 빤한 소리는 여기까지. 혹시 ‘허브 직경’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휠을 가볍게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단어다. 휠을 자동차에 조립할 때 못처럼 박는 볼트로만 고정하는 듯 보이지만, 진짜 휠을 붙드는 부품은 허브 (브레이크와 휠 사이에 낀 부품)다. 허브 중심에 원통 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휠과 맞닿아, 휠과 허브의 중심을 완벽하게 고정하고 자동차 무게를 지탱한다. 간과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부품이다. 허브 직경이란 이 원통의 지름 크기를 말하는데, 휠 중심 구멍과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한다. 휠 쪽 구멍이 작으면 애초에 조립할 수 없고, 반대로 크면 조립은 하더라도 중심이 맞지 않아 주행 중 진동하거나 휠 볼트에만 무게가 실려 부러질 수 있다.
규격이 딱 들어맞는 휠을 찾았다면 다음 차례는 품질 확인이다. 달리는 중 휠이 부러지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순정 휠은 워낙 튼튼하니 믿어도 좋지만, 애프터마켓 휠은 강도가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직접 찌그러뜨려 볼 순 없으니 관련 기관의 품질 인증을 확인하는 방법이 안전하고 확실하다. 대표적으로 미국 운수성 DOT, 일본 알로이 휠 협회 JWL 등이 있다.
탄소섬유 휠은 공장도 멋지다
전기차 시대, 휠은 그대로일까?
다가올 미래, 아니 지금 자동차 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시 전동화다. 그 바람에 자동차는 송두리째 변하고 있다. 엔진과 변속기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고, 플랫폼은 스케이트보드처럼 모양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휠은 어떻게 변화할까?
아이오닉 5의 에어로 휠
모양은 앞을 꽉꽉 틀어막은 에어로 휠이 (이미) 대세다. 내연기관차처럼 쉽게 연료를 채울 수 없는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가능거리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 쟁반처럼 판판한 에어로 휠은 회전할 때 발생하는 와류(소용돌이)가 적어 전기차의 공력 성능을 높이고 곧, 주행가능거리를 늘린다. 테슬라 관계자에 따르면 에어로 휠만으로 주행가능거리가 10% 늘어난다고. 더욱이 본래 판판한 휠의 단점이던 부족한 브레이크 냉각 성능 (공기가 안 통하기 때문이다)도 대부분 전기모터 회생제동으로 속도를 줄이는 전기차엔 별 의미 없다.
포르쉐 탄소섬유 휠
공력 성능을 높였으니 이제 무게를 줄일 차례다. 믿기 힘들겠지만 탄소섬유 휠이 가능성 큰 해법이다. 워낙 비싸고 만들기도 어려워 고가 슈퍼카에 주로 쓰지만, 본래 알로이 휠도 처음엔 그런 존재였다. 탄소섬유 휠은 과거와 달리 점점 생산 기술이 발달해 이미 포드 머스탱 등 양산 스포츠카에도 들어가고 있다. 특성도 전기차와 딱 어울린다. 무게가 알로이 휠보다 거의 절반 가까이 가벼워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늘리고, 50% 더 단단해 무거운 전기차를 든든히 떠받든다. 진동과 소음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서 엔진 소음 없는 전기차의 고요한 실내까지 지킨다.
마지막 예상 변화는 이미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골똘히 연구하고 있는 ‘인휠모터’다. 이름 그대로 휠 안에 전기모터와 브레이크를 담는 기술이다. 지금 전기차 제조사가 내연기관차보다 실내가 훨씬 넓다고 홍보하지만 막상 타보면 큰 차이 없지 않은가? 진짜 남다른 공간은 커다란 전기모터가 휠 안으로 숨었을 때 펼쳐진다. 모터가 사라진 공간에 편평하게 깐 길이 4~5m짜리 실내 바닥. 어쩌면 미래 차는 '투룸'으로 나누어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출처 탑기어 코리아 글 윤지수